202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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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뒤에 번지는 어두운 그림자

가을빛 뒤에 번지는 어두운 그림자


정성운
텃밭농부


밭에는 가을색이 번지고 있다. 시퍼렇던 풀은 기세가 꺾여 누렇게 변했다. 기승을 부리던 벌레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햇살은 눈부시게 맑고, 아침의 바람은 선선하다. 알곡이 여물기에 딱 좋은 시절이다. 고추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올해는 중부지역의 장마가 짧아 병해충 피해가 거의 없었다. 서리태와 쥐눈이콩의 꼬투리가 단단해지고 있다. 얼마 후에 서리가 내리면 밭의 잎들이 노랗게 물들 것이다. 그런데 가을빛 뒤에 위기의 그림자가 번지고 있다.
위기는 일상의 상황이다. 원치 않지만 늘 다가오고, 우리는 이겨내야 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인류는 지금의 삶을 만들어냈다. 문명은 위기를 극복한 역사의 흔적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전과는 다른 위기이다. 문명의 파국에 이를지도 모른다.


AI의 편리함 뒤에 있는 것들


하나는 AI이다. 뇌과학과 컴퓨터 기술이 합쳐진 AI는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태를 예고한다. 물론 AI를 활용해 난치·불치의 병을 이겨낼 수 있고, 신체의 장애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위험하고 더러운 일도 해낼 수 있다. 효율도 극대화된다. 로봇은 인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생산성을 만들어낸다.
AI가 만들어내는 효율과 속도와 편리함 그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다. 기계에게 인간의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개발되지만, 선을 넘으면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든다. 기술 지배, 기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다. 그래서 기술 개발의 속도를 늦추자는 제안이 나온다. 특히 기술이 나쁜 의도를 가진 이들의 손에 쥐어지면 파국은 불 보듯 뻔하다.
AI는 생태 파괴를 재촉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폐기 절차에 들어갔던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에서 경험했듯 파국적이다. 한 지역을 소멸시키며, 방사능 오염의 피해는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된다. 데이터센터의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 필요량도 어마어마하다. 전기는 만들어낼 수 있지만, 물은 만들어낼 수 없는 자원이다.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쓸 수도 있겠지만, 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식수·농업용수·공업용수의 부족을 불러온다.
신대승네트워크는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기대어 AI 시대를 살아가자는 취지다. 그 중 생태 부문을 들여다보자면, “나의 작은 편리함과 욕구 뒤에 있는 생명의 무게를 잊지 않습니다”라며 “나의 편리함 뒤에서 어떤 생명과 자원이 쓰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어 네 가지를 제안한다. ①목적에 맞는 수준의 AI를 고르고, 되풀이되는 생성과 지나친 연산을 줄이며, 같은 결과라면 자원과 에너지를 덜 쓰는 쪽을 택합니다. ②AI가 쓰는 전력과 물, 자원을 잊지 않습니다. ③기기를 오래 쓰고 고쳐 쓰며, 버릴 때는 제대로 처리합니다. ④사람의 편리를 위해 다른 생명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유념해야 할 내용이다.


지난여름 겪었던 기후 재앙


둘째는 기후위기이다. 기후 연구자와 운동가들이 ‘기후 재앙’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기후위기는 현재의 기후변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에서였다. 충격적인 상황인식이 필요하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이에 대한 위기를 과장하고,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면 차분한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로 꺼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재앙적 상황이다. 유럽 여러 나라와 우리나라에서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섰다. 유럽의 경우 이런 고온 때문에 1만5천 명가량이 사망했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고온을 겪었다. 너무 뜨거워 일상이 중지됐고 흐트러졌다.
지난 8월의 네팔 빙하 붕괴는 기후 온난화가 대규모 재앙을 가져온다는 점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날 아침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맑은 날이었다. 그런데 강을 범람해 느닷없이 쏟아지는 물과 토사는 삽시간에 한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1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수천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실종됐다. 집과 밭, 도로, 기간시설은 사라졌다. 다시 옛 모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네팔 빙하 붕괴는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가 아니었다. 이미 몇 지역에서 빙하가 무너져 생활터전을 휩쓴 사건이 있었다. 재작년 스위스에서는 빙하가 무너지면서 한 마을을 통째로 휩쓸었다. 다행히 빙하 붕괴를 예측해 주민들을 대피시켜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악 지역에만 100곳이 넘는 위험지역이 있다. 기후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는 게 원인이다. 이런 사태가 여러 곳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5월 영국의 유력한 정보기관은 기후 온난화에 따른 국가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보고서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기후 온난화에 따라 히말라야 만년설이 사라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이 만년설을 용수로 삼아 농사를 짓는 히말라야 인근의 여러 나라에서 기근이 발생한다. 이 지역은 더 이상 농사를 생업으로 삼을 수 없게 되며, 이에 따라 발생한 다수의 기후난민이 영국으로 몰려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면 극심한 사회 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영국은 이미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후 난민의 발생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폭우와 폭염, 빙하 붕괴, 해수면 상승은 진행되고 있다. 살만한 곳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해수면 상승으로 수도를 옮겼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몇 나라는 나라 전체의 사람들이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몇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해수면 상승으로 수십 년 후에는 서울의 절반가량이 바닷물에 잠긴다고 한다.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인가?


히말라야는 거대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이면서 동시에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이다. 히말라야에는 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 눈이 쌓인다. 봉우리는 수만 년 동안 만년설을 이고 있다. 만년설은 봄부터 녹으면서 서서히 하류로 물을 흘려보낸다. 이 물은 이 지역의 강들로 흘러들어 열도 넘는 나라의 식수로 쓰이며 논밭을 일군다. 그러나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이런 흐름이 깨지고 있다. 겨울이 짧아지면서 내리는 눈의 양이 줄어들뿐더러 빨리 녹는다. 
네팔 빙하 붕괴와 관련해 연합뉴스는 유엔 보고서를 인용해 “2010∼2020년 히말라야 빙하의 소멸 속도가 이전 10년 동안보다 65% 더 빨라졌으며, 힌두쿠시·히말라야산맥 전역에서 빙하 호수 관련 홍수 위험성이 21세기 말까지 약 3배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라면서 빙벽 붕괴와 같은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위성사진에 찍힌 홍수 원인…“대규모 암반·빙하 붕괴”]
아직 계절의 흐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며, 우리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지금의 기후 온난화를 멈추지 않으면 ‘기후파국’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여서 호모 사피엔스라고 스스로 불렀지만, 때론 눈앞의 이익 앞에서는 탐욕에 지배당하고 만다. 그래서 호모 그리드우스(Greedus)라 불리어도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