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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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은둔


고통을 자유로 바꾼 숨은 수행자들


박경희
중도기획 디자인실장


『은둔』
조현 지음
488쪽 | 판형_152*225mm
값 25,000원
불광출판사 펴냄


41명의 삶으로 다시 만나는
한국의 숨은 수행자들


『은둔』은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깊은 산중과 암자, 토굴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수행했던 41명의 숨은 수행자를 찾아 기록한 책이다.
24년간 종교전문기자로 활동한 저자 조현은 전국의 산사와 수행처를 찾아다니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승과 은둔 수행자들을 직접 만나고 오랫동안 교유했다. 2007년 초판 출간 당시 수행 현장인 선방에서 널리 읽히며 “『은둔』 한 권 없는 선방은 없다”는 말까지 나왔고, 불교출판문화상과 올해의 불서상을 수상했다. 조정래, 최완수, 리영희, 백기완 등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개정판에는 초판의 30명에 11명을 새롭게 더해 총 41명의 삶을 담았다. 고우·도천·서암·연관·오현·청화·현기 등 저자가 직접 만나 교유한 수행자들과 박한영·백학명·삼성·취봉 등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인물들이 새롭게 추가됐다.
단순한 복간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더해진 저자의 경험과 인연, 기억까지 보탠 ‘새로운 『은둔』’​이다.
깨달음은 한순간의 체험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결국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아냈는지가 그 깊이를 보여준다. 『은둔』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이 책은 몇 마디 선문답이나 신비로운 체험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유년을 지나 출가했고, 무엇 때문에 수행에 목숨을 걸었으며, 긴 정진 끝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갔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등장하는 수행자들 역시 흠 없는 성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때로는 괴팍하고 파격적이며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그런 겉모습보다 그들이 평생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바라본다.
자신을 때린 이의 손부터 걱정한 지월, 가진 것이 없어도 남에게 줄 것은 한량없이 많다고 여긴 수월, 만나는 사람마다 중생이 아니라 부처라며 삼배를 올린 청화, 암과 코로나까지 “고맙다”고 받아들인 연관. 수행의 깊이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은둔』에 등장하는 이들의 출발점에는 유난히 많은 고통이 있다. 전강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젖먹이 동생을 업은 채 젖동냥을 다녔다. 우화는 어머니를 잃은 뒤 집을 나왔고, 오현은 여섯 살에 절집에 맡겨졌다. 보월은 걸인으로 떠돌다 출가했고, 수월과 혜월, 서암은 절 머슴으로 절살이를 시작했다. 제선은 사랑하던 어린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통에서 달아나기보다 그것을 수행의 에너지로 바꾸었다. 보문은 90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 뛰어들었고, 제선은 6년 동안 밖에서 문을 잠근 무문관에서 정진했다. 현기는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40년 넘게 홀로 화두를 붙들었다.
『은둔』의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다. 목숨을 걸고 수행한 이들은 오히려 점점 가벼워졌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권위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고통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먼저 살폈다.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처가 더 이상 그들의 삶을 끌고 다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가장 깊이 부서졌던 마흔한 개의 삶이, 마흔한 개의 새벽이 여기 열린다.”


『은둔』은 고통 없는 삶을 말하지 않는다. 고통을 통과하고도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이 여전히 현재적인 이유다.
기존의 고승전이 종정·방장·조실처럼 이름과 지위가 남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했다면, 『은둔』은 그 바깥의 사람들을 찾아간다. 생몰연대조차 정확히 남지 않은 금봉, 상좌도 탑도 없이 사라진 혜수처럼 평생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수행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이들을 성인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말보다 삶을 보고, 명성보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좇는다.
그 기록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눈 쌓인 지리산과 태백산을 오르고 외딴 암자와 토굴을 찾아 수행자들을 만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제자와 도반, 공양주와 주변 사람들을 찾아 증언을 들었다. 이번 개정판이 더욱 각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판 당시 스승들의 삶을 증언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난 20년 사이 입적했다. 저자가 직접 들었던 목소리와 기억 자체가 이제는 다시 얻기 어려운 기록이 된 셈이다. 또한 새롭게 추가된 11명 가운데 고우·도천·서암·연관·오현·청화·현기 등 7명은 저자가 직접 만난 수행자들이다. 특히 오현·고우·현기는 각별한 인연을 맺으며 삶과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저자는 자신이 찾아 헤맨 이들을 ‘빈자의 등’​에 비유한다. 화려한 등불은 꺼져도 가난한 노파가 온 정성을 다해 밝힌 작은 등 하나는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처럼, 『은둔』이 기록한 이들도 화려한 이름 대신 삶으로 빛을 남긴 사람들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대신 자신을 낮추고, 깨달음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삶으로 보여줬다. 20년 만에 돌아온 『은둔』은 사라질 뻔했던 마흔한 개의 작은 등불을 다시 우리 앞에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