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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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꿰뚫다

 


초기불교에서 선까지, 불교의 진수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불교를 꿰뚫다』
정가 25,000원
등현 지음
152×223mm|528쪽
불광출판사 펴냄



불교의 진수를 만나게 하는 단 한 권의 책!
아버지의 죽음을 체험한 어느 소년이 걸어간 길
등현 스님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체험하고 종교에 빠져들었다. 유가의 가르침과 도가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가르침을 섭렵하다가 결국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출가한 후에도 스님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들과 씨름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굳게 의지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렸다.


“나에게 세 가지 보배가 무너졌다. 계율에 대한 의식이 무너지고, 괴로움의 진리가 무너지고, 항상 고요와 평온 속에 머무는 무심삼매가 무너졌다. 나는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스님은 뭔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었다. 특히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래서 스님은 스리랑카로 가서 남방계를 받고 7년 동안 빠알리어 초기 경전을 공부했다.
남방불교의 전통에 따라 수행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이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인도로 가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힌두 경전을 공부했고, 다시 또 7년 동안 대승 경론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스리랑카를 거쳐 인도까지 찾아간 오랜 구도 여정 끝에 그는 마침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방황 끝에 대승이 나에게 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나의 여행이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절실했던 수십 년 공부의 회향
‘초기불교에서 선까지’
귀국 후에 스님은 자신이 공부하고 깨달은 바를 《불교신문》에 「초기불교에서 선까지」라는 제목으로 3년 2개월 동안 연재했다. 등현 스님은 대중에게 널리 이름이 알려진 스님이 아니었고, 연재한 글 또한 세간의 이슈에 부합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님의 연재 글은 불교계의 화제가 되었다.
중국불교의 교상판석은 물론, 원효 스님도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회통불교의 모습, 불교의 일미一味를 21세기의 언어로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종류의 글도 드물었지만, 그런 글을 쓸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 바람에 스님 주변의 인물들은 스님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불교를 꿰뚫다는 《불교신문》에 연재되었던 「초기불교에서 선까지」의 원고를 고치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1부 ‘초기・부파불교의 수행론’에서는 여러 초기 경전과 구사론에 나오는 수행론을, 2부 ‘대승의 수행론’에서는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수행론과 십지경에 나오는 수행론을, 3부 ‘선종의 수행론’에서는 『능가경』에 나오는 수행론과 달마선 및 조사선의 수행론을 각각 다룬다.


7세기에 원효가 품었던 꿈
21세기에 다시 피어나다
불교는 교학이기 이전에 실천 수행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불교를 꿰뚫다는 복잡다단한 불교의 수행론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목표는 단지 불교의 수행론을 가르치는데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불교의 수행론을 논의 주제로 삼아 불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가르침과 궁극적인 목표를 치열하게 규명해 나간다.
이 책이 제시하는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과 궁극적인 목표는 저자의 개인적 견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초기불교에서 선불교에 이르는 장구한 불교사를 샅샅이 살펴본 저자의 식견에 기반해 있는 것이며, 불교사에 명멸한 여러 상이한 불교적 사유들에 대한 면밀한 교통정리에 기반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불교적 사유라는 퍼즐 조각들 각각에 대해 맞춤한 위치를 찾아주었고, 그 결과 그 퍼즐 조각들은 서로 아귀가 맞게 연결되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불교의 ‘한 맛(一味)’이라고 칭했던 것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큰 그림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큰 그림을, 불교의 ‘일미’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조우한다.


책 속으로
『구사론』에서 말하는 법의 자성(sabhava)은 현상계(有爲法)의 자성을 뜻하고, 중관사상에서 말하는 무자성은 절대계(無爲法), 열반계의 관점에서 법의 무자성을 의미한다. 둘이 서로 다른 차원과 관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 -27쪽


진실 혹은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절대적 실재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불교는 경험적 실재를 중시하고, 대승 특히 중관학파와 선종은 절대적 실재를 중시한다. -51쪽


사띠는 일반적으로 ‘호흡의 알아차림’으로부터 시작한다. 호흡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호흡이 마음을 현재에 머물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늘 과거나 미래에서 노닐지만 호흡은 오직 현재에만 머문다. -76쪽


불교의 모든 수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관止觀이다. 초기불교, 구사, 중관, 유식, 천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수행법은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yanā)으로 귀결된다. ‘관’으로 ‘보아서 사라지는 번뇌’(見惑)를 끊고, ‘지’로 ‘닦아서 사라지는 번뇌’(修惑)를 다스리는데, 이를 견도見道와 수도修道라 한다. 견혹見惑은 이지적 장애이고, 수혹修惑은 감성적 장애이다. 삼독으로 보면 견혹은 치癡이고, 수혹은 탐貪・진瞋이다. 탐・진・치를 다스리는 것은 모든 종파가 공히 인정하는 수행이다. 탐・진은 선정을 통해 거듭 닦아 다스려야만 하고(修道), 치는 바르게 보아 정견을 갖추면 사라진다(見道). -195~196쪽


‘나’ 혹은 ‘나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은 속제이고, ‘나’와 ‘나의 몸’이라고 말하기 전에 이 몸을 구성하는 최소의 경험적 대상인 지・수・화・풍의 속성을 지각하면 유위의 진제인 것이다. 상대적이고, 조건 지워진 것이기에 유위이고, 개념 없이 지각할 수 있으므로 진제이다. 인과율과 자성은 이 유위의 진제에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무위의 진제는 모든 것이 해체되어 주관도 객관도, 모든 조건 지워지고 형성된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224쪽


불국토는 모든 유위의 형성이 해체된 세계이다. 그러므로 불국토를 건설하거나 장엄한다는 것은 외형적인 세계나 국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고, 모든 유위의 형성을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 -249쪽


제6지의 혜바라밀慧波羅蜜과 제10지인 지바라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적멸을 체험하여 온갖 분별이 끊긴 상태인 반면, 후자는 온갖 분별이 끊긴 경지에 이른 후에 삶 속에서 다시 차별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고 실천하면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지혜이다. 후자를 유식학에서는 무분별지無分別智에 이른 후에 얻는 지혜라고 해서 무분별후득지無分別後得智라고 한다. -406쪽


대승 불교의 근본 사상은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되 한 중생도 구제할 바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때 ‘모든 중생’은 현상계이고, ‘한 중생도 구제할 바 없다’는 것은 본질의 세계이다.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현상계와 한 중생도 구제할 것이 없다는 본질, 이 양면을 조화롭게 실천하는 것이 중도이다. 본래 성품의 깨달음만 강조하거나 깨달음 없이 이웃에 대한 연민만을 강조하는 것은 중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은 깨달음은 중도적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472쪽


인간은 수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악업의 과보는 고통스러운 환경으로 드러난다. 고통스러운 환경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그것이 분열된 자기 내면세계의 투사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갈라지고 찢어진 내면세계는 살아오면서 받았던 수많은 상처의 결과물이다. 그것들이 이 외부 세계를 고통스러운 세계로 투사시키는 것이다. -481쪽


삶과 죽음은 의식이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을 향해 가는 것에 불과하다. 나타나는 모든 현상, 경험되어지는 모든 세계는 본래 고요하고 적멸하다. 왜냐하면 대상들은 형상, 이름, 분별들인데 이들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고, 의식이 의미를 주지 않으면 대상들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5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