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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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5계, 널리 퍼져나가라

 


정성운
텃밭농부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다. 여름의 푸르름은 저물었다. 밭 한쪽에 고구마 줄기가 쌓여있고, 고춧대는 이랑을 덮고 있다. 내 텃밭은 황량하다. 어수선하다. 정리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밭도 더위에 지쳐 있다. 그 흔적이 역력하다. 김장 배추 20포기 중 살아남은 것은 두 포기뿐이다. 배추는 대개 8월 말 9월 초에 모종을 가져다 심는데, 올해는 늦더위를 피하느라 9월 10일경에 내어다 심었다. 그러나 모종이 뿌리를 내릴 시기에 더위가 이어졌으니 견뎌내지 못했다.
기온이 수그러들었다. 계절은 조금은 늦거나 빠르기도 하지만, 아직은 계절이 오가는 시스템은 유지되고 있다. 가을걷이를 시작했다. 땅콩을 캤다. 한 되쯤 되려나. 절반은 두더지와 새들이 먹었다. 땅콩은 겉껍질을 벗겨내어 프라이팬에 볶아먹는 것보다는 찌거나 삶아서 먹는 것이 훨씬 맛나다. 속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된다. 땅콩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땅콩의 기름을 태우지 않으니 건강에도 좋다. 지난달 초에 캔 고구마는 단맛이 들었다.


더위 물러가는가 싶더니 이내 찬바람


겨울 농사를 준비할 시기다. 내 겨울 농사의 대표 작물은 마늘이다. 고추 심은 곳에 마늘을 심을 예정이다. 11월 10일을 넘기지 않으려고 서두르고 있다. 봄과 여름 내내 쌓아두었던 풀과 음식물 쓰레기는 잘 삭혀져 고슬고슬한 퇴비가 되었다. 이랑에 골고루 뿌린 후 흙과 섞어주면 된다. 액비도 흠뻑 뿌려줄 것이다.  
지난 여름의 무더위는 참으로 힘들었다. 밭에 나가 거름 주고 풀도 뽑고 벌레도 쫓아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적셔졌다. 추석을 지날 때까지 열대야가 덮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뜨겁고 긴, 힘겨운 여름이었다. 이런 날씨가 올 여름 한번이 아니라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 터다. 더위가 물러가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찬바람이 내려왔다. 날씨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태풍이 우리나라를 덮치지 않았으니 위안이 될 만하다.
날씨는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날씨를 보살필 수 있다. 지구 열대화가 인간이 배출하는 메탄과 이산화탄소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니, 이를 줄이면 기온을 낮출 수 있고, 태풍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지구시스템을 알아내고, 대응 방법을 찾아내고, 그리하여 소욕하는 가운데 지구를 보살피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지칭한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인간 활동의 결과로서 지구 열대화를 불러온 것을 보면, 아직도 인간은 슬기롭지 못하다. 그래도 기후위기의 원인을 알고 있으니,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희망마저 버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엇을 해야 하나. 환경·생태운동의 모습은 다양하다. 분야별로 보면, 기후, 해양, 강, 식수, 산, 대기, 의·식·주 생활 등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관계된 모든 것에 걸쳐 있다. 해결을 위한 방법과 그것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도 다양하다. 인간의 욕구를 무한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과잉 생산과 소비를 문제 삼는 그룹도 있다. 이 그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생산과 소비를 부추긴다고 여겨 두 체제를 넘어서는 전망을 향하고 있다. 자연을 훼손하는 여러 형태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도 있다.


변화 시발점은 나의 각성


불교의 환경·생태운동은 90년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른바 개발 광풍에 수행환경을 지키려는 움직임과 관계의 조화로움을 회복하자는 운동도 펼쳤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움직임이 활발한 편이 못 된다. 그러나 생태·생명의 온전함을 지향하는 운동도 펼쳐지면서 내용으로는 더욱 깊어졌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의 환경·생태운동은 종교가 갖는 기본적인 속성상 자기변화를 중시한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훼손과 지구의 순환질서를 깨뜨린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의 욕망을 첫째 원인으로 본다. 이런 까닭에 불교(종교)의 환경운동은 신행과 분리되지 않는다. 환경·생태를 보살피는 일이 곧 불교를 행하는 것이 된다. 물론 사회적 원인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나의 각성한 의지로써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점이다.
얼마 전 불교환경연대가 창립 23주년을 기념해 환경5계 수계법회를 3사를 모신 가운데 여법하게 봉행했다. 불교환경연대 활동가들과 30여 명의 불자들이 환경5계를 수지했다. 이런 법회는 처음이다. 수계는 불교의식 중 핵심이다. 계戒는 삼귀의계, 오계, 십선계, 보살계, 사미·사미니계, 식차마나계, 비구·비구니계 등으로 나뉘는데, 재가자가 받을 수 있는 계는 앞의 네 가지다. 뒤의 것은 출가자에 해당한다. 특히 삼귀의와 오계는 재가자의 정식 불교입문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계를 받는다는 것은 계목을 지키겠다는 자기 다짐이다. 환경5계를 수지한다는 것은 환경지킴이, 환경보살로 살겠다는 일대 전환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천지자연을 모시는 삶을 살겠습니다”


환경5계의 계목은 다음과 같다. 1. 천지자연이 모두 연결된 우주생명임을 알아 존중하며 모시는 삶을 살겠습니다. 2. 경쟁 대립하는 죽임의 삶이 아니라 서로 살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3. 많은 것, 빠른 것보다 작고 적은 것을 추구하며 단순 소박한 삶을 살겠습니다. 4. 깨끗함, 편리함이 마음의 분별인 줄 알아 적당히 불편한 삶을 살겠습니다. 5. 물질적인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수행하며 나누는 삶을 살겠습니다. 수계법회의 수계사로 참여한 법만 스님은 각 계목을 설했으며, 수계제자들은 “예”라고 힘주어 답했다. 법만 스님은 계목의 그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두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연결된 ‘한 생명’입니다. 쌀 한 톨에도 모든 우주가 협동하여 만들어진 ‘우주적 존재’임을 깨달아 한 사람, 한 물건을 소중하게 알아 ‘모시고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서원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과 사람, 뭇 생명들 ‘덕분에’ 살기에 항상 감사하며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천지자연의 은혜를 입고 있는 우리들은 그 은혜를 갚는 ‘보은의 삶’을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경쟁과 대립의 죽음살이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살림살이’의 삶을 살겠다고 서원하는 뜻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 좋은 것과 나쁜 것, 편리함과 불편함은 모두 생각이 만든 분별입니다. 결벽적인 깨끗함보다 ‘적당한 더러움이 진정한 깨끗함’임을 알고, 과도하게 편리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불편함을 즐기는 삶’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듯 마음의 건강을 위해 매일 ‘마음 닦는 수행의 삶’을 살아, 안의 변화와 밖의 변화가 둘이 아니므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보살행을 수행’으로 삼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본래 내 것이 없는 이치를 알아 내 몸과 재산을 ‘나누고 잘 쓰이는 삶’을 살겠다는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짧은 이 글에서 환경5계의 계목과 그 의미를 전부 인용한 것은, 환경5계 수계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이 계목과 설명은 여러 스님들의 법문과 경전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를 수계로써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앎에서 행으로 나아감이다. 환경5계 수계가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