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욱 불교닷컴 기자
그들도 불성을 가진 우리와 같은 중생입니다 몇 해 전 경북 구미지역에서의 일이다. 한 다문화 여성노동자가 밤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옷은 찌기고, 얼굴 군데군데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황망한 얼굴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당황했었다. 도움을 주기 위해 다가서기도 전에 어디 선가 나타난 차량에서 두 남자가 내리더니 이 여성을 구타하고는 강제로 끌고 가려 했다. 황급히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제 때 오지 않았고, 그 여성은 결국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친구는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일 것이라고 했고, 비슷한 일들이 많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자리를 떠나자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문제가 많다는 게 그 친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목격한 것은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에게 가해진 폭력과 억압일 뿐이었다. 관심 갖지 말라는 말에 친구와 다투고 다음날 새벽 서울로 올라왔다. 아마도 이런 일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여성노동자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 땅에 왔지만, 희망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이 이주 노동자들을 경계 짓고 우리 보다 못한 사람으로 치부하기 일쑤이다.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가 자행하는 이 같은 짓거리는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자행되는 것 같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만난 현지인들은 한국인이라면 머리를 흔든다. 그들은 한국인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기도 한단다. 한국인들은 여행지에서 예의가 없고 무례하기 때문이란다. 해당 국가와 그 나라 사람들을 배려하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조건이 낮다는 이유로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멸시하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주노동자 등이 ‘다문화인’이지만, 나라밖에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다문화인’이 된다. 결국 ‘차별’이 ‘또 다른 차별’로 악순환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이 모두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두 해 전 네팔 포카라에서 나는 현지 돈이 없어 고생한 경험이 있다. 밤 버스에 시달려 지치고 배가 고팠지만, 고액(500루피)의 인도 화폐를 받아주는 식당이 없었다. 그때 같은 버스에 탄 한 네팔 남성이 인도루피를 네팔루피로 바꿔 주었다. 그는 경기도 포천의 한 석재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들려주며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한 이유는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한국에서 일할 때 석재공장의 직원들이 너무나 친절하고 많은 배려를 해줬다는 것이다. 음식 등 모든 것이 낯선 곳이었지만, 그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법정 고용기간을 채우고 네팔로 환향했다면서 한국어를 하는 나를 알아보고 자신이 받은 친절을 돌려준다고 했다. 그의 친절로 나는 허기를 채우고, 장거리 여행 버스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다문화’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고, 정부가 2005년부터 정식으로 다문화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주민 120만 시대’라고 한다. 이주 노동자들로 출발한 ‘다문화인’들은 이제 결혼 이민자의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전체 혼인 중에서 국제결혼은 4만 3121건으로 약 13.6%를 차지했고 농촌의 경우 10명 중 4명이 국제결혼이었다. 결혼 이민자가 점점 늘면서 상당수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사회 부적응, 2세에 대한 차별, 빈곤, 배우자의 폭력 등을 겪고 있다. 특히 어려움을 겪는 다수가 여성이어서 더욱 문제이다. 정부와 민간단체, 종교단체들이 결혼 이민자들의 사회 적응과 생활 안정,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개신교는 선교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공중파에서도 ‘러브 인 아시아’,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 등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기 위한 장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무늬만 다문화에 잔뜩 혈안이 된 듯하다. 준비할 새도 없이 빠르게 ‘다문화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진정한 다문화가 아닌 무늬만 다문화에 빠져있는 것 같다. 다문화인들에 대한 우리의 색안경은 짙고, 그 색안경을 뚫고 바라보는 시선은 소외와 편견, 무시, 학대, 구박, 방치 등의 비인간적 행태로 이어진다. ‘다문화인’이란 말은 새로운 사회의 형성에 따른 새로운 언어로 정착되고 있다. ‘다문화’, ‘다민족’, ‘다언어’ 비슷한 말들이 넘치지만 주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본 대척점의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차별적 용어일 지도 모른다. 다문화인이란 용어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의미로 규정된다. ‘다문화인’의 한국사회 진입은 우리가 불러들인 결과이다. 저출산 고령화, 낮아진 교류 장벽 등등, 우리가 필요한 인력을 안에서 찾지 못해 밖에서 불러들인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들의 러브콜에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그들은 생계가 주된 목적이지만, 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여성, 중국 조선족, 탈북민들의 늘어남은 우리 사회가 인지하기도 전에 하나의 문화를 형성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살며 낳은 2세들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부처님, 우리가 모시는 역사적인 석가모니 부처님도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다문화인’이었을지 모른다. 인도 북부, 지금의 네팔 룸비니에서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님의 피부색은 우리와 달랐을 것이다. 석가족의 성자인 부처님은 네팔계, 따라서 몽골계로 보는 학설도 있지만 당시는 인도-아리안 문화의 영역에서 살았다. 아마도 흑인은 아니지만, 기후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 보다는 피부색이 훨씬 검은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의 제자들을 ‘일불제자’라고도 부른다.  많은 ‘다문화인’들이 전통적인 불교국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주민들의 많은 수가 불교국가 출신이며, 중국을 제외한다면 이주민의 34%가 불교국가에서 신행활동을 하거나 불교신자인 것이 현실이다. 또 불교적 정서와 가까운, 불교가 포용할 수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같다. 그들도 일불제자이다. ‘이주민 120만 시대. 불교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 불교계 내·외부 자원을 활용한 이해와 사찰 중심의 지역사회에 대한 욕구 이해, 다문화시대 전문활동가 육성, 다문화사업에의 종단의 책무 등의 선결과제 등의 제시는 다른 분들에게 맡기려 한다. 또 이주민 지원사업, 다문화가정 지원사업 등을 통한 불교포교의 활성화 역시 다른 분들에게 맡기려 한다. ‘이주민 120만, 다문화 시대의 불교의 역할과 과제’라는 거창한 사업목표와 방향 제시를 대신해 불자들에게 단 한 가지만 부탁하려 한다. ‘다문화인’들을 불성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불자들이 먼저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 불성을 가진 이들을 불성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배척하고 차별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불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도 불성을 가진 우리와 같은 중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