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곤
자유기고가
오는 12월 22일은 음력으로 11월 5일 동짓날이다.
동지冬至는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있는 절기의 시작일이다.
즉,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 날을 중요한 축제일로 삼았다.
특히 우리 선조들은 동지를 ‘다음 해가 되는 날(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또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국왕에게 전문箋文을 올렸으며 민가에서는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은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고 집안의 벽이나 대문에 뿌리는 의식을 했다.
한편,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중국中國의 진秦나라 시대에 공공共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골칫덩어리 아들이 하나 있었다. 공공은 아들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이 살아야 했는데, 그 말썽장이 아들이 동짓날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런데 죽은 아들이 역질疫疾귀신이 되어 자신이 죽은 동짓날이면 마을에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역질병에 걸리게 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역질귀신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던 중 그가 살아있을 때 팥을 무서워했다는 사실을 알아내, 팥죽을 쑤어서 대문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려두었다. 그러자 더 이상 마을에 역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팥죽은 모든 잡귀신들이 싫어하는 음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게 된 신라시대의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시대에 한 가난한 선비가 살았는데, 어느 날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여 쉬어가게 해주었더니, 다음날 길을 떠나면서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하여 그러자고 했다. 그러자 이후로 그 과객은 선비의 집을 자주 찾아와 다음해 농사지을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과객의 말대로 하면 들어맞아 몇 년이 지나자 선비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과객은 항상 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에 사라졌는데, 언제부터인가 과객이 왔다 가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참을 수 없을 만큼 병색이 심해지자 선비는 스님을 찾아가 그 연유를 여쭈었다. 그러자 스님은 과객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과객이 찾아온 날 밤 그것을 집안 곳곳에 뿌리라고 일러주었다. 선비는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연스럽게 과객에게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과객이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선비는 과객이 자기 집을 찾아온 날 밤 백마를 잡아 집안 구석구석에 그 피를 뿌렸다. 그러자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황급히 도망을 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선비는 건강을 다시 되찾았다. 그러나 그렇게 도망을 간 과객은 평상시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는데, 해마다 동짓날이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동짓날마다 백마를 잡을 수도 없었던 선비는 다시 스님을 찾아가 동짓날 과객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 방도를 여쭈었다. 이에 스님은 팥물이 백마의 피와 빛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 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을 집에 뿌리라고 일러주었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라고도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국가적인 큰 명절이요, 민간의 풍속이었던 동지가 불교계의 행사로서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발전시켜가고 있는 불교가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