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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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24) 체험의 길(2/6) 10주 법문을 배우는 선재동자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은 분량도 많은 만큼 그 속에 등장하는 이이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장의 갈피를 잘 잡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경전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부터 소개한 「입법계품」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기로 한다.
「입법계품」의 설법 무대는 ‘기수급고독원’이라는 동산이다. 이 동산 숲속에 세워진 선주누각에 많은 보살님, 성문 스님, 그리고 국왕이 모여들었다. 물론 그들을 따르는 대중들도 함께했다. 모인 대중들은 갖가지 궁금증이 생겨 부처님께 질문을 한다. 그런데 묘한 것은 부처님은 말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신통한 힘을 발휘하여 운집 대중 모두를 삼매 속으로 끌고 들어가, 그들이 궁금해했던 것을 직접 보게 한다. 그들이 본 상황에 대해 경전에서는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 무수하고 다양한 중생을 갖가지 방법으로 제도한다고 말이다. 구체적인 상황은 이하에서 전개된다.
부처님께서 당시 숲에 모인 모든 대중을 데리고 들어가신 삼매는 ‘사자가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펴는 듯한 모양의 삼매’이다. 모인 대중들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가피하시는 힘’으로 삼매에 들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어떤 노력인가? 그것은 부처님께서 미간에서 빛을 발산하셨기 때문이다. 그 빛 덕택에 불보살님들이 중생 제도하는 모습을 동산에 모인 대중들이 보게 된 것이다. 그러면 ‘중생을 제도하는 구체적 모습’은 어떠한가? 󰡔화엄경󰡕에서는 그 모습을 선재동자가 구법 여행하는 방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구법 여행을 통해서 선재동자가 배운 공부 내용은 크게 여섯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을 나열하면 ①발심하기, ②마음먹기, ③실천이론 배우기, ④회향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⑤수행의 지위 배우기, ⑥깨달음을 체험하기이다. 이 중에서 지난 11월호에서 ①발심하기를 소개하면서 필자는 ‘체험의 길(1/6)’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6분의 1’이라고 표기한 이유는 ①에서 ⑥에 이르는 총 여섯 중에서 첫째라는 뜻이다. 이번 12월호에서는 ‘체험의 길(2/6)’이라고 달았다. 이제 ②마음먹기를 다루겠다는 뜻인데, 한문으로는 ‘10주住’ 법문에 해당한다.


2.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입법계품」의 설법 형식은 네 장면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첫째, 앞서 만난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 구도의 길을 떠나는 장면, 둘째, 선지식을 만나 인사 올리고 질문하는 장면, 셋째, 선지식이 선재동자를 칭찬하시며 가르침을 내리는 장면, 다시 선지식의 추천을 받는 장면, 이렇게 말이다. 지난 11월호에서 선재동자는 문수보살로부터 ‘①발심하기’ 수업을 받았는데, 이런 공부를 마친 뒤 다음의 수행자를 추천하는 장면을 함께 읽어보기로 한다.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승락勝樂이란 나라가 있고, 그 나라에 묘봉妙峯이란 산이 있고, 그 산중에 비구가 있으니 이름을 덕운德雲이라 합니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묻기를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내지 보살이 어떻게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하느냐’고 하라. 그 덕운 비구는 자세히 말하여 주리라.”


이렇듯이 마지막에는 다음 선생을 추천한다. 그러면 선재동자는 그 추천에 감사드리면서 남쪽으로 향한다. 질문을 내용도 알려준다. 즉 공부할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경학을 연구하는 옛 전문가들은 그 공부의 내용이 보살의 ‘10주住 수행’이라 한다.
10주란 �주품 제15」에 요약적으로 소개되었다. �주품」에서 10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즉,


“무엇을 열이라 하는가? 이른바 ①초발심주初發心住, ②치지주治地住, ③수행주修行住, ④생귀주生貴住, ⑤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⑥정심주正心住, ⑦불퇴주不退住, ⑧동진주童眞住, ⑨법왕자주法王子住, ⑩관정주灌頂住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십주十住라 하나니,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의 부처님들이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법혜보살의 입을 빌려 이렇게 ‘10주住 수행’의 제목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는 차례로 그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입법계품」에서는 10명의 수행자를 등장시켜 선재동자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보살의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10명이란 차례대로 ①덕운비구, ②해운비구, ③선주비구, ④미가장자, ⑤해탈장자, ⑥해당비구, ⑦휴사우바이, ⑧비목구사선인, ⑨승열바라문, ⑩자행동녀이다. 저곳 �주품」에서는 법혜보살이 홀로 설명하지만, 이곳 「입법계품」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설명하는 점이 다르다. 신분도 비구 스님도 있고, 남자 신도를 뜻하는 우바이도 있고, 예쁘고 품격있는 공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참고로, 동그라미 속에 붙어있는 숫자는 설법 내용이 일치함을 표시한다. 예를 들면, ①덕운비구를 만나서는 ①초발심주에서 배워야 할 보살행을 배운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 한두 가지만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3.
우선 덕운비구를 만나서 발심에 관한 수행을 묻고 배우는 장면을 보기로 한다. 덕운비구를 만난 선재동자는 이렇게 여쭙는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내지 어떻게 해야 보살의 행을 빨리 원만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듣자온즉 거룩하신 이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바라옵건대 자비하신 마음으로 말씀하여 주소서. 어찌하오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나이까?”


이런 질문을 받은 덕운비구는 선재동자에게 다음과 같이 운을 뗀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또 보살의 행을 물으니, 이것은 어려운 중에 어려운 일입니다. 이른바 보살의 행을 구하며, 보살의 경계를 구하며, 보살의 벗어나는 도를 구하며, 보살의 청정한 도를 구하며, 보살의 청정하고 광대한 마음을 구하며, 보살의 성취한 신통을 구하며, 보살의 해탈문 보임을 구하며, 보살이 세간에서 짓는 업을 나타내기를 구하며, 보살이 중생의 마음을 따라 줌을 구하며, 보살의 생사하고 열반하는 문을 구하며, 보살이 함이 있고 함이 없음을 관찰하되 마음이 집착이 없음을 구함이니라.”


이미 발심發心을 한 선재자동자를 칭찬하면서, 발심한 뒤에 더 닦아야 할 보살의 실천행을 묻는 점도 칭찬한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노라고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는 그 마음을 바탕으로 수행해야 한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그 수행 방법을 선재동자가 덕운비구에게 여쭙는 장면이다. 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나는 자유자재하고 결정하게 이해하는 힘을 얻어서, 믿는 눈이 청정하고 지혜 빛이 밝게 비치므로 경계를 두루 관찰하여 모든 장애를 여의었으며, 교묘하게 관찰하여 넓은 눈이 밝아서 청정한 행을 갖추었으며, 시방의 모든 국토에 가서 여러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를 항상 생각하며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모두 지니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항상 뵈옵느니라”


이 문장을 요약하면, ‘이해하는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잘 살펴 못된 행도 않고 착한 행동에 매진하되, 부처님을 공양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하는 힘’이란 한문으로는 ‘해력解力’이다. 이것이 실천수행의 첫 출발점이다. 불교 교리의 철저한 이해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부처님을 항상 공경하고 부처님께 공양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항상 부처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날 질 않아야 한다. 머리에 부처님이 떠나지 않는 것을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한다. 덕운비구는 선재동자에서 보살행 그중에서도 ‘발심주’의 수행으로 염불삼매를 알려주는 것이다.


4.
이렇게 하여, 선재동자는 차례로 10명의 선지식을 만나 보살 수행법을 배운다. 그 열째에 해당하는 선지식은 자행동녀이다. 이 동녀는 임금의 딸 즉 공주였다. 공주가 사는 왕궁에 들어간 선재동자는 멋진 궁전의 이곳저곳을 관람한다. 참으로 황홀하였다. 이런 구경을 마친 선재동자에게 공주는 말한다. 이런 장엄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해서 얻은 결과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선남자여, 내가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문에 들어가서, 따라 나아가면서, 생각하고 관찰하고, 기억하고 분별할 적에 넓은 문 다라니를 얻으니, 백만 아승기 다라니문이 앞에 나타났느니라.”


반야바라밀 수행의 구체적 방법은, “따라 나아가기”, “생각하고 관찰하기”, “기억하고 분별하기”이다. 한문으로 다시 옮기면 수순취향隨順趣向, 사유분별思惟觀察, 억지분별憶持分別이다. 이런 수행의 결과로 수많은 다라니를 획득하게 된다. 이런 법문을 마친 공주는 선재동자에게 선겨비구스님을 만나라고 추천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