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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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군대로 가져가다 ⑥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호에 이어서>


역지사지-불법의 관리


육군은 대우가 낮은 편이고, 그들의 생활여건도 비교적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전쟁은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친지를 만나고 싶어도 힘들게 한다는 등 국가와 국민을 망치는 길이라고 공공연히 말한 적도 있습니다. 장경국 선생 앞에서도 수많은 말을 한 적이 있으니, 군대에서 한 이야기가 언론죄言論罪를 범한 셈은 아닐 것입니다.
나중에 삼군사관학교, 그리고 많은 군사학교·작전부대·군수물자부대·특수전략학교 등에서 계속 강연을 요청해 왔습니다. 장위국 선생이 특별히 전략학회에서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제가 전략전술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계속해서 고사하였지만 그의 성의를 더 이상 뿌리칠 수가 없어 인심·우의·평화·전쟁에 대한 불교의 관점 정도만 그들에게 강연했습니다.
과거에는 전쟁 중 창과 몽둥이에 의지해 정치권력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비심을, 성현의 인격을 길러내야 하며 이것이 정치권력보다 더 중요합니다. 총과 포탄을 사용하지 않고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전쟁입니다. 후방에서 책략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 가장 상책입니다.


존중과 포용-자비 관리
저는 당초 공산당의 군대가 중국 본토에서 인민들에게는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본 역사소설 속에 등장하는 ‘의군(의로운 군대)’·‘왕사(제왕의 군대)’ 등의 군대를 찬미하는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고대 역사에서 주나라 무왕은 어떻게 걸왕을 물리쳤을까요? 한나라 고조는 어떻게 포악했던 진나라를 섬멸하고 서초의 패왕이 되었을까요? 또한 당나라 태종은 정벌전쟁을 통해 후세에 어떻게 ‘정관지치貞觀之治’라 불리는 현군이 되었을까요? 그들의 군대규율이 뛰어나고 백성의 고통을 없애주는 ‘제왕의 군대’로 비춰졌다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늘 “소쿠리에 밥 담고 항아리에 담긴 술로 제왕의 군대를 환영한다(簞食壺漿 以迎王師)”라는 말을 언급함으로써 백성이 사랑하는 자신의 군대를 어떻게 열렬히 고대하고 환영했는지를 형용하였습니다.
전쟁은 아마도 피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전쟁은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격해서 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비의 영향력을 더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군은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은 군을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군인은 전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위험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국민의 보모 역할도 하기 때문에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진정한 전쟁은 사실 인자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국 군인들이 고아원 안에 있는 아기를 구하기 위해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달려가다 모두 장렬히 희생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한 아기를 구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전쟁은 또한 ‘사랑’의 한 가지 표현이며, 완전히 살육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군인은 앞장서 돌격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며, 혈기만 내세우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군인은 더욱 인자하고 덕이 있어야 하며, 사랑을 지니고 국민을 보호하는 자여야 합니다. 대지가 곧 우리의 집이며, 적은 또한 우리의 친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전쟁은 반드시 타인을 무찔러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항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항복시킬 수 있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이기심·오만·폭력·부족한 소양 등과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항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군대의 교육, 그리고 전쟁 역시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고 인간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아하니 군사는 파괴도 있지만, ‘공즉시색空卽是色’과 같이 파괴한 뒤에 다시 더 훌륭하게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마조에서 포교할 때 “네가 크고 나는 작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마조방위사령관 엽경영 장군은 저의 이 한마디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며, 평소에도 항상 “네가 크고 나는 작다”라는 말로 군대의 형제들을 격려해 왔고, 자기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네가 크고 나는 작다”는 말은 그들에게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함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입니다. 군대는 분명한 계급사회지만, 상대를 존중하면서 관리할 수 있다면 자연히 타인의 존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이 나를 존중하게 되니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될 것입니다.
관리는 예술의 일종이며 탄력적이고 기발한 점이 있습니다. 전장에서 장군 한 사람의 한마디 구령, 한 가지 명령은 수많은 군사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을 돌파해 나갈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전장을 관리하던 대장군도 집에 돌아오면 부인 하나도 어쩌지 못하고 쩔쩔맬 수도 있습니다.
저는 관리는 명령이 아니고, 지시가 아니며, 권위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관리하려면 존중과 포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평등을 배우고자 하면 서로 입장을 바꿔보면 되고, 그리하면 모두 원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타인이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믿음을 주고, 타인이 기꺼운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인사관리 입니다.
사실 타이완의 불교가 융성해지는 데 있어 장위국 선생과 총통부 정치고문을 역임한 적이 있는 학백촌 선생 등의 인사들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당초 그들이 불교의 교화기능을 긍정적으로 보아 주셨기에 불교가 군영에 들어갈 수 있었고, 불법의 홍보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불문에 예불하러 오고, 삼보에 귀의하고, 육군·해군·공군·헌병 등의 수많은 군인들이 불법을 배우려는 인연을 성취시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