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우리 사회는 지금 비정규직 또는 실업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청년 실업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직장을 얻었다 해도 20대는 '88만원 세대'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박봉에 시달려야 한다.
직장을 얻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북미, 유럽, 일본 등 선진국가들에 있어서도 대규모의 실업은 일반화된 지 이미 오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는 지금 '노동의 위기'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노동의 위기에 대해서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심도 있는 분석을 한 바 있다. 그는 이 위기에 대해 "세계 도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다. 젊은층들은 좌절감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며, 노년층 노동자들은 과거의 영광과 암울한 미래 사이에서 자포자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 변화의 규모는 너무나 커서 우리는 그 궁극적인 영향을 측정할 수가 없다"라고 진술한다. 그것은 다국적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하이테크 생산 설비를 채용하면서 비용 효율성, 품질 관리, 분배 속도 등의 면에서 더 이상 경쟁이 안 되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자동화된 미래의 확실한 코스에 놓여 있는 우리는 21세기 초반에는 최소한 제조업에 있어서는 거의 무노동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고, 서비스 분야도 비록 자동화가 조금 느리겠지만 21세기 중반에는 거의 자동화 상태에 근접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잃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직한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직업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심화 시키고, 직업윤리를 확립해야 한다.
먼저 직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불교적으로 볼 때 직업에는 크게, 경제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있다.
첫째는 경제적 의미이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며 거주할 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수단은 자연 속에서 그냥 저절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재화의 창출이 필요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고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재화(또는 財)의 획득이 필요하다. 토지 및 자본과 함께 생산의 3요소라 일컬어지는 노동은 이러한 재화의 획득과 증식이라고 하는 경제적 의미가 그 기본적 의미라 할 수 있다. 불교 초기경전 가운데도 이러한 노동의 경제적 의미를 분명하게 설하고 있는 가르침이 발견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상인이 오전에 열심히 업무에 힘쓰고 낮에도 열심히 업무에 힘쓰며 오후에도 열심히 힘쓴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을 얻고 또 이미 얻은 재산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 의미이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사물과 존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처럼 얽혀 원융 무애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 속에 있다. 모든 것은 절대적이고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고도 역동적인 상호의존성의 바탕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연기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관계성과 사회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이 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노동과 생산이다. 노동은 그 대가로 경제적 급부를 제공 받고 그것에 의해 생활이 유지되고 지속적인 사회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직업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직업은 개인과 사회, 전체와 개체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이자 통로이기에, 이 직업을 통해 사회 전체와 개인의 양극은 상호작용을 하며 인간 생활을 유지시켜 간다. 노동과 직업은 모든 인간 생활의 기초이며 이 기초 위에서 인류 문화는 창조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동의 사회성을 망각한 채, 노동을 통한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지 소로스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결과만을 강조하는 편의주의가 만연해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도덕성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기 이익이 일종의 사회적 가치가 되어버렸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편견이 되어버렸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형선호 역)
한 마디로 시장가치의 확산으로 공동체가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소로스의 지적이다. 하지만 그는 시장의 기능은 절대 유지되어야 하며, 다만 이제는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태도를 버리고 열린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장인들은 반드시 공동체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승경전의 하나인 『범망경(梵網經)』에서는 "모든 남자는 다 나의 아버지이고 모든 여자는 다 나의 어머니이니 내가 태어날 적마다 그들을 의지하여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도의 중생들이 다 나의 부모이니라"라고까지 설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들의 일상생활도 수많은 사회적 노동의 은덕에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한 채의 집을 짓는 데도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목재상, 목수, 미장이, 유리가게, 석공, 전기공사, 기와공사, 하수도공사  등, 엄청난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양복 한 벌이 완성되는 데도 재단사, 직물업자, 염색업자, 양모수입업자, 수출업자, 목축업자 및 이 과정에 개입하는 운송, 금융, 보험, 창고, 포장, 중간상인 등 다양한 노동과 급부가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입고 있는 여러 은혜를 크게 네 가지, 즉 부모은, 중생은, 국왕은, 삼보은(三寶恩)으로 구분하여 설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바로 알아[知恩] 은혜에 보답[報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본다면, 직장에서의 노동은 우리가 받고 있는 수많은 은혜에 보답하는 행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직장에서 행하는 일의 의미가 얼마나 크며,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는 종교적 의미이다. 동물은 건강하고 먹을 것만 충분하면 행복하지만 인간은 결코 그럴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생존의 욕구'와 '초생존(超生存)의 욕구'가 병존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종교에 귀의하여, 꽃과 향을 들고 조용한 사원을 찾아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이 찬송과 노래와 기도 따윈 그만 두시지요! 문들이 모두 닫힌 이 사원의 쓸쓸하고도 어두운 구석에서 당신은 누구를 예배하는 것입니까? 눈을 뜨고 보십시오, 신은 당신 앞에 없다는 것을! 그분은 농부가 팍팍한 땅을 갈고 있는 곳과 길 닦는 이가 돌을 깨고 있는 곳에 계십니다. 볕이 들거나 소나기가 퍼붓거나 그분은 그들과 더불어 계십니다. 그분의 옷은 먼지로 뒤덮여 있습니다. 당신의 신성한 망토를 벗고 그분처럼 당신도 먼지투성이의 저  흙 위로 내려가십시오.
『법화경』에서도 "직업을 갖고 살아나가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직업과 산업이 곧 불법이다(資生産業卽是佛法)"라고 설한다. 이 가르침 역시 노동의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노동의 종교적 의미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은 종교적 수행을 위한 수단이고, 노동 자체가 거룩한 수행의 과정이며, 노동의 결과가 고통받는 중생에게 회향된다는 세 가지 측면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직장윤리에는 어떤 실천덕목들이 있을까. 먼저 『육방예경(六方禮經)』에는 하인이 주인에게 지켜야 할 사항으로, ①주인보다 먼저 일어나고 ②주인보다 늦게 취침하며 ③주인이 주는 것에 만족하며 ④자신의 일을 잘 하고 ⑤주인의 명예를 드날려야 한다는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메트칼프와 해틸리는 그들의 책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서 이 다섯 가지 윤리조항을 다음과 같이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 상사보다 일찍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라. 조금 일찍 나온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차분하고 침착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다. 둘째, 상사보다 늦게까지 일하라. 덜 끝마친 일을 마무리하거나 동료를 돕기 위해서 야근을 불사하는 모습은 상사에게 당신이 열성적인 직원임을 인식시켜 준다. 그리고 이런 가외의 시간이 흔히 하루 가운데 가장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곤 한다. 셋째, 고용주가 주는 것만 받아라. 회사에서 쓰던 볼펜이나 클립 같은 작은 사무용품 따위를 집에 가져가는 행동을 별 일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림없는 도둑질이고, 더 큰 부정으로 빠져드는 시작이다. 넷째,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라.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맡은 일은 대충대충 하면서 왜 자기가 좀 더 성공하고 인정받지 못할까 궁금해 하며 살고 있다. 다섯째, 고용주의 이름을 드높여라. 당신이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회사를 대표한다. 근무 중이건 아니건 간에 항상 고용주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회사를 대표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라.
이 외에도 직장생활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첫째,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근면과 성실로써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은 『잡아함경』의 가르침이지만, 『별역잡아함경』은 더욱 구체적으로 설한다. "혹은 왕의 신하가 되거나, 농부가 되거나, 또 다른 무슨 일을 하든, 그 직업을 따라 고통을 싫어하지 않고, 또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그 어떤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 업을 버리지 않고 그 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애써 나아가는 것을 정근(精勤)이라고 한다."
둘째,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창조적으로 임한다. '지시 받은 대로만 일한다' '많은 연봉을 받는 리더들이 해답을 갖고 있겠지' '난 그저 여기서 일만 할 뿐, 새로운 규칙을 만들 필요는 없어' 등의 자기 합리화로 매사에 뒷전으로 물러서기만 하면 발전은 없다. 주인의식을 갖게 되면 직장 일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 자긍심과 사랑으로 일에 임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이익과 행복을 안겨준다는 믿음과 그러기에 더 큰 사랑의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칼릴 지브란은 충고한다. "만일 그대가 무관심하게 빵을 굽는다면, 그대는 사람의 굶주림을 반밖에 메울 수 없는 쓴 빵을 굽고 마는 것. 만일 그대가 포도를 짓이기면서 불평한다면 그대의 불평은 포도주에 독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만일 그대가 천사처럼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인간의 귀를 싸매어 낮의 소리와 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라."
넷째,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한 방편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업을 택할 때, 임금보다는 자기 적성과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부의 축척에도 도움이 되고 성공적인 삶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발문>
직장에서의 노동은 우리가 받고 있는 수많은 은혜에 보답하는 행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직장에서 행하는 일의 의미가 얼마나 크며,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직장생활에 관련된 일반 자료사진 한 컷 찾아서 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