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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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사 거사회 성지 순례기

문담 하장춘
여래사 거사회원


이리(裡里)로 통하던 익산(益山)지역에 백제의 사찰 터가 있고, 이 사찰이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발상 정착지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될‘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아십니까?
그리고 고창(高廠)에 있는 선운사(禪雲寺)가 지금 터로 남아있는 미륵사, 그리고 백제 말엽의 당나라 장수이던 소정방이 당과 신라의 영지가 된 예전의 백제 땅이던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이름을 바꾼 내소사(來蘇寺)가 거의 동시대 사찰인 점도 아십니까?

미륵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심으로부터 56 억년 후에 오실 미륵보살을 기다리며, 부처님처럼 모범적으로 수행하여 이 보살이 오시면 이분을 맞아 이상세계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신앙 운동인 셈입니다.
이런 미륵신앙을 기초로 하여 지어진 것으로 설명되고 있는 익산시 금마면 용화산 아래 기양리 일대 절터에 세워져 있던 미륵사는 백제 30대 무왕(武王) 시기에 창건된 절이고, 도솔산 선운사는 무왕의 아버지 위덕왕 때(서기 537년) 창건됐습니다.

능가산 내소사는 무왕 때(서기 639년) 창건되었지만, 백제 마지막 왕이던 의자왕 시기에 소정방과 신라병들이 부여성을 쳐서 이긴 백제의 수도 부여 인근에 있음으로 해서 정복자 소정방이 당에 귀국해 있다 다시 백제 지역에 와 이곳 소래사(蘇來寺)를 방문함으로써 내소사(來蘇寺)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백제 후기 이 세 사찰이 지장도량과 관음 도량, 그리고 미륵도량으로 각각의 역활을 하였던것 입니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퇴임 후 이 곳 부근의 굴에서 머물며 수도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에 백제의 위덕왕 시기에 창건되었고, 이미 있던 능가산 내소사는 백제의 사직이 무너지면서 적장이던 소정방의 방문을 받고 칙사대접을 하여 이름까지 바꾸었던 것입니다.
세 절 중 오직 선운사만이 백제의 멸망으로부터 별 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절입니다. 그러나 이 절들은 불교를 국가의 가르침으로 받들던 고려시기에는 모두 무사하였으나, 조선시기에 들어와서는 물론 그 후 복원되기는 하였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이기지 못하고 불타거나 허물어지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백제의 수도이던 부여로부터 금강을 건너 위치해있어 그다지 멀지 않은 미륵사는 백제가 멸망하면서 함께
폐허지로 되어버린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재건하기를 기원하며 물러나왔습니다.
미륵사상은 지금도 밝고 맑은 메시지이지만, 미혹한 중생들의 작동으로 부정과 저항의 사조로 변질된 것
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극복하여 본래의 미륵사상으로 부활 하는 데는 중생들이 부처님의 진실한 가
르침을 깨달아 밝고 맑은 심성으로 거듭나는 길에 있을 것입니다.

최근‘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사리와 장엄구에는 사리를 봉안하게 된 동기와 이 절을 창건할 당시 왕비의 부처님을 향한 염원이 담긴 금제사리봉안기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왕후의 신심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어 칠세의
구원까지도 함께 복리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라고 미륵신앙의 진수를 적고 있 습니다.

남아 있던 세 개의 탑 중 한 쪽에 위치해 있던 '미륵사지 석탑'은 지난 1월 조사를 위해 해체된 모습으로 복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륵사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미륵신앙의 이야기처럼 내세를 기약이나 하듯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도솔산 선운사는 도솔암의 내원궁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마애보살상을 머리에 이고서, 선운사 승가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활발한 교구 중심사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내소사 역시 삼성각을 높은 곳에 모신 채 긴 역사를 안고 고즈넉하게 제 자리에 있어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말없이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상처를 아물리지 못한 미륵사를 뒤로 하고, 여래사 거사회 2009년도 성지순례 도반일행은 장마 가운데를
뚫고 다시 여래사에 안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