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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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무수한 지식,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까?

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대한민국의 현대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짧은 역사이지만 때로는 좋지 못한 경험조차도 끝내는 좋은 쪽으로 승화시킨 특별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西 유럽이 긴 세월을 거쳐 이룬 국회로 상징되는 소위 대의 민주주의를 짧은 기간에 정착시킴은 물론, 과학과 기술 방면에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나이 70을 전후한 필자 같은 세대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그때의 대한민국과 지금 노년이 되어 경험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딴 나라와도 같다. 그러는 사이, 개인은 물론 가족 공동체의 삶의 양식도 달라졌고, 각종 윤리와 가치들도 달라졌다. ‘달라졌다’는 표현보다는 옛날과 지금이 ‘섞여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필자는 생각한다, 현대 우리 사회의 특징은 ‘섞여 있음’이라고. ‘예와 지금’이 섞여 있음은 위에서도 말했고, 각 방면끼리 ‘무수한 정보와 지식’도 섞여 있다. 한 사람이 무슨 결정을 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정보와 지식이 넘쳐난다. 나아가 나를 포함한 내가 속한 공동체가 무언가를 결정할 상황에 놓이면, 그 결정에 필요한 정보들은 더욱 넘쳐난다. 특히 우리의 지금 현실은 IT산업의 발달,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 그리고 사회적 정보 시스템의 발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은 실로 풍부하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2.
위에서 말한 ‘섞여 있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물건을 하나 구매할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해하기 쉽게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본다. 지난여름은 유독 덥고 습기도 많았다. 서재에 습기 제거가 필요해 제습기를 들여놓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회사 제품을 살 것인가? 어느 가격대에서 살 것인가? 용량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배수 방식은 실외로 방출하는 연결 호스가 있는 것으로 할까, 아니면 내부 용기에 모아두었다가 다 차면 버리는 것으로 할까? 등등의 선택을 결정하는 기준은 ‘나’이고, 내가 필요로 한 ‘나의 상황’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통계청의 보고에 따르면 2023년 현재 한국인 남성의 기대수명은 80.6세라고 한다. 역시 필자의 경우를 상상한다. 내년이면 예전 식으로 칠순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향후 10년은 남겨진 셈이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되는대로 살기는 싫다.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다. 할 일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해야겠다. 제한된 10년 이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 교수 정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하루에 책상 앞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많아졌다. 달라진 점은, 정년 전에는 연세대에서 1주일에 6시간을 강의했는데 지금은 3시간 강의하는 것이며, 정년 전에는 논문을 주로 썼는데 지금은 책을 쓰는 것이다. 크게 달라진 점은 “내 생명이 이제 약 10년 남았다”라는 절실한 인식이다.
컴퓨터 파일 속에는 그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메모해 두었던 것들이 아주 많다. 그중에는 책이나 논문으로 출판된 것이 약 50%이고 나머지는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미완이라고는 하지만 약간만 손을 보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지런히 출판사로 넘기고 있다. 때로는 밤을 꼬박 새는 경우도 있다.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들은 성화이지만, 나는 말한다. 남은 10년 중 더 늙기 전에 약 5년간은 이렇게 집중해서 내 일생 연구하던 <화엄학>과 <선학> 분야를 정리하고 싶다고 말이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달라고 말이다.


3.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내’가 있고 ‘내 인생’이 있다. ‘내 인생’, ‘나의 선택’, 이런 문제들 앞에 서게 되면 이미 과학이나 기술의 영역을 넘어선다. 다시 말하면 과학이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위 객관적이니 합리적이니 하는 이런 요소가 끼어들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이 지점에는 자기 자신의 ‘인생관’이 중요하다. ‘가치관’이라고 해도 좋다. 철학이라는 용어를 덧붙여 ‘인생철학’이라고 해도 좋다. 내 인생을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본인의 판단이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바로 이런 실존적 ‘선택’에는 자기만의 통일되고 일관된 입장이 중요하다. 불교가 바로 이 지점에 역할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 그래,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물론 그냥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인생이다. 물길 흐르는 방향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달라, 때로는 물길을 거스르더라도 내 길을 가려 하는 노력, 그것도 인생이다.
필자가 선교사들이 설립한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불교철학을 담당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불교 신자입니까?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불교를 소재로 인간, 그중에서도 윤리 행위의 주체로의 인간을 연구하는 연구자입니다. 해서, 나는 나 스스로 내 연구 분야를 ‘철학적 인간학’으로 규정한다. 이와 함께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렇게 불교를 연구하다 보니 불교가 좋아집디다.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불교는 내게 어둠을 항해하는 배의 등대와 같다. 방향을 잡아준다.
불교 경전이 전하듯이, 생로병사의 변화를 거쳐 일생을 마친다. 반드시 죽음의 날이 온다. 그리고 특별한 노력 즉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또 태어난다. 이것은 믿음의 생활이다. 내 나이 70을 돌아보면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행복했던 때도 많다. 살아볼 만한 세상이었다. 때문에, 다음 세상에 태어나는 게 싫지는 않다. 그러니 더 이상 윤회에 들지 않으려고 ‘특별한 정진 수행’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번 생을 마쳐 사바세계를 떠나 다음 생에는 극락세계 가고 싶지도 않다. 이곳 ‘사바’나 저곳 ‘극락’이나 수행해야 번뇌가 사라진다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렇게 수행 안 하고 펑펑 노는데. 극락세계가 비록 각종 환경이 좋다고 한들, 거기 가서 할 리는 만무하다. 나는 나를 그래도 좀 안다.
필자는 좋은 스승을 만났고 또 은혜로운 연세대학을 만나, 한문 불교 경전을 읽고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향후 5년간은 육체적으로나 뇌 건강이 이만할 때 <화엄학>과 <선학> 방면의 고전을 정리하여 출판하며 보낼 것이다. 설사 몸이 좀 망가져도 심지어는 생명이 좀 단축되어도 이 길을 갈 것이다. 필자는 이런 것을 ‘선택’이라고 한다. 이런 인생의 ‘선택’에 불교는 내게 ‘으뜸 되는 가르침’ 즉 <宗(마루 종) 敎(가르칠 교)>로 다가온다. 내 인생에 있어, 부처의 가르침 즉 불佛의 교敎는 산마루와 같은 가르침이다. 가장 높은 산마루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주변의 이 산 저 산을 종합적으로 둘러보면서 살려고 노력했고 또 노년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현대사회는 무수하고 귀한 정보들이 그것도 쉽게 취할 수 있는 상태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무엇을 선택할 지는 자신 몫이다. 어떤 순서로 택할지도 제 몫이다. 이런 선택에 필요한 게 종교이다. 종교는 총체적 가치체계이다.


4.
󰡔범망경󰡕 <상권>에는 대승의 불자가 지켜야 할 으뜸 되는 가르침 즉, 종교를 네 범주로 나누어 그 행동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크게 네 범주로 나뉘었다. ⑴첫째는 발심해서 수행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 ⑵둘째는 기르고 가꾸어야 할 수행 덕목, ⑶셋째는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하게 실천해야 할 덕목, ⑷넷째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단계이다. 지난 8월까지는 이 중에서 둘째의 범주 즉, ⑵장양심長養心을 모두 설명했다. 그 덕목의 이름만을 다시 상기하면,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이다.
이번 달부터는 셋째의 무너지지 말고 굳건하게 다져가야 할 열 가지 덕목, 즉 10종의 <금강심>을 소개할 차례이다. 10종이란, ①믿는 마음인 신심信心, ②염원하는 마음인 염심念心, ③회향하는 마음인 회향심廻向心, ④공한 줄을 아는 마음인 달조심達照心, ⑤정직한 마음인 직심直心, ⑥물러서지 않는 마음인 불퇴심不退心, ⑦대승의 마음인 대승심大乘心, ⑧티 없는 마음인 무상심無相心, ⑨지혜로운 마음인 혜심慧心, ⑩번뇌에 부서지지 않는 불괴심佛壞心이다.
과학적 지식과, 현대 문명의 기술은 그것을 쓴 사람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결코 과학이나 기술이 그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저마다 가치관의 문제이고 인생관의 문제이다. 인생과 가치를 총체적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여러분에게 있어 불교는 종교입니까? 세상살이의 수많은 지식 중의 하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