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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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름은 젊음과 사랑의 계절이었다

정성운
텃밭농부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라고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1978년 강변가요제 수상곡 ‘여름’이다. 그즈음 여름이 오면 이 노래가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울려 퍼져 분위기를 띄웠다. 특히 고음으로 치달으며 반복되는 후렴구가 특히 흥겨웠다.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그때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과 바다와 강으로 여름을 즐기기 위해 나섰다.
47년 전 그때의 여름은 분명 젊음과 사랑의 계절이었다. 최근에 이 노래가 발표되었다면 어땠을까. 여름을 재앙의 긴 터널로 만들어놓고 말았으니 여름 노래도 흥겹게 즐길 수 없게 된 시절을 겪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도 닥친 열대야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가 한참 전에 지났건만 폭염과 열대야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두어 번 비가 내렸지만 습도가 높아 무더위를 식히지는 못했다. 기상청 예보를 보니 또다시 뜨거운 티베트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을 덮고 있다. 올해도 폭염과 폭우, 열대야 발생일수가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여름은 열매를 맺어가는 계절인데, 지금의 여름은 고난의 시절이다. 여름은 길어졌고, 내내 뜨겁고 무덥고 열대야다. 이 더위를 피해 갈 곳이 있을까. 강원도 태백의 산골은 오래도록 열대야가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곳마저 열대야가 덮쳤다. 더위를 피해 갈 곳은 없다. 여기에서 견뎌낼 수밖에 없다.
우리만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최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연일 40도 넘는 기온과 산불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바짝 건조한 기후 탓에 산불 경보가 발령되었는데, 방화까지 겹쳐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천900개 학교에 휴교 조치가 내려졌는데, 일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유럽에서만 매년 17만5천 명 이상이 더위의 영향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쪽에 대서양을 끼고 있는 나라들, 즉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미 아프리카 북부의 날씨가 되었다. 위쪽에 있는 영국은 예전의 스페인과 같은 날씨의 양태를 보인다. 기후 지도가 싹 바뀌고 있는 중이다. 지중해성 기후가 영국에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다른 것은 북아프리카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폭우를 곁들인다는 것이다. 우울한 예측이다. 그러나 최근의 날씨 변화를 보면 그 예측이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한반도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나타났다. 30여 년 전 사과 재배의 북쪽 한계선은 충북 충주쯤이었는데, 지금은 강원도 홍천까지 올라갔다.
자연의 영향은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 미친다. 농업은 이제 대규모 시설 재배이지 않고서는 유지가 어려워진다. 폭염과 폭우를 견뎌내려면 기온을 조절하고 폭우가 논밭을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야 하는데, 국내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남의 땅이라도 빌려야 하는데, 어느 나라인들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농산물 외 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그럼 무력을 앞세워 뺏기를 시도하는 사례도 나타날 것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밀쳐둘 수 없다. 역사는 늘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반복 또는 악화되기도 한다. 다시, 우울한 예측이다.


새로운 국제질서 ‘전쟁’인가


아니 현실이다. 얼마 전 미국은 남미 베네수엘라의 먼 바다에 4,200명의 병력과 군함, 정밀 타격 무기를 배치했다. 미국은 무력시위의 이유로 마약 두목을 체포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는데,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실상은 유전을 확보하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임기 때부터 베네수엘라를 노렸고, 2020년 5월 용병을 투입해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려는 작전(작전명 기디온)을 감행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3년 6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전을 회고하며 “마두로 정권을 전복한 뒤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유튜브, 박종훈의 지식한방] 베네수엘라는 민병대까지 조직해 미국에 맞서고 있다. 만약 미국에 비판적인 남미의 나라들이 베네수엘라를 돕겠다고 나선다면 확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예전에는 정보기관을 동원해 은밀히 작전을 진행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했고, 세계의 경찰국가, 평화 수호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70~80년대 칠레 등 남미의 좌파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주로 CIA를 활용했고,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골적이다.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파나마를 향해 무력 협박을 감추지 않았는데,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작은 나라 파나마는 두 손을 들었다.
국제사회는 국가 간의 갈등을 평화적 외교로 해결하길 바란다. 국제연합(UN)의 등장은 이 같은 바람의 결과였다. UN이 만족할 만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때도 있지만, 이만한 대안이 없기에 UN은 국제사회의 평화를 힘겹게 지탱하는 유일한 국제기구다. 무력과 침략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질서로 떠오르는 지금, 기후변화로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이때에 UN의 존재이유는 더 커졌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대하는 것이 그 하나다. 더 근원적으로는 나눔과 평화다. 과학기술은 시설 재배와 닿아 있다. 온습도 조절, 더위와 추위, 습기에 강한 품종 개량, 아울러 다수확 품종의 개발, 작물 외 식량원의 개발 등이다. 기존 농지의 보존 그리고 새 농지를 만들어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방안이다. 에너지와 신소재 자원을 고도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과학의 일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정치적 악용, 거대자본에 의한 독점의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학기술은 대체로 정치적 패권과 자본의 이윤 추구의 하부단위로 기능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써 무기를 들 수 있다. 무기는 대규모 투자가 있어야 하고, 그만큼 큰 이윤을 남긴다. 권력과 자본의 결합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와 같은 길을 걸어왔고, 권력과 자본에 종속된 과학기술이 식량의 안정적인 생산에 기여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증가된 농산물의 독과점적 지배에 의해 가난한 나라와 국민들은 혜택을 보는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부자 나라에 더욱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밭에 나가는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 풀 베고, 고추와 토마토 따는 일이 예년에 비해 더욱 힘이 든다. 더위 때문이다. 밭에 다녀오고 나면 다음날까지 몸이 후끈거린다. 열에 시달리는 것이다. 배추, 무, 쪽파와 같은 김장 채소를 심어야 하는데, 몸이 무겁다. 괜히 일기예보를 들여다보며 언제쯤 기온이 내려가나, 이러면서 머뭇거리고 있다.
배추 재배에 적당한 온도는 15~20도, 결구 적온은 15~18도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역의 지금의 낮 최고 기온은 30도를 넘는다. 최저기온도 25도쯤이다. 배추엔 너무 높은 기온으로 생장 장애를 겪는다. 기온이 내려가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이러다 언제 그랬냐 싶게 기온이 뚝 떨어질 수 있다. 늦게 심으면 결구 전에 추위가 닥쳐 동해를 입을 수 있다. 텃밭 농사에서야 실하지 못한 배추를 거둬들인들 그러려니 하면 되겠지만, 생업으로 삼는 농부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다. 농사 기술의 절반은 경험이다. 특히 날씨와 짝을 맞추는 일이 중요한데, 예년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으니 어려워지고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날씨에 몸도 힘들지만 작물의 재배 적기를 가늠할 수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