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리카르의『행복, 하다』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최근 흥미있는 수행자를 인터뷰했다. 프랑스 과학자출신으로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마티유 리카르(66) 스님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세포유전공학 박사로 27살 때 돌연 히말라야로 날아가 티베트 불교에 출가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제일의 지성인들의 모임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장프랑수아 르벨이다. 그의 어머니 얀 르 투멜린은 화가였다. 삼촌은 세계 곳곳을 다닌 모험가였다. 어린 시절 파리 지성계, 예술계 인사들에 둘러싸여 지내던 리카르 스님의 친구로는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이 꼽힌다.
20년 동안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수행에 전념하던 그가 네팔 산속의 외딴 산장에서 아버지 르벨과 만나 불교와 서양 철학, 행복과 고통, 삶과 죽음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책이 베스트셀러 <승려와 철학자>다.
리카르 스님은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자란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트린 주안 투안과 함께한 대화록인 <손바닥 안의 우주>를 통해서 ‘불교와 과학’의 소통을 꾀하기도 했다.
그는 또 <티베트의 정신>, <티베트의 승무>, <불자들의 히말라야> 등의 사진집을 통해 티베트인들의 정신세계를 독특한 이미지로 세계에 전한 사진작가다. 이번 방한길엔 <고통에서 피는 희망>이란 사진집을 선보였다.
리카르 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마음과 삶 연구소’가 그의 머리에 256개의 센서를 부착하고 기능성자기공명장치로 촬영해 검사한 결과 긍정적 감정과 관련된 영역인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이제껏 조사한 사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건 <행복, 하다>(현대문학 펴냄)란 책이다. 그와 인터뷰는 행복하지 않은 한국인, 죽고 싶은 한국인들을 위한 질문에 집중했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스트레스가 높아 세계경제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자살률 1위다. 세계경제개발기구 하루 평균 자살률 평균 12.8명보다 2.6배나 많은 42.6명에 이르고 있다. 리카르 스님은 서구 과학자 출신답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아주 알기 쉽게 ‘살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외적인 성취를 위해선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데는 너무나 무관심하다”고 안타까워하며, 물질적 성공과 출세에만 목매다는 것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물론 그는 “외적인 조건을 개선해 가족을 부양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은 좋은 것”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하지만 “거기에만 모든 것을 걸어서는 안 된다”며 얼마 전 홍콩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홍콩에서 강연할 때 한 남자가 일어나 말했다. ‘15년 전 나는 백만장자가 되고 싶었다. 15년 후 그 보다 다섯 배나 많은 5백만 불을 벌었지만, 지금 와서 지난 15년을 낭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모든 걸 성취에만 걸다보면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충만감이 들지 않아 ‘내가 원했던 게 이것 밖에 안 되나’ 하는 절망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마티유 스님은 “달라이라마는 어느 대기업 회장보다 바빠 잠시도 개인적 짬을 내기 어려운데도 고통스러워하거나 불행감에 빠지지 않는데, 그건 내적인 평화와 지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티유 스님이 제시한 치유법은 두 가지였다. 먼저 제기한 것은 ‘마음을 보는 것’이었다.
“마음이 친한 친구도 되고, 최악의 원수도 될 수 있다. 조용한 곳에서 내 마음이 표면으로 올라올 시간을 주면서 가만히 있어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뭔가 내게 귀중한 길을 찾는다면 가는 길이 험하더라도 가려 들 것이다. 히말라야 험로를 오르는 등산가처럼.”
그가 제시한 또 하나의 방법은 ‘사고방식을 이타적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불행은 나만 생각하는데서 비롯되고, 행복은 남을 생각하는데서 온다’고 한 <입보리행론>의 저자 산티 데바와 같은 말이다.
“사실 절망은 자기만 생각할 때 쉽게 온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면 도울 일이 너무나 많다. 내 친구 심리학자가 실험을 했다. 두 그룹의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한 그룹은 영화도 보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자신만을 위해서 쓰라고 했고, 한 그룹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쓰게 했는데, 전자들은 지루해했지만, 후자들은 행복해했고, 얼굴엔 빛이 났다.”
그에게 다소 무례할 법한 질문도 던졌다. ‘당신만큼 머리도 좋지 못하고 못생기고, 부모도 잘 못 만나고, 훌륭한 멘토도 만나지 못하고, 베스트셀러도 내지 못한 사람들이 행복하기가 어디 쉽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그는 전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젊은 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고, 노력을 했다”면서 “그랬기에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에서 한 달에 30달러로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물질에 사로잡혀 프랑스를 떠나지 못한 채 원치 않은 삶을 살았다면 나도 죽었을 지 어떻게 알겠느냐”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이 인생의 방향을 찾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부모가 물질적인 성공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면서 부모로서 피해야할 두 가지도 제시했다.
“자녀를 ‘쓸모없는 놈’이라고 폄하하는 것과 무조건 자신감만 심어줘 자기도취에 젖어들게 하는 양극단을 피해야한다. 적성을 무시한 채 자기 방식만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내게 캔 로빈슨이란 친구 교육가가 있다. 하루는 그에게 한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왔다. 딸이 앉아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고 산만해서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어머니와 몇 분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딸은 계속 움직였다. 캔이 어머니에게 밖에서 기다리라며 나가게 한 뒤 음악을 틀었다. 소녀는 춤을 추었다. 이어 다른 음악을 틀어주니 소녀는 또 다른 춤을 추었다. 캔이 어머니를 불러 말했다. ‘딸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딸은 춤꾼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26살 때 잘 나가던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티베트 불교로 출가했을 때 아버지는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라고 여겨 내버려두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부모들이 자식의 행복을 위해 뭐가 필요한 지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자기의 친구 심리학자인 캐서 박사의 실험을 들려주었다.
2만 명 가운데 물질적 성취와 소비주의 성향이 짙은 25%와 반대 경향의 25%를 추려 비교분석한 결과 전자는 단기적 쾌락을 추구했지만, 음주·흡연 비율도 높고, 타인과의 공감력이 떨어져 친구도 적고, 환경문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행복지수가 낮았다고 한다. 반면 소비주의 성향이 적은 이들은 내면적 충족감이 높아, 친구관계나 건강도 좋고, 환경이나 사회적 쟁점에 관심도 많고 행복지수도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전에 만생에 있었건 천생에 있었건 과거는 전혀 바꿀 방법이 없어서 ‘전생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의미가 없다”면서 “어디서 출발했어도 지금 여기를 시작점으로 삼아 우리는 미래의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