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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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도道의 근본根本이요 공덕功德의 어머니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코로나19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되었는데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네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코로나 이지만, 긴장의 경계를 풀어도 안 될 일이요, 너무 두려워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다만 위생관리는 철저히 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일을 생활화 해 간다면 코로나 변이, 변종의 위험은 우리에게 범접하지 못할 것이라고 위로해 봅니다.
우리주변의 코로나19 발생 현황을 보면, 집단발병 확진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사찰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는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얼마나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자기위생관리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따뜻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확고한 신행생활信行生活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는 신앙信仰생활이 아니라 신행信行생활입니다. 신지행득信知行得이요, 그것을 믿고 이해하며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면 증득證得하게 되는 신해행증信解行證입니다.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십바라밀十波羅密로 표현을 했습니다. 십바라밀은 보살이 수행하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의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원願, 력力, 지智의 네 가지를 더한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은 십바라밀을 성취한 보살은 스스로 한량없는 마음을 내게 합니다.
그러한 보리심은 특별히 뭔가를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게 되면 무거운 짐을 벗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선근善根이 있는 지혜智慧의 불연佛緣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되는 일들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무거운 짐을 벗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노력이 중요하고 이런 삶이 의미 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하지도 않고 말만 앞세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자라면 마땅히 생활 자체가 신행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기신론起信論』에 ‘믿음의 힘에 의지하는 까닭에 우리는 수행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힘에 의지해서 수행하게 되면 환희심이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에게는 어찌해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다겁생多劫生에 닦아놓은 일이라 하여도 금생今生을 살아가면서 덕목德目으로 기쁜 마음과 즐거운 마음, 환희법열歡喜法悅한 마음을 가지고 살며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찌해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힘차게 일어나서 당당하게 걷고 저녁에 누울 때는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후회 없이 살아가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열반경涅槃經』에도 ‘큰 신심信心은 불성佛性이요, 불성은 곧 여래如來이다.’고 하였으며, 『범망경梵網經』에서도 ‘일체의 행위는 믿음으로 으뜸을 삼으니, 모든 덕의 근본이 된다.’고 하신 것 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는 ‘믿음은 더러운 마음이 없이 청정하므로 교만.慢을 없앤다. 따라서 공경의 근본이요, 법장法藏의 으뜸이어서 청정한 손이 되어 여러 덕행을 받아들인다. 중생이 있어서 능히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다면 반드시 한없는 선근善根을 얻을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도道의 근본根本이요 공덕功德의 어머니입니다. 공덕은 복덕福德과 지혜智慧입니다. 무루복덕無漏福德이 공덕입니다.
유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은 소멸되기도 하고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법칙처럼,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생이 능히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게 된다면 반드시 끝없는 선근善根을 유지하고 보리심菩提心이 증장될 것입니다. 믿음 없는 중생은 부처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동짓달은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동지섣달을 음력으로는 납월臘月이라고도 합니다. 이 추운 납월 8일은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이루신 날입니다. 사찰에서는 납월 8일이면 성도재일을 봉축하여 철야정진기도를 체험합니다. 음력 2월 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이며 2월 보름은 열반하신 날입니다. 사찰에서는 이 기간 역시 출가에서 열반까지를 정진주간으로 정하고 기도와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생애를 8폭으로 조성하여 모신 불화가 석가여래팔상도釋迦如來八相道입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입니다.
도솔천兜率天 내원궁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룸비니동산에 탄생하시는 모습은 불종자佛種子를 반복해서 열매와 씨앗의 촉수를 틔워가는 모습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아픔과 괴로움을 목격하다가 북문에서 한 수행자의 편안한 모습을 보시며 발심하여 출가를 결심하고 길을 떠납니다. 비유하자면 촉수를 틔운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게 한 다음, 새로운 땅으로 옮겨 심는 출가자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습니다. 출가 이후 6년 동안 수많은 선인들과 고행자들을 만나다가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삼매에 들어 깨달음을 이루게 되시니 이때가 바로 납월 8일 성도재일입니다.
훗날, 그 6년간의 고행기간을 이렇게 술회하셨습니다.


“머리를 만지면 파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만지면 덜 익은 오이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놓은 것 같고, 배를 만지면 등이 잡히고, 갈비뼈는 배 틀의 추 같고 엉덩이는 망가져 사막에 사는 낙타의 발바닥과 같았다.…”


극단적인 고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부처님은 소치는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잡수시고 기력을 회복하여 니련선하 강가에서 몸을 씻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 다시 보리수나무 아래 금강좌로 가셔서 길상초를 한 줌 얻어 바닥에 깔고 앉아 선정에 들었습니다.
성도하신 후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함께 수행하다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잡수시는 모습을 보고, 타락했다며 떠나버린 아약교진여 등 다섯 고행자를 찾아가 녹야원 사슴동산으로 찾아가 그들에게 법을 설하시여 귀의시키고, 이후 45년 동안 법을 펴신 후 사라쌍수 나무 아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과정을 8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모습이 석가여래팔상도입니다.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신 것이 불종자의 씨앗을 심었다면, 출가는 움을 틔워서 그 싹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깨달음을 이루신 성도일은 꽃을 활짝 피운 날이며, 그 연꽃은 45년 동안 열매를 맺어 승가공동체를 이루시다가 쿠시나가라에서 2월 보름날, 청정법신으로 영원히 우리 곁으로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 성도재일을 맞아, 부처님 출가에서 열반까지 정진기도를 준비하면서 부처님의 팔상도를 통해 각자 자신의 지난날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지난날의 그림자만 추억하고 그리워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난날의 일들을 반성하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것입니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기다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현재의 생각만을 굳게 지켜내야 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최선의 마음을 불자들께 전하면서, 어렵고 힘든 환경에 노출된 코로나19에 조심 하며 대범하게 대처해 나가시길 권합니다.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독심毒心을 품지 말고 선善의 심소心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종교시설이 코로나 발병의 큰 진원지라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어도 불교에서의 발병의 확진자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 불자들의 마음에는 선의 심소가 가득하고 연민심憐愍心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