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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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불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대중포교의 현장에 포교당 불사를 하면서 표어처럼 쓰는 글이 있습니다.
“한 부처님 출연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한 법당이 이룩되면 사바세계 안에 곧 극락정토가 이루어진다.” 『무량수경無量壽經』입니다.
이 가르침을 우리는 꼭 믿고 의지하며 불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찰의 금년 카렌다 5월 달에 여래사 초하루 법회가 사진으로 실려 있습니다. 집에서 달력에 담겨져 있는 모습과 오늘 법회 현장을 돌아다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법회 모습과 차이점을 느끼셨다면 코로나 팬데믹도 끝났으니, 새롭게 인연들을 지을 수 있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전도 선언을 통해 이렇게 설시說示하셨습니다.
“자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법을 설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자. 나도 우 루 벨라 병장 촌 고행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법을 설하리라.”
부처님의 이 전도 선언을,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고 했듯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 이웃과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선연善緣을 지으시기를 권합니다. 불교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전법은 선근善根과, 지혜智慧 있는 불자의 참모습이며, 보리심菩提心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4재일이 있었고 6재일이 있었고 10재일이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 가족법회에만 나와도 4재일은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단에서 몇 년 전,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어찌해서 불교를 믿느냐’는 물음에 응답자 90%가 “안심입명安心立命 즉,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 답答을 했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마음의 평안, 삶의 의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불교를 믿는다고 했으니, 수준 높은 경지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긍심으로 포교와 전법의 길에 우리는 나서야 할 것입니다.


매년 초파일이 되면 떠오르는 찬탄의 글이 있습니다.
“꽃 보라 흩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싯달 태자 탄생하실 때 유아독존 큰소리 온 누리 퍼지네.
사뿐히 자 욱 마다 바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옵 시고
사생四生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날 사월초파일.”
42년 전, 단수여권으로 인도와 네팔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성지순례 중 룸비니동산에서, 그때 느낀 장엄함과 편안함, 넉넉한 풍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벽녘이면 이름 모를 새들이 수백, 수천 마리가 룸비니 동산에서 소리 내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감상을 글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그대로 적으려면 몇 권의 노트도 모자랄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우담바라 활짝 핀,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가 되어, 룸비니 동산은 다정한 눈빛, 룸비니 동산은 부드러운 미소, 룸비니 동산은 인정이 넘치는 마을, 룸비니 동산은 따뜻한 도량, 룸비니 동산은 편안한 어머니 고향, 룸비니 동산은 소박한 봄 향기의 몸짓, 룸비니 동산은 온화한 향 기 로 움……”
룸비니동산에 머물던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극복하지 못하면 폐해가 크게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갈무리 하는 끝맺음으로 내려가던 마지막 글을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로 하였습니다. 끝맺음을 하고나니 머리도 맑아지고 가슴도 뻥 뚫리듯 시원하고 편안한 마음에  잠을 청할 수가 있었습니다.
룸비니 동산 대평원의 평화로운 그 모습은 환희법열의 도량이었습니다.


불기佛紀 2,568년입니다. 이 연호는 부처님께서 80세로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세연으로 떠나신 열반일涅槃日을 기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기를 탄신일誕辰日이 아닌 열반일로 정한 연유는 중생들을 제도하시기 위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우리 곁에 나투셨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싯다르타 태자로 탄생하시여 열반에 이르시기까지 80여 성상을 합하면, 부처님은 2,648년 전 4월 초파일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정반왕은 40세요 어머니 마야부인은 45세였습니다. 그 나이에 첫 아이를 잉태하셨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비고비를 만나셨을까요.
출산을 위해 외갓집으로 가시던 길에 싯다르타 태자는 수백만 평이 넘는 광활한 초원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당시부터 그곳 이름이 룸비니동산은 아니었습니다. 정반왕은 태자가 태어남을 기념하기 위하여 외할머니 이름으로  룸비니동산이라 하였습니다.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면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 하는 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동물의 세계를 보면, 초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야 하는 생존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니,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실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모든 존재는 존귀하도다.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모두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사방 칠보 걸으시며 하셨던 이 선언이 탄생게誕生偈입니다.
사방 칠보는 28걸음입니다. 욕계欲界의 세상, 색계色界의 세상, 무색계無色界의 세상에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이 업력業力에 따라 윤회輪廻하는 세상입니다. 그 삼계三界에는 욕계 6천六天, 색계 18천十八天, 무색계 4천四天의 28천二十八天이 있는데, 사방 칠보는 삼계 육도를 표상적으로 상징한다 할 것입니다.
새벽 예불 때 범종을 스물여덟 번 타종하는 것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28천에 범종 종소리가 울려 퍼져 그곳에서도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으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녁 예불에 치는 범종의 서른세 번은 28천 가운데에 있는 도솔천궁兜率天宮까지 범종 소리가 전해지도록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불자들은 선근善根을 길러내는 자양분으로 믿음을 키워야 한다.”는 가르침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아서 요달了達 하고자 하면, 응당 제법諸法의 성품을 보라, 일체는 오직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화엄경華嚴經』 사구게四句偈를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에 보면, 석가여래부처님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인욕보살忍辱菩薩로 현현하시기도 하셨지만, 수없이 많은 세월 속 억겁천생을 수행자의 길을 걸으시며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시다 삼계三界 사생육도四生六道 칠취七聚의 사바세계娑婆世界 중생들이 힘들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연민심으로 가비라국 룸비니동산에서 이 땅에 출현하신 것입니다. 동서남북 4대문을 다니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목격하시고 29세 때, 2월 8일 출가를 해서 6년 동안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그리고 그 누구도 겪지 못할 고행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훗날 술회하시기를, “머리를 만지면 파 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만지면 덜 익은 오이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놓은 것 같고, 배를 만지면 등이 잡히고, 갈비뼈는 배 틀의 추 같고, 엉덩이는 망가져 사막에 사는 낙타의 발바닥 같고, 갈비뼈를 만지면 베틀의 추를 들여다보는 것 같고, 과거에 누구도 이와 같은 고행은 할 수 없었고, 미래에 누구도 이와 같은 일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45년 동안 전법도생 하시다가 쿠시나가라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가비라국을 향해 누우시며 입멸에 드시는 인간적인 모습도 우리는 살피면서 바라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초파일 무렵이면 불자들에게 권선하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태어난 고향 사찰에 등 공양을 올립시다. 우리 절 오시기 전, 다니시던 절에 등불을 밝히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사찰에 등불공양을 올리자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친지,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선연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심과 정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란 정진력을 통해서 항상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힘은 체험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신이 없으니 의심병만 생기고 인생살이 자체가 불완전해져 시비분별의 흔들림만 커집니다.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 선근과 지혜를 지니고 살아가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안목을 지닌 불자들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고뇌를 받게 될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 밝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늘 가슴속에 새기면서 살아가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이웃, 함께 부처님 품안으로 오셔서 따뜻한 가정을 염원하는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법석이 되시기를 발원發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