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때 아님을 알아야

부처님께서는 보살이 때와 때아닌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열반경에 잘 나간다고 해서 교만심을 내어선 안된다고 지적하고있다.
교만심이란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이 부지런을 떨며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살면서 절제할 수 있는 힘은 어디로부터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가.
법을 잘 설한다고 해서 교만심을 내거나, 기도정진을 잘 한다고 해서 교만심을 내거나, 이치를 잘 알고 문답을 잘한다 해서 교만심을 내거나, 나쁜 벗을 가까이 하면서 교만심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했다 해서 교만심을 내거나, 세간에 선근공덕을 짓노라 하여 교만심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높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공경받는다 하여 교만심을 내거나 하는 때에는 똑똑하여 생긴 것이므로 지혜닦는 수행정진을 하지 말고 내관사유하는 선정을 닦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바로 때와 때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칠보 보석이라 하여 있을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것이 좋은 것인가? 적절한 시기와 환경과 풍토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며칠전 모 방송에서 들은 말이 있다.
진행자가 방청객을 향해 “세상에는 똑부, 똑게, 멍게, 멍부가 있는데, ‘똑부’란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이요, ‘똑게’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사람이며, ‘멍게’는 멍청하면서 게으른 사람이요, ‘멍부’는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 중에 어떤 사람이 제일 바람직한 사람인가?” 라고 물었다.
방청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똑부’를 꼽았다.
그러자 진행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이는 혼자서 다 해버리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이는 ‘멍게’이며, 더더욱 안타까운 이는 ‘멍부’이다.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이는 모든 일을 망치고 다닐게 뻔하기 때문이다. 똑똑하지만 게으른 이는 게으른 그 공간을 다른 이에게 내어 줄 수 있어 주위의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는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첫번째는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한 이요, 두 번째는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이 편안치 못한 이며, 세 번째는 몸은 편안치 못하지만 마음은 편안한 이요, 네 번째는 몸도 마음도 편안치 못한 이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몸도 마음도 편안한 이가 되고싶어 한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이가 바로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오늘 불교계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누군가 질문을 하였다. 법화사상에 비추어 볼 때, “첫째 참회할 것, 둘 째 수심을 닦을 것, 셋 째 공덕을 지을 것. 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꼭 순서대로 하여야 합니까?” 하였다.
참회하지 못하였으면 공덕을 지을 수 없는 것인가? 또 본인이 도를 깨치지 못하였으면 법을 설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자 우리는 불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신앙 보다는 신행으로 다듬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부처님을 닮아가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스님들을 닮아 가야 한다.
우리가 수행정진 하는 목적은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며, 불자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마음을 성숙시킬 수 있는 방법이 지혜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은 사바세계 속에서 없어질 수 없다.
누가 부처님께 묻기를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지옥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습니까”
“믿는 자 에게는 있고, 믿지 않는 자 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저에게는 지옥이 없습니다.”
지옥이 없다면 없다. 그러나 지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은 존재한다. 고통과 괴로움도 수행정진을 하면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부처님이시여 몇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러한 무상심심미묘법, 번뇌가 다시 일어나지 않고 끊어진 그 번뇌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겠나이까?”
“불자들아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위 없는 열반과 번뇌 있는 것이 없음을 분명히 보노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믿는 마음이 구족함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 하는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네는 항상 하지마는 시방의 부처님이 방편으로서 모든 중생과 믿지 않는 이들이 모두 부처성품이 있다고 보이신 줄을 믿고 여래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과 고행 하심과 데바달타가 참으로 화합승을 파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낸 것과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들어서 바른 법이 없어진다는 일을 믿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믿는 마음이 보살이 구족하다 하느니라.”
우리가 언어나 문자를 가지고 부처님의 위 없는 가르침을 여러분들 에게 요달하여 사무치도록 전해드리기가 쉽지 않음을 시간이 자꾸 흐르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만분의 일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지하고 그 가르침을 나의 것과 접목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드러낼 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과다한 이론과 논쟁이 부질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옛 선지식들이 길게 말하지 않고 짧고 핵심적인 말로 우리를 일깨우신 그 모습이 더 뼈저리게 느껴짐이 나이 탓만은 아닌 듯 싶다.
진리와 삶이 둘이 아니므로 그 어떤 논쟁 없이 생로병사는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가슴 가슴으로 만남을 가지는 노력들이 필요하리라 본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분분한 이야기가 필요치 않다. 반면 영리하지 못하고 둔한 사람에게는 간단명료히 설명하여서는 전달되지 않는다. 가족 관계나 주위 사람들을 살피며 관심과 배려로 친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아 갈 때, 모든 사람이 똑 같이 적용되지 않는 이치가 있음을 간파하는, 그러한 안목을 가지는 데에 정진 하는 것이 우리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며 어울림을 가지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