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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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이 출현하게 된 ‘가까운 인연’-「세계성취품 제4」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을 읽어가는 데에 ‘과목 나누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누차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호부터 금년 6월까지는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 과목에 해당하는 총 6품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총 6품은 다시 셋으로 나누어진다. (1)첫째는 『화엄경』이 출현하게 된 핵심 인연을 설하는 부분인 「세주묘엄품 제1」이고, (2)둘째는 보조적 인연을 설하는 부분인 「여래현상품 제2」와 「보현삼매품 제3」이다. 그리고 (3)셋째는 중생들에게 믿음을 내도록 설법하시는 본론 부분이니, 「세계성취품 제4」, 「화장세계품 제5」, 「비로자나품 제6」이 그것이다.


(3)의 총 3품品도 ‘원인’-‘결과’ 관계로 나누어서 읽어야 이해하기 쉽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기로 하자.
「비로자나품 제6」에서 설한 내용이 ‘원인’이 되고, 「세계성취품 제4」와 「화장세계품 제5」는 결과가 된다. 즉, 비로자나부처님의 수행과 원력이 ‘원인’ 노릇을 하여, 그 ‘결과’로서 시방의 모든 세계도 성취 즉 만들어지고, 특정해서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장엄하게 꾸미신 불국토인 ‘화장세계’도 건설되었다는 발상이다.


온 법계에는 무수한 국토가 펼쳐져 있는데, 『화엄경』에서는 그것을 ‘찰해刹海’ 또는 ‘세계해世界海’라고 한다. 하나의 찰(刹, kșetra)’이나 ‘세계 okadhātu’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와 달이 비추는 4대륙과 그 범위 위의 천상과 아래의 지옥을 말한다. 그런 ‘찰’ 즉 ‘세계’가 많다는 뜻으로 바다 해(海 samudra) 자를 붙여 ‘세계해’ 또는 ‘찰해’라고 부른다.


2.
「세계성취품 제4」에서는 부처님들과 중생들이 의지하여 사는 세상 즉 의보依報를 보현보살의 입을 통해서 설하고 있다. 이 품은 크게 두 대목으로 나누어지니, 첫째는 본분本分으로 ‘강요를 총체적으로 표방하는 대목’이고, 둘째는 설분說分으로 ‘근본이 되는 뜻을 널리 설명하는 대목’이다.


위에서 필자는 ‘본분本分’과 ‘설분說分’이라는 훈고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청량 국사께서 사용한 것으로, 전통 강원에서는 지금도 이 말을 쓰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본분本分’은 앞으로 설명할 내용의 근본 항목만 나열하는 대목이다. 한편, ‘설분說分’은 그렇게 나열한 본문의 항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목이다.


「세계성취품 제4」의 ‘본분本分’에서는 보현보살이 등장하여 수행으로 인해 완성된 의보(依報 중생이 거처하는 환경), 즉 ①세계해, ②중생해, ③불해, ④법계해, ⑤중생업해, ⑥중생근욕해, ⑦제불법륜해, ⑧삼세해, ⑨여래원력해, ⑩여래신통변화해 등 소위 ‘10해海’를 거론하여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의 ‘해海’는 바다처럼 드넓다는 비유이다.


이렇게 ‘본분’이 끝나고는, 이어서 보현보살께서 위의 ‘10해’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설분’이 시작된다. 이 ‘설분’을 청량 국사는 크게 두 대목으로 나눈다. 첫째 대목에서는 ‘표거장문標擧章門’이라 하여, 위에서 나열한 ‘10해’ 중에서 ‘세계해’만을 거론하여 ‘열 문장[十章]’으로 묶어서 이름만 거론한다. 둘째는 앞에서 거론한 문장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으로, ‘의장별석依章別釋’이라고 과목 이름을 붙였다.


3.
‘세계해’를 ‘열 문장[十章]’으로 묶어서 설하고 있으니, ①일어난 인연, ②의지하여 머물음, ③형상, ④재질[體性], ⑤꾸밈(장엄), ⑥청정하게 하는 방법, ⑦부처님께서 출현하시는 양상, ⑧시간, ⑨시간이 차츰 변하는 차별, ⑩무차별성이 그것이다. 이렇게 ‘세계해’의 ‘열 문장[十章]’을 나열하고 나서는, 각 ‘문장[章]’을 순서에 따라 다시 ‘10문(門 가지, 또는 측면, 또는 방법)’으로 세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때의 주제는 ‘드넓은 세계’ 즉 ‘세계해世界海’임을 독자님들은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즉 처음에는 ①‘드넓은 세계’가 일어나게 된 인연을 ‘10문’으로 보현보살께서 설하고 있다. 계속해서 마지막으로는 ⑩드넓은 세계’의 무차별성을 ‘10문’으로 설하신다. 이하에서 요점만 들어보자.


4.
① 드넓은 세계가 생기게 된 인연 열 가지 여래의 위신력 때문에, 의례 그러하기 때문에, 온갖 중생들의 행과 업 때문에, 무수한 보살들이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중생들과 보살들이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국토를 가꾸려는 보살들의 원력 때문에, 보살들의 물러섬이 없는 수행과 원력 때문에, 보살들의 훌륭한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에, 부처님들께서 심으신 선근 공덕과 자재한 힘 때문에, 보현보살의 자유자재한 원력 때문에.


② 드넓은 세계가 의지하여 머무는 곳 열 곳 온갖 장엄에 의지하기도 하고, 허공에 의지하기도 하고, 보배 광명에 의지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광명에 의지하기도 하며, 일체 보배의 빛 광명에 의지하기도 하며, 부처님의 음성에 의지하기도 하며, 환술 같은 업으로 생긴 대력大力 아수라의 모양인 금강수金剛手를 의지하기도 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몸에 의지하기도 하며, 온갖 보살의 몸에 의지하기도 하며, 보현보살의 원력 때문에 생긴 온갖 장엄에 의지하기도 한다.


③ 드넓은 세계의 형상 열 가지 둥근 모양, 모난 모양,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은 다양한 모양, 물의 소용돌이 같은 모양, 산 같은 불꽃 모양, 나무 같은 모양, 꽃 같은 모양, 궁전 같은 모양, 중생들의 형상과 같은 모양, 부처님 모습 같은 모양이 있다.


④ 드넓은 세계의 재질[體性] 열 가지 본문에는 20종을 들고 있는데, 크게 나누면 4대(大 지·수·화·풍)와 4진(塵 색·향·미·촉), 유심唯心, 법성法性 그리고 일체법 등이 세계의 재질이다.


⑤ 세계를 장엄하게 하는 열 가지 묘한 구름을 내어 장엄하기도 하고, 보살의 공덕을 설해 장엄하기도 하고, 중생의 업보를 설해 장엄하기도 하고, 보살의 서원을 설해 장엄하기도 하고, 3세의 부처님 영상을 드러내어 장엄하기도 하고, 일념에 무량겁의 신통경계를 보여 장엄하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의 몸을 출현시켜 장엄하기도 하고, 구름 같은 보배 향기를 내어 장엄하기도 하고, 모든 도량의 여러 진귀한 물건에서 나오는 광명으로 장엄하기도 하고, 보현보살의 행원을 보여 장엄하기도 한다.


5.
⑥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방법 열 가지 보살들이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선근을 함께 닦기 때문에, 구름처럼 드넓은 공덕을 키워가기 때문에, 훌륭한 지혜를 널리 닦기 때문에, 보살들의 경계를 보고 따라하려고 마음먹기 때문에, 바라밀 수행을 닦아 완성하려하기 때문에, 보살의
10지地 수행을 관찰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하염없는 서원을 내기 때문에, 번뇌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수행을 실천하기 때문에, 세상을 하염없이 가꾸기 때문에, 방편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⑦ 부처님께서 세계에 출현하시는 양상 열 가지 작은 몸, 큰 몸, 단명, 장수, 한 국토만 장엄, 무량한 국토를 장엄, 일승의 가르침만 설하심, 무량한 승을 모두 설하심, 일부 중생만을 제도, 무량 중생을 제도 등으로 다양하게 출현하신다.


⑧ 시간이 세계에 안주安住하는 열 양상 가지 아승기阿僧祇 겁 동안 안주, 무량無量 겁 동안 안주, 무변無邊 겁 동안 안주, 무등無等 겁 동안 안주, 불가수不可數 겁 동안 안주, 불가칭不可稱 겁 동안 안주, 불가사不可思 겁 동안 안주, 불가량不可量 겁 동안, 불가설不可說 겁 동안 안주, 불가설 불가설不可說不可說 겁 동안 안주한다.


⑨ 시간이 전변하는 열 가지 세계는 법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에 세계가 ‘성립되었다 파괴되는 겁’으로 전변하고, 오염된 중생이 머물기 때문에 세계가 ‘오염에 물드는 겁’을 이루어 전변하고, 광대한 복을 닦는 중생이 머물기 때문에 세계가 ‘더럽고 깨끗한 겁’을 이루어 전변하고,
신해信解의 보살이 그 국토에 머물기 때문에 ‘깨끗하고 더러운 겁’으로 전변하고, 수많은 중생의 보리심 때문에 국토가 ‘순일하고 청정한 겁’으로 전변하고, 모든 보살들이 제각기 여러 세계에 노닐기 때문에 ‘끝없이 장엄한 겁’으로 전변하고, 일체의 보살들이 운집하기 때문에 ‘한량없는 큰 장엄 겁’으로 전변하고, 여러 불세존들이 열반에 드시기 때문에 세계가 ‘장엄이 소멸하는 겁’으로 전변하고, 여러 부처님들이 세계에 출현하시기 때문에 ‘엄청나게 넓고 장엄한 겁’으로 전변하고, 여래의 신통변화 때문에 세계가 ‘두루 맑고 깨끗한 겁’으로 전변한다.


⑩ 낱낱 수많은 세계 각각마다에 차별 없는 열 가지 ‘티끌처럼 수많은 세계 있음’에 차별이 없고, ‘부처님 출현하여 지니신 위엄과 신통력’에 차별이 없고, ‘온갖 도량이 시방 법계에 두루함’에 차별이 없고, ‘온갖 여래의 도량에 모인 대중’에 차별이 없고, ‘온갖 부처님 광명이 법계에 두루함’에 차별이 없고, ‘부처님 명호’에 차별이 없고, ‘부처님 음성 머뭄’에 차별이 없고, ‘법륜의 방편’에 차별이 없고, ‘수많은 일체 세계가 한 티끌에 들어감’에 차별이 없고, ‘세존의 광대한 경계 나타남’에 차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