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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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지난해 10월 보름 삼동결제三冬結制에 들었다가 오늘 해제解制한 날입니다. 결제는 맺을 결結, 억제할 제制입니다.
‘모으다, 묶다, 매다, 꾸미다, 짓다, 가지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제에는 대중들이 함께 정진하며, 자기 자신을 가꾸는 시간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해제는 일을 마치는 회향廻向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불교에서 결제와 해제는 입재와 회향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입재와 회향을 반복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종교는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는 나고 늙고 병들어 떠나야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 몸은 항상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서로 일깨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그러다보니 한결같은 성품이 결여되고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주재성이 결여되는 모습에서 힘들어하며 살고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부중생이라 하고 근심과 걱정에 노출되어 늘 고통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보적경大寶積經』에는 “마음은 바람과 같다. 마음은 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 그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머무르는 일 없이 일어났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대보적경』의 가르침처럼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마음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수행修行을 하고 정진精進을
하는 것입니다.
『숫타니파타』에도 “일어나 앉아라. 잠이 무슨 이익이 있는가. 화살에 맞아 고통 받고 있는 이에게 잠자는 것이 웬 말인가. 일어나 앉아라.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일념으로 배우고 실천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예불에도 참여하고 기도하며 촛불도 켜고 향도 사르면서 가까이 더 가까이 불보살님 전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600여 년 전, 이 땅에 출현하신 부처님은 우리의 견해나 승가의 권리를 매우 존중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소견을 많이 청취하셨습니다.
아무리 심오한 가르침이라도 그 사람에게 적절하지 못하면 그것은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할지언정,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중생들이 팔만사천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면 거기에 적절한 약을 처방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팔만장교八萬藏敎 가르침이며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약방문藥方文과 같습니다. 약의 가치는 병이든 이를 치료하는 데 있는 것이지 그 약의 값어치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귀한 약이라도 환자에게 적절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요의경에 의지할지언정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하신 가르침이 바로 이것을 경계하신 가르침이십니다.
진정으로 종교에 귀의하려면 그 가르침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중생심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는 명상과 기도 정진에 있습니다. 명상이라고 해서 참선하는 것만이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고 반야지혜般若智慧가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에도 염불삼매念佛三昧, 주력삼매呪力三昧 등 다양한 선정삼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과 기도 정진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따라 오게 하고 시간과 어울리게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장은 그런 이익을 얻는 데 성공할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능엄경』에 ‘견견지시見見之時에 견비시견見非是見이라’, 볼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응용해보면 쓸 것을 쓰는 것은 쓰는 것이 아니요, 줄 것을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며, 갈 곳을 가는 것은 가는 것이 아니니 갈 때는 가고 올 때는 올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살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 어떤 이도 괴롭히는 일이 없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버릴지언정 결코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다른 이를 원망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장난삼아 던진 돌팔매질에도 작은 생명, 그 생명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취하지도, 물들지도 말아야 합니다.


『열반경涅槃經』에서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보살이 몇 가지 법을 구족具足하면 세상으로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고, 세상에 핀 연꽃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더럽혀지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으로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고 세상의 법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신심信心이요, 둘째는 계율戒律이며, 셋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친히 가까이 함이요, 넷째는 안으로 잘 생각함이며, 다섯째는 정진精進을 구족함이요, 여섯째는 정념正念을 구족함이며, 일곱째는 지혜를 구족함이요, 여덟째는 바른 말을 구족함이며, 아홉째는 바른 법을 좋아함이요, 열째는 중생을 애민섭수 함이니 불쌍히 여김입니다.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고 세상의 법에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열 가지 법을 갖추어가며 기도 정진 하고 참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경계를 분별하지 않고 모든 법을 아는 지혜에 편안히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도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안목眼目을 지니고 있으면 세상에 머무르며 물들지 않고 해하려 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는 이치를 말하기 어렵고 인색한 사람에게는 보시를 말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기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버리기보다 어렵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기는 놀란 들 사슴 붙들고 있기보다 어려우며, 옹색한 마음은 마른 완두콩 송곳으로 뚫기보다도 더 어렵다고 하신 가르침도 이와 같습니다.
지혜로운 이가 사랑을 듬뿍 담고 와서 자비심으로 문을 두들겨도 스스로 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문 두들긴 사람은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차려놔도 내가 먹지 않으면 그 밥상은 차린 사람의 몫이 되는 것처럼, 상대가 욕을 하고 흉을 봐도 내가 그것을 안 받으면 상대방이 치워야 할 일로 남을 것입니다. 마치 사나운 개의 코를 다치게 하면 더욱 물려고 덤비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말하면 오히려 화를 내고 상대방을 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곪지 않은 종기를 칼로 째면 아픔만 더한 것같이 인색한 사람에게 보시와 공양, 시주를 말하면 그는 도리어 화를 내고 그 말을 한 사람을 해치려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안목으로 잘 살피고 헤아려서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인 신심으로 수행 정진하며 코로나19 변이 변종에도 잘 극복하여 늘 건강하시고 복된 날들 되시길, 불보살님 전에 기도하며 축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