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우리는 종종‘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청춘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서 말하는 청춘의 핵심 콘텐츠는 아마도 사랑과 성(sex)일 것이다. 그러니 위 이야기는 결국‘우리가 이토록 고 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랑과 성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특히 결혼 생 활에 있어 사랑과 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사랑과 성’은 오늘날 크게 남용 되고 오용되고 있다. ‘사랑’이라는 말은 갈수록 남발되고‘성’은 더욱 개방되고 자유로워져 ‘혼외정사’라는 단어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리스본 해안에서 만난 젊은 백인 여성으로 부터 들었다는 우리나라 한 소설가의 다음 전언은 이러한 시대조류를 생생하게 드러내 준다.
다른 남자와 섹스를 즐겼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줄어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편은 현재 여기에 없으니까. 물론 사람에 따라선 남편 이외의 남자와는 관계를 갖기 싫어하 는 경우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아내라야 남편을 더 많이 사랑하고 그렇지 않으니까 남편을 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문제는 기분 아니겠어요? ……
유럽에서는 가정주부의 성 개방 차원을 넘어 주부 매춘까지 행해지고 있다. 이들을 프랑스 에서는‘한낮의 미인들’로, 영국에서는‘당일로 돌아오는 소풍객’또는‘통근하는 매춘부’로 부른다. 더욱이 이들 주부들은 대부분 남편의 허락을 받아 매음을 한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런 상황이기에 스와핑(부부교환)과 그룹섹스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종 성(性) 생활 종 스와핑 사건이 보도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무분별하고 도도한 성 개방의 물결은 근본적으로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과 성적 에너 지 또는 리비도(Livido)에 근거하고 있겠지만, 오늘날 급격하게 변화된 사회 환경과 생활 방 식의 영향도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성 개방 풍조를 부추기는 몇 가지 사회 환경적 요인에 대해 알아보면, 첫째, 전통 사회에서 는 개인의 행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이 있었지만, 현대 사회는 그러한 규범과 가치가 붕괴되어 이른바 아노미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둘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변했다는 점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남녀의 접촉 기회가 많아지고 특히 여 성들이 애정 문제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했다. 셋째,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엄 청나게 커진 가운데, 선정적이고 감각적인 상업주의 광고가 사랑의 감각적, 성적 특면만을 강 조하고 부각시킴으로써 진정한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왜곡하고 퇴색시키고 있다. 넷째, 성 의
학이 급속하게 발달하고 양질의 피임약과 피임기구가 개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에서는 오늘날의 문란하고 혼란한 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출가 수행자들은 결혼을 해서도 안 되고 성 행위를 해도 안 된다. 모든 음행을 금지하는 이른바‘불음계’(不戒)에 따르면, 출가자는 이성간의 성행위는 물론 동물과의 성행위라 든가 오럴 섹스, 그리고 기구를 사용하는 등의 일체의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율전 (律典)에서는‘자위 행위를 하지 말라’‘여인의 몸을 만지지 말라’‘여자들과 음담패설을 하 지 말라’는 등의 계율 조항도 발견된다. 출가자들에게 결혼을 금하는 것은 그것이 수행과 전 법의 출가 공동체의 생활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요, 성행위를 금하는 것은 궁극적 깨달음을 향 한 수도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재가자들은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불사음계’(不邪戒)를 지켜야 한다. 아내와 남편 이외의 이성과의 성관계는 그릇된 음행, 즉 사음(邪) 이다. 따라서 결혼한 부부 사이의 성행위만이 올바른 것이다. 그리고「범망경」보살계의 세 번째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다.
불자들아, 너희는 스스로 음행하거나 남을 시켜 음행하거나 모든 여인(아내 이외의)과 음행 하지 말지니, 음행하는 인이나 연이나 방법이나 업을 통해 음행하지 말라. 짐승의 암컷이나 천녀나 여아 등과 짐짓 음행하지 말며 제 길이 아닌 곳에 음행하지 말라. 보살은 항상 불성(佛性)에 효순하는 마음을 내어 온갖 중생을 구원하고 제도하여 깨끗한 법을 일러 주어야 함에도 온갖 중생에게 음행할 마음을 내어 짐승이나 어머니나 딸이나 자매나 육친을 가리지 않고 음 행을 하여 자비로운 마음이 없으면 보살의 큰 죄가 되느니라.
나아가, 많은 경전 속에는 올바른 성윤리에 관한 가르침이 여기 저기 설해지고 있다. 대표적 인 예로서‘숫따니빠따’(經集)에는,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지 않고 유녀(遊女, 기생이나 창녀) 와 사귀거나 타인의 아내와 사귀는 것, 이것은 파멸에의 문이다”“성년이 지난 남자가 과일처 럼 부푼 젖가슴을 가진 젊은 여자를 유인해서 그녀에 대한 질투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일, 이것은 파멸에의 문이다”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또한‘분별선악소기경’(分別善惡所起經)에 따르면, 사람이 세간에서 남의 부인을 범하지 않 고 간사하고 편벽한 짓을 생각하지 않으면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즉 첫째는 재물 이 없어지거나 낭비되지 않고, 둘째는 범인을 처벌하는 관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셋째는 사람 을 두려워하지 않고, 넷째는 하늘에 태어나면 하늘의 옥녀로 부인을 삼고, 다섯째는 하늘에서 다시 세간에 태어나면 단정한 부인들이 많은 나라에 나게 된다. 사음을 범했을 때의 해악은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음을 행하면 우리가 경제적으로, 법적 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요컨대 불교인은 누구나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해탈과 열반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 다. 그리하여 출가자는 출가자대로 재가자는 재가자대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엄 격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합법적인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성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동물적인 본능과 욕정은 순화되고 정화되어야 한다. 이웃 종교에서는 부부 사이라 하 더라도 욕정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은 죄악이고,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금한다고 들었다. 불교의 기본교리인 사성제(四聖諦)에서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바로 탐애(탐욕)라고 가르치 고 있지 않은가. 성에 대한 지나친 탐닉과 집착은 불자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특별 한 성적 장애가 없는데도 자극을 더하기 위해, 횟수와 시간을 늘리기 위해 성기에 인위적인 시술을 한다든가 비아그라 같은 약물에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겠다. 또한 부부 간에도 자제와 절제가 필요하다.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르거나 만취했을 때, 오줌이 마려
울 때, 피로할 때, 감정이 고조되어 있을 때는 관계를 삼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특히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내가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거나 매 우 불안할 때, 출산 전과 출산 후의 일정 기간, 월경 기간, 병을 앓고 있을 때 등은 성관계를 자제해야 한다.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성관계나 습관적이고도 상투적인 성관계도 극복되어 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반복되면 성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성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롤로 메이(Rollo May)는“오늘날 가장 일반화된 문제는 성적인 행위에 대한 사회적 금기 또 는 성 자체에 대한 죄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섹스가 한낱 기계적 이고 공허한 경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성적 매너리즘의 심연에는 배우자를 자신의 확고부동한‘소유물’〔我所〕로 간주해 버리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잡은 고기에게 미끼 던지는 사람 봤느 냐?”라는 따위의 말은 농담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집착과 고정관념을 참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잠자리만 같이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타성과 안일에 함몰된 섹스도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일정 정도의 지식과 적절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때와 장소, 체위에 대한 고정관념도 가끔 깨뜨릴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충고에도 귀 기울여 봄직 하다. ‘아메리칸 커플’이라는 성 연구서에 의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식고 정서적인 관계에 문 제가 발생하면 성욕도 줄어들고 성관계를 가질 때 느끼는 충족감도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부부 사이의 원만한 성관계를 위해서는 성적 취향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지속적인 애 정과 스킨싶이 필요함을 이 책은 강조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성은 동물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쾌락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본래적인 성은 남편과 아내를 정신적으로 깊이 신뢰하고 친 밀감을 느끼며 사랑하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도 이러 한 성의 기능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불교의 밀교에서는 성의 쾌락을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보다 높은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연료로서의 신성한 의미까지도 부여한다.
또한 성을 통하여 인간의 육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에너지나 정서를 일깨워서 인간의 의미에 관한 진리를 알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친다.
진실하고 순수한 인간적 또는 정신적 사랑이 없는 섹스는 인간의 본성에 부응하지 않아 공 허할 뿐이며, 결국은 인간 소외를 심화시켜 인생의 진정한 보람과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늘의 성교육은 성 지식이라든가 기술을 가르치는 수준으로 타락한 것으로 생각된다. 충분히 발달한 대뇌를 가진 인간에게는 섹스보다도 인간적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유념 해야 한다.
불교는 무엇보다도 자유라는 가치를 중요시한다.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자유의 개 념도 달라지겠지만, 불교적 자유는 적어도‘본능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으며‘신체의 자유’ 에 갇히지도 않는다. 그것은 보다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자유다. 이를테면 베르쟈예프의 주장 처럼‘인간이 우주의 일부분이 아니라, 우주가 인격의 일부분이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인 것 이다. 말하자면 불교적 자유는 본능의 노예, 성의 노예를 비롯한 모든 노예성으로부터의 해탈 이며 그것은 동시에 참된 인격의 실현이기도 한 것이다. 불교인은 이러한 인격에 바탕한, 자 비와 사랑과 존경을 통해 본능의 성을 보다 인간적인 성으로 승화시켜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