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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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이니 자연은 거룩하다

정성운
텃밭농부


내 작은 텃밭은 어느 사이엔가 가을로 접어들었다. 오이 넝쿨과 토마토 줄기를 걷어냈다. 무성했던 풀들도 잘라내서 이랑을 덮어주었다. 거기에 김장에 쓸 배추와 무, 쪽파를 심었다. 꽃대를 올린 부추도 잘라냈다. 부추는 다시 자랄 것이다. 가을 농사에 들어간 것이다. 밭은 가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난여름은 너무 더웠다. 하루하루가 폭염의 날이었고, 열대야였다. 밭에 나가는 날도 줄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리쬐는 햇볕과 찌는 더위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고추는 사나흘 걸러 내린 비와 관리 부실로 탄저병이 돌았다. 탄저병의 증상은 과실 중간쯤이 원형을 그리며 괴사한다. 눈에 보일 때는 탄저균 포자가 꽤 퍼진 상태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란 말이 괜히 생기지 않았다. 가까이 있어야 때에 맞춰 잡초를 뽑아주고 병충해 방제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전옥답이다.


농사는 기르는 것만이 아니다


고추 병충해 방제를 위해 님오일(neem oil)을 물에 섞어 서너 번 뿌려주었으나,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농약 말고는 대처법이 없다. 다행히 고춧가루는 3kg가량 얻었다. 이 분량이면 우리 집의 김장은 물론이고 내년 고추 수확까지 먹을 수 있으니, 크게 만족한다. 올해 나의 고추 농사는 풍작이다.
농사는 기르는 것이다. 길러서 먹으니 내 몸이 유지된다. 누군들 먹지 않으면 몸을 유지할 수 없다. 밭에서 나는 것이 건 바다와 강, 산에서 나는 것이 건 먹어야 산다. 그래서 농사를 천하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얼마 전부터는 생명산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농부는 생명을 뒷받침하는 이들이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이들이다.
농사는 기르는 것만이 아니다. 기르는 과정에는 제거와 배제가 포함되어 있다. 작물 외의 풀들을 일컫는 잡초를 제거해야 하며, 병균을 옮기는 벌레도 몰아내거나 죽여야 한다. 과실을 거두는 것도 때로는 작물의 생태를 무시하고 인간의 입맛에 맞춘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먹거리는 죽임과 변형의 바탕 위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이런 행위가 싫다고 하여 피해갈 수 없다. 인간은 땅과 동식물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 또는 희생이 있기에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을 먹여 살리는 자연은 거룩하다.
불교의 가르침은 자연에 대해 자비로워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자애경』은 불자들은 물론 불교 밖에서도 널리 인용되는 경전이다. 열 개 구절로 구성된 짧은 경전인데, 그 가운데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구절이 특히 생명에 대한 보살핌을 나타내고 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다.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틱낫한 스님의 5계


불교의 생명 보살핌은 오계의 첫 번째에 ‘불살생’을 둘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생명, 자연의 보살핌을 담아 5계를 설했다. 틱낫한 스님은 특히 첫 번째 계에 동물, 식물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은 물론 무기물인 광물까지 포함했다. 사람과 동물, 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는 광물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물은 생명의 신진대사에 필요한 원소들이 들어있다. 광물이 아니고서는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생명 유지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삶을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자비를 키우고 사람과 동물, 식물, 광물의 삶을 보호하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살인을 용납하지도 않겠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도, 삶의 태도에서도 어떤 살인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5계의 두 번째는 도둑질하지 않는다(不偸盜)인데,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가르친다.


“나는 착취와 불평등, 강탈과 억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자애를 기르고 사람들과 동물, 식물과 동물의 안녕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길을 찾겠습니다. 나는 궁핍에 빠진 이들과 나의 시간, 에너지, 물질 자원을 나누고 온유함을 실천하겠습니다. 나는 타인의 어떤 물건도 빼앗지 않고 소유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간의 고통과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의 고통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자연의 이용을 착취와 불평등이라고 꾸짖으면서 그들에 대해 온유함을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한문과 팔리어 불전에 전하는 5계를 오늘의 상황에 대응해 보완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틱낫한 스님과 동료들이 60여 년 전에 창립한 상즉종相卽宗은 이와 같은 내용의 5계를 수지함으로써 입종이 이루어지며, 핵심 성원에게는 5계를 포함한 ‘14가지 깨어있는 마음 수행’을 수지토록 한다.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법회에서는 자자와 포살을 행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불광출판사에서 펴낸 『틱낫한 인터빙』이라는 책에 담겨 있다. 얼마 전 이 책을 읽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이 또 있다.
상즉종의 정관인데, 상즉종의 목적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보살의 이상을 특별히 강조하여 불교를 연구, 실험하고, 현대사회에 적용함으로써 불교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정관에서는 또 14가지 깨어있는 마음 수행을 매년 재검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14가지 깨어있는 마음 수행과 이 정관은 핵심공동체의 총회 때마다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 정관은 현대사회에 부합하기 위해 핵심공동체의 총회 때마다 개정되어야 한다.”


왜 이렇게 했을까. 첫 번째는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종교는 자칫 그 거룩한 가르침 때문에 교조주의로 흐르기 쉽다. 다른 전통의 가르침을 배척하기도 한다. 자기 견해에 갇히면 진리를 볼 수 없는데, 이런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둘째는, 변화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가르침의 내용은 변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늘 변한다. 제행무상이다. 언어도 변한다. 지금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지금의 정서와 감각과 의미를 담은 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게 한둘이 아니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현실화하려는 의지를 새겨야 한다. 그리고 의지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로써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롭게 해석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태도와 방편일 것이다.


추분이 지났으니 밤이 낮보다 길어졌다. 하늘은 새파랗고 흰 구름은 한가롭다. 10월의 절기로는 상강霜降이 있다. 서리가 내리는 시기에 접어든다. 저녁이 되면 서늘함이 느껴져 긴 소매 옷을 입어야 한다. 밭의 벌레들도 월동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풀들도 말라 흙으로 돌아간다. 단풍이 온 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일 것이다. 지난여름 뜨거웠으니 이 가을을 즐기고 싶다. 이어 11월에 접어들면 입동立冬이다.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겨울이 있다. 계절의 흐름은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아직은 길을 잃지 않은 것 같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