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 수행자가 지켜야할 가치 덕목을 크게 네 단계로 10항목으로 나누어, <10 발취심>, <10 장양심>, <10 금강심>, <10 지>를 차례로 나열하고 있다. 필자는 <10 금강심> 중에서 (1)에서 (6)까지는 이미 설명을 마쳤다. 이번 3월호에서는 (7)대승심, (8)무상심, (9)혜심, (10)불괴심을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이미 범망경이라는 비유하자면 깊은 산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디쯤 들어왔는지, 또 동서남북 소위 방향이 어디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해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독자님들이 범망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범망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석가모니불’이 ‘노사나불’께서 설하신 「심지법문품心地法門品」을 소재로 여러 보살과 대중들에게 소위 ‘강의’를 하셨다. 그러시던 중 석가모니불은 몸에서 밝은 방광放光을 하신다. 이에 모인 대중들이 방광하시는 이유를 궁금해하자, 석가모니불은 대중들을 인솔하여 노사나불께로 간다. 석가모니불은 노사나불을 뵙자, 절을 올리고 여쭌다. “중생들이 어떤 수행을 해야 10지의 도를 완성할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노사나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나는 이미 백 아승지 겁 동안 심지心地 수행하는 것으로 원인으로 삼았다. 마음[心地]을 수행한 인연으로 비로소 범부를 버리고서 등정각을 이룬 결과로 노사나불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내가 머무는 세계는 연화대장세계해이다.
그 연화좌대는 끝없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는 1천 잎의 연꽃이 둘러있고, 그 한 잎이 한 세계이니 1천 세계가 된다. 내가 1천 석가모니불(이때의 석가는 대석가)을 화현시켜 1천의 세계에 머물게 한다. 한 잎의 세계마다 다시 100억 개의 수미산과, 100억 개의 해와 달과, 100억 개의 4천하와, 100억 개의 염부주가 있다. 100억 분의 보살인 석가모니불(이때의 석가는 소석가)이 100억 그루의 보리수 아래 않아서 그대가 물은 보살의 마음[心地] 법문을 각각 설한다. 나머지 999명의 석가모니불이 각각 100억의 석가모니불을 화현시키는 것도 그와 같다. 1천 100억의 연꽃 위에 있는 부처는 모두 나의 화신化身이며, <천×백억>의 석가모니불은 곧 1천 석가모니불의 화신이며, 나는 그들의 본래의 근원[本源]인데 이름을 노사나불이라고 한다.”
이어서 범망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그때, 연화대장의 자리 위에 계시는 노사나불께서는, 1천의 석가모니불과 1천의 백억 석가모니불이 질문한 「심지법품」에 대하여 자세하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설해진 내용이 <10 발취심>, <10 장양심>, <10 금강심>, <10 지>이다.
2.
다시 본문에 인용한 내용을 간추려보기로 한다. ①석가모니불께서 「심지법문품心地法門品」을 강의. ②강의 도중에 석가모니불께서 방광을 하심. ③대중들이 방광하시는 연유를 궁금해함. ④석가모니불께서 대중들의 궁금함을 풀어주시기 위해 노사나불을 방문. ⑤노사나불께서는 자신이 <천×백억> 분의 석가모니불을 화신化身으로 화현化現시켰다고 말씀하심. ⑥노사나불께서는 <천×백억> 화신의 석가모니불에게 <10 발취심>, <10 장양심>, <10 금강심>, <10 지>라는 ‘심지心地 수행’을 해서 그 결과 노사나불이라는 부처가 되었다고 설하심. ⑦그러자 대중 속에 있던 화광왕대지명 보살이 <10 발취심>, <10 장양심>, <10 금강심>, <10 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해주실 것을 노사나불께 청법.
이렇게 하여 범망경의 ‘마음[心地] 법문’이 펼쳐진다. 참으로 묘한 내용이다. 한 분의 노사나 부처님이 1,000×100억 명의 석가모니불을 화현化現시켰다는 것이다. <천×백억> 화신의 석가모니불 중에서, 사바세계 중생들을 교화하러 오신 주인공이 바로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불이시다. 대승불교, 그중에서도 화엄의 전통에 있는 불교권에서는 이렇게 부처님을 생각한다.
범망경에서는 ‘노사나불’이라고 종합적으로 말했지만, 경전에 따라서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나누어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비로자나불’을 법신法身이라 하고, ‘노사나불’을 보신報身이라 한다. 여기에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을 합하면, 법·보·화 소위 3신身 사상이 되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삼불三佛이 원융圓融하고 십신十身이 무애無礙한” 그런 불신관佛身觀을 전통으로 하는 불교이다. 한편, 일반 신들도 주의 깊게 들으신 분들은 스님들의 염불 가사에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이라는 소리를 들어보셨을 수도 있다. 이 역시 위에 인용한 범망경의 사상을 염불 가사에 활용한 것이다.
3.
이 글의 초반에 필자는 “범망경이라는 비유하자면 깊은 산 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월간 붓다》의 3월호에서 다루는 내용이 범망경 전체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 지를 환기하려는 뜻이었다. 즉, ‘노사나불’께서 ‘<천×백억> 화신의 석가모니불’에게 설하신 법문이 크게 네 덩어리가 있고, 각 덩어리에 다시 열 가지 법문이 갈무리되어 있다. 이번 3월호에서는 셋째 덩어리에 해당하는 ‘열 가지 금강심’ 중에서 제7~제10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범망경 본문에 따르면, 제7은 대승심大乘心인데 일체가 공임을 알아서 이런 지혜를 활용하여 고해를 건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제8은 무상심無相心인데 해탈하여 반야바라밀이 둘이 아님을 관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마음을 ‘무상심’ 즉, ‘티 없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해도 공하고 실천도 공하고 공하다는 그런 것마저도 공한 것을 말한다. 제9는 혜심慧心인데 본문의 내용을 아래에 인용한다.
“불자야 여여한 혜심慧心이란, 무량한 법계는 모임[集]도 없고 생을 받는 이도 없다. 생하고 또 생하여 윤회하는 번뇌에 처하여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체의 법문과, 일체의 현인이 행하는 도와, 일체 성인이 관찰하는 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방편을 내가 모두 마음속에 집중하여, 외도의 모든 논리와 삿된 명상의 공용과 요술과 마군의 설과 불설佛說을 모두 분별한다. 진제와 속제에 들어가지만, 이 둘은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5음陰 18계界 12입入이 아니니, 이는 오직 지혜의 광명이다. 지혜 광명의 비추는 성질로 일체의 법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제10은 불괴심不壞心이다. 모든 번뇌를 조복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지위, 전문 용어로 복인伏忍하는 공空에 순응하여 여덟 가지 마장에도 부서지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열 가지 단단한 마음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니 그 결과를 범망경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삼매의 힘에 의하므로 광채 속에서 부처님과 무량한 국토를 보고서,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 그때 곧 ‘최고의 삼매’를 얻고 ‘허공 평등지’에 오른다. 모든 법문을 다 간직하고, 거룩한 수행을 다 채우고, 매 순간마다 공空을 실천한다. 공하고 공한 지혜의 중도는 모양 없이 비추기 때문에, 일체의 모양이 소멸하여 ‘금강삼매문’을 얻어, 일체 수행의 문에 들어가 ‘허공 평등지’에 든다. 부처님께서 불화엄에서 널리 설하심과 같다.”
이 본문의 인용문 중에서 마지막에 나온 “부처님께서 불화엄에서 널리 설하심과 같다”라는 말씀은 범망경과 화엄경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엄교학의 입장에서 범망경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필자도 이런 점에 주목하여 화엄교학의 입장에서 범망경을 《월간 붓다》 독자 여러분께 설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