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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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도 좋아하실 불교기후행동 7가지

 


정성운
텃밭농부


5월이다. 들판마다 산마다 신록이 찬란하다. 눈길 주는 곳 어디인들 꽃밭이 아닌 곳이 없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거리에는 5색등이 은은하게 불을 밝혔다. 지난 겨울은 춥고 어두웠고, 길었다. 봄은 매화향으로 왔다. 산등성이 진달래의 연분홍빛은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고, 마침내 5월의 길을 열어주었다.
아름다운 시절이다. 밭도 푸르다. 지난 가을 뿌린 호밀 씨앗이 겨울을 지나 움트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그 파란 싹을 무릎 높이까지 올렸다. 호밀은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결에 물결처럼 출렁인다. 밭에 나가는 시간이 흥겹다. 푸르름을 만끽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눈이 맑아지고, 마음도 푸르러진다. 고사리 순을 꺾는 시기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엄지손가락 굵기만큼의 싹을 내주고 있다. 재작년 심어둔 곰취도 잘 자라고 있다. 한 차례 잎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었다. 쌉사레한 맛이 일품이다. 텃밭농부로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감자도 싹을 내밀었다. 상추, 쑥갓, 잎당귀 모종도 심었다.


자연에 대한 예의 ‘지극한 겸손’


농가 수가 100만 가구 이하로 줄어들었다. 누가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인가. 바다 건너 외국의 농부들에게 우리를 먹거리를 의지하는 상황이 되었다. 농가 수의 감소는 지역의 소멸을 말한다. 지역의 소멸은 한 사회가 자립구조를 갖지 못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한 사회는 식·의·주의 대부분을 그 사회에서 생산해 소비해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먹을거리의 자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윤이 세상사의 가장 큰 동기가 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먹거리조차 이윤 획득의 수단이 된다. 전쟁, 홍수와 가뭄, 이상 저온과 고온 등 기상 악화 등으로 식량 생산이 줄어들거나, 전염병이 돌아 방역을 강화할 상황이 되면 생산국은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다. 자국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식량 유통회사들은 더 많은 이윤을 취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사올 수조차 없다. 몇 해 전 코로나19 팬데믹 때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쌀 수출을 통제했다. 식량의 확보는 국가의 존립이 걸려 있다. 그래서 ‘식량 안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농촌의 축소 또는 소멸은 오래도록 이어온 문화와 전통을 단절시킨다. 우리의 전통문화의 지역적 배경은 농산어촌이다. 두레, 품앗이는 지역의 사람들이 노동을 함께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로 돕지 않고서는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둬두는 저수지와 물난리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
농촌의 모든 마을들은 본격적인 농사철에 들어가며 마을잔치를 벌였다. 겨우내 움츠렀던 몸을 펴고 함께 먹고 즐겼으며, 하늘과 조상들에게 예를 올리며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다.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농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바람과 물에 제사를 올렸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지극한 겸손의 몸짓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 한들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없고, 비를 그치게 할 수도 없다.
하늘에 올리는 제사는 비과학적인 행위가 아니다. 겸손한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계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과학으로 얻어낸 발견이나 결론이 결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이 밝혀낸 모든 사실은 언제까지나 잠정적이며 임시적일 뿐이다. … 우리가 보는 자연은 진정한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수행하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노출된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정우현, 생명을 묻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가장 첫째의 덕목은 겸손이다. 인간은 지구의 한 부분이다. 아니 지구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지구를 존중해야 한다. 존중의 구체적 행위는 지구라는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파괴하지 않고 보듬는 것이다.


지구의 날과 불교기후행동


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아픈 지구를 돌보아 건강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이다. 불교계에서도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움직임이 있다. 불교기후행동이 그것인데,
2020년에 발족했다. 불교기후행동은 출범 선언문에 그 취지를 담았다. 생명의 관점에서 행동하고자 한다면서 “우리는 소유와 탐욕에 기반한 현재의 산업사회를 무소유와 무탐의 불교 가치에 기반한 생태사회로 전환하는데 힘을 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현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지금 당장 국가차원에서 기후위기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산업계화 국민들과 함께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감한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 시민 사회단체들과 연대할 것이며, 미래세대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지구적인 기후행동에 연대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소유와 탐욕에 기반한 현재의 산업사회를 무소유와 무탐의 불교가치에 기반한 생태사회로 전환하는데 힘을 모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불교기후행동은 기후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인간의 오만이라고 지적한다. “마치 지구에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오만했고, 그래서 산과 강과 바다와 땅이 누려야 할 권리,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생태계는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생로병사, 성주괴공하며 순환하는 자연 생태계 생명의 고리를 끊고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구 생태계, 생물대멸종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야기하고 말았습니다.”
불교기후행동에는 개인과 단체, 사찰이 참여하고 있으며, 불교환경연대가 사무국을 맡아 꾸려가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즈음해 조계사에서 ‘녹색불자 실천 캠페인 입재식’을 열었으며, 대형 지구등(燈)을 앞세우고 조계사와 인사동 일대를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지구의 날을 알렸다.
불교기후행동은 불자들에게 다음의 7가지 실천을 당부했다. 1.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을 사용하겠습니다. 2. 필요없는 물건은 소유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며 살겠습니다. 3. 소비를 줄이고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겠습니다. 4.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겠습니다. 5. 음식을 남기지 않는 빈그릇운동을 실천하겠습니다. 6. 지구를 지키는 실천활동을 후원하고 참여하겠습니다. 7.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알리겠습니다.[불교기후행동 홈페이지
https://savenature.modoo.at]
대부분의 불자들은 위와 같은 사항들을 잘 지키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아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외람되지만 부처님께서도 흡족해하시며 ‘좋구나, 좋구나’ 하실 것이다. 그러나 6, 7의 실천은 활발하지 않은데, 이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해야 한다. 특히 7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사안이라 여겨 주저하는 불자들이 꽤 있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옳은 입장은 아니다. 환경정책을 두고 보수와 진보는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 깊이 따져보면 자신들의 유불리를 염두에 둔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정치적인 사안 이전에 인간을 먹이고 입히는 지구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기에 정치적인 견해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이다. 기후위기로 고통을 겪는 중생들을 생각하면 가장 시급히 실천해야 할 내용이다.
농촌이 사라짐으로써 정작 가슴 아픈 것은 먹거리 자급의 위기, 즉 식량안보가 흔들리는 이유만은 아니다. 서로 돕고 북돋아주는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며, 자연, 지구에 대한 겸허함과 받듦의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농촌은 물리적 공간으로서만이 아니었다. 서로 돕고 받드는 따뜻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고향인 것이다. 농촌이 사라지는 것은 정작 우리가 함께 누리려는 지향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경제성장을 이룬들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