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24년

      2024년 01월호
      2024년 02월호
      2024년 03월호
      2024년 04월호
      2024년 05월호
      2024년 06월호
      2024년 07월호

2023년

      2023년 01월호
      2023년 02월호
      2023년 03월호
      2023년 04월호
      2023년 05월호
      2023년 06월호
      2023년 07월호
      2023년 08월호
      2023년 09월호
      2023년 10월호
      2023년 11월호
      2023년 12월호

2022년

      2022년 01월호
      2022년 02월호
      2022년 03월호
      2022년 04월호
      2022년 05월호
      2022년 06월호
      2022년 07월호
      2022년 08월호
      2022년 09월호
      2022년 10월호
      2022년 11월호
      2022년 12월호

2021년

      2021년 01월호
      2021년 02월호
      2021년 03월호
      2021년 04월호
      2021년 05월호
      2021년 06월호
      2021년 07월호
      2021년 08월호
      2021년 09월호
      2021년 10월호
      2021년 11월호
      2021년 12월호

2020년

      2020년 01월호
      2020년 02월호
      2020년 03월호
      2020년 04월호
      2020년 05월호
      2020년 06월호
      2020년 07월호
      2020년 08월호
      2020년 09월호
      2020년 10월호
      2020년 11월호
      2020년 12월호

2019년

      2019년 01월호
      2019년 02월호
      2019년 03월호
      2019년 04월호
      2019년 05월호
      2019년 06월호
      2019년 07월호
      2019년 08월호
      2019년 09월호
      2019년 10월호
      2019년 11월호
      2019년 12월호

2018년

      2018년 01월호
      2018년 02월호
      2018년 03월호
      2018년 04월호
      2018년 05월호
      2018년 06월호
      2018년 07월호
      2018년 08월호
      2018년 09월호
      2018년 10월호
      2018년 11월호
      2018년 12월호

2017년

      2017년 01월호
      2017년 02월호
      2017년 03월호
      2017년 04월호
      2017년 05월호
      2017년 06월호
      2017년 07월호
      2017년 08월호
      2017년 09월호
      2017년 10월호
      2017년 11월호
      2017년 12월호

2016년

      2016년 01월호
      2016년 02월호
      2016년 03월호
      2016년 04월호
      2016년 05월호
      2016년 06월호
      2016년 07월호
      2016년 08월호
      2016년 09월호
      2016년 10월호
      2016년 11월호
      2016년 12월호

2015년

      2015년 01월호
      2015년 02월호
      2015년 03월호
      2015년 04월호
      2015년 05월호
      2015년 06월호
      2015년 07월호
      2015년 08월호
      2015년 09월호
      2015년 10월호
      2015년 11월호
      2015년 12월호

2014년

      2014년 01월호
      2014년 02월호
      2014년 03월호
      2014년 04월호
      2014년 05월호
      2014년 06월호
      2014년 07월호
      2014년 08월호
      2014년 09월호
      2014년 10월호
      2014년 11월호
      2014년 12월호

2013년

      2013년 01월호
      2013년 02월호
      2013년 03월호
      2013년 04월호
      2013년 05월호
      2013년 06월호
      2013년 07월호
      2013년 08월호
      2013년 09월호
      2013년 10월호
      2013년 11월호
      2013년 12월호

2012년

      2012년 01월호
      2012년 02월호
      2012년 03월호
      2012년 04월호
      2012년 05월호
      2012년 06월호
      2012년 07월호
      2012년 08월호
      2012년 09월호
      2012년 10월호
      2012년 11월호
      2012년 12월호

2011년

      2011년 01월호
      2011년 02월호
      2011년 03월호
      2011년 04월호
      2011년 05월호
      2011년 06월호
      2011년 07월호
      2011년 08월호
      2011년 09월호
      2011년 10월호
      2011년 11월호
      2011년 12월호

2010년

      2010년 01월호
      2010년 02월호
      2010년 03월호
      2010년 04월호
      2010년 05월호
      2010년 06월호
      2010년 07월호
      2010년 08월호
      2010년 09월호
      2010년 10월호
      2010년 11월호
      2010년 12월호

2009년

      2009년 01월호
      2009년 02월호
      2009년 03월호
      2009년 04월호
      2009년 05월호
      2009년 06월호
      2009년 07월호
      2009년 08월호
      2009년 09월호
      2009년 10월호
      2009년 11월호
      2009년 12월호

2008년

      2008년 01월호
      2008년 02월호
      2008년 03월호
      2008년 04월호
      2008년 05월호
      2008년 06월호
      2008년 07월호
      2008년 08월호

2007년

      2007년 09월호
      2007년 10월호
      2007년 11월호
      2007년 12월호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마음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초발심初發心의 공덕功德은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말한다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며 초발심이란 모든 일의 원인이요 결과이며 씨앗이고 열매라 할 수 있으며,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수승한 경계입니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부촉을 받아 수많은 선지식善知識을 참방하는 곳마다, “바라옵건대 거룩한 이여, 저에게 일러 주소서. 보살은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보살의 행에 나아가며, 보살의 행을 행하며, 보살의 행을 깨끗이 하며, 보살의 행에 들어가며, 보살의 행을 성취하며, 보살의 행을 따라 배우며 보현행원을 원만케 할 수 있겠습니까?”
“선재 선재여, 착하고 착하다.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보살의 행을 구하는구나. 선재동자여, 어떤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마음을 내었고 보살의 행을 구하는구나. 선재동자여, 온갖 지혜를 성취하려거든, 반듯이 선지식을 찾아야 하느니라.
선지식을 찾는 일에 고달프고 게으른 생각을 내지 말고, 선지식을 보고는 만족한 마음을 내지 말고, 선지식의 가르치는 그대로 순종하고,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려하지 말라.”
아뇩다라샴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의 초발심을 내기가 힘든 일인데 선재동자는 이미 그 마음을 내었고, 보리심菩提心을 내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인데 그 마음을 내었으며, 보살의 행을 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인데 지금 그 마음을 내어 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지혜를 성취하고자 하거든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고 일러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또한 지혜를 이루고자 하거든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지식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이루어지는 일들이 좋아야 하고, 함께하는 도반道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함께 어울림을 가지며 살 수 있는 불자들의 만남이 소중한 것입니다.
거기에 동사섭同事攝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에서 어울림이 그렇고, 내 가정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훌륭한 도량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값지고 소중한 공력功力을 지닌 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의 공성空性 자리를 보면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 일목요연하게 지니고 있는데, 업력業力의 작용에 의한 인연因緣 연기緣起하는 풍광일 뿐입니다.
그래서 본래 부처를 잊어버리면 그를 이름하여 중생衆生이라 합니다.
우리가 중생인 연유는 부처 성품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본래 부처를 찾으면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본래 부처를 찾고자 하는 일이 바로 수행修行이요, 정진精進이며 초발심의 시작입니다.
처음 마음을 내서 진지하게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을 지니고 정진하게 되면 이러한 삶의 인생이 복된 삶이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하지도 않고 언행일치言行一致 되지도 않는 말뿐인 종교의 믿음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생명 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밥상에 앉으면 밥 먹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밥상머리에 앉았다고 배불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밥을 먹어야 하는 행동으로 옮길 때 가능한 일입니다.
종교를 가지면 밥상에 앉았을 때 밥 먹기 수월한 것처럼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할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인들 일요일에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법회 하는 날 볼 일 없어서 법당에 와 있는 이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법회 하는 날 사찰을 찾는 불자야말로 진정, 밥상머리에 앉으면 밥 먹기가 쉽다는 이치를 아는 이들이며 참 불자님일 것입니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받아 지닌 인연을 혼자 비례대표로 나서지 말고 좀 더 많은 가족, 많은 이웃, 많은 인연 있는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삼악도三惡道에서 받는 고통과 괴로움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되면 자연히 악한 일은 꺼리고 두렵게 생각하면서 멀리할 것입니다.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법을 충분히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양재천을 걷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길 옆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고 좋아합니다.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이고, 행운을 찾으셨네요. 그런데 그 옆에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랍니다.
행복을 무더기로 놓아두고 행운 찾느라고 애쓰셨네요.”
그러자 젊은이들이 “아, 그러네요. 스님.”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거기 쭈그려 앉아서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습니다.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이면, 그 상징하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네 잎 클로버를 가지고 싶은 마음을 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글에 ‘당신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완벽을 겨루는 경기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결승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결승점은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수행이고 정진이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입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는 완벽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완벽을 겨루는 경기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완벽은 결승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결승점은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인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완벽해지지 않기 위해서 서로 기대고 채워 주고 사는 것이 부부요, 자식이요, 가족이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실망하는 일을 겪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실망감을 당연지사처럼 여기면서 고통과 상실감을 해결하지 않은 채 남겨두면, 결국 자신의 인생과 직결되는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모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상실감과 상처 안에서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만 둘이 아니라 넷에서 둘을 빼도 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혜 있는 이들은 어떠한 상실감과 상처 속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우리 사회를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들에게 묻는 그 질문에 그 답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화두를 잃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양 속담에 ‘두드려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는 말도 있지만, 어느 날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아무리 큰 사랑과 연민심으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도 나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상대방보다 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먼저이어야 할 것 입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는 가장 큰 병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의심병입니다. 그 의심 병은 미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는 가장 큰 병, 그것은 마음의 문만이 아니라 집안의 문도, 사회의 문도 굳게 잠그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불화의 씨앗이 그 안에 담기게 되고 숨겨지는 것을 슬기로운 삶을 통해 알아가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불행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문을 잠그는 곳에서 씨앗으로 움 틔워진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소중한 이웃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연민심憐愍心과 자비심慈悲心을 드러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살핌을 주면서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그대가 꽃과 나무에 물을 줄 때 그것은 지구 전체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무수한 시간 동안 함께 존재해 온 것’이라 했던 마음도 살피면서 살아가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