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우 자유기고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7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그만큼 이번 대선은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한 뒤에도 서로 이래저래 골치 아픈 입씨름 뿐이다. 고매한 인격도 이러한 급물살에 휩쓸리면 망신창이가 되기 십상이다. 아이러 니한 것은 온 나라가 이렇게 들썩거려도 주인격인 이 나라 국민들은 대선 때나 지금이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희망찬’무자년 새해임에도 그 희망에 대한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한다. 과연 우리는 무자년 새해에 무언가 희망을 걸어도 될까,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새로운 한해를 내딛는 첫 발부터 짊어지고 길을 나서야 한단 말인가.
인류사를 자로 재볼 때, 99.9%가 선사시대였으며 달빛의 시대였다. 비유컨대 옛말에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롯한 역사의 시대다. 우리의 역사도 달빛에서 벗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이 사바세계를 제도하신 것은, 달빛을 헤매는 무지몽매한 우리의 마음에서 희망을 찾게 해주신 것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또다시 달빛으로 들어 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마음은 점차 우매해지고 물질만능의 집착에 매달려 헤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거기에 마음이란 찾아볼 수 없다. 나라의 수장이 바뀌면서 새로운 화폭에 담으려는 그림이 과연 어떤 그림일진 모르나 거기서 우리네 마음을 발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마음은 이처럼 세상을 바로 이끄는 나침반과 같다.
언제나 마음이 주인인 세상은 물질에 끄달리지 않을 것이며 바탕이
깨끗한 종이는 그림이라는 세상을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우리는 작금의 물질의 시대에서 마음이란
바탕을 어떻게 바로 세워야할까 고민해 봐야 하겠다.
논어(論語)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을 만든 후에 하는 것이니라.(繪事後素)”
‘회사후소(繪事後素)’. 회사(繪事)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고, 후소(後素)는 흰 바탕을 만든 다음이라는 뜻이다. 즉,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을 만든 다음에 비로소 원하는 채색을 가할 수 있음을 이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하든 좋은 바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서,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을 때 먼저 밑바탕을 희게 만든 다음에 비로소 온갖 채색을 통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아름답게 완성해 나갈 수 있듯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먼저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형성되어 있어야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즉, 사람으로서 기본기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불교적 의미에서 볼 때 회사후소는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바로 우리네 마음을 관통하는‘기본’이라는 것이다. 이제 새 학기를 시작하려는 학생의 마음, 새로이 직장생활을 하는 사회인의 마음, 결혼해서 새출발하는 신혼부부의 마음, 원을 세우고 출가하는 수도자의 초발심···.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여기에서 구태와 미명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부처님께서는“사람 마음이 본래 미묘하고 밝고 깨끗하지만, 스스로 혼미하여 본래 미묘한 것을 잃어버리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떠다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마음의 기본 바탕이란 이처럼 청정하지만 우리는 그 청정함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이를 자각하고 그 청정함을 다시‘되’찾으려는 바람으로‘마음 닦기’를 여일하게 행하곤 하지만, 곧 그 닦아놓은 마음바탕이 자잘한 세상사로 얼룩지곤 한다. 그러나 얼룩이야 금새 반짝반 짝 닦일 것이다. 바로 마음 닦기를 하면서 스스로 기본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경전공부에만 몰두한 어떤 스님은 경전이야말로 부처님께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았지만 문자에 얽매여 있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 스님은 물론 경전공부는 마음을 깨치는 이치를 가르쳐 주는 측면에서 매우 탁월한 공부법임은 인정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이 자신을 바로보고 해탈의 경지를 이루는 점에서 마음 닦는 공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에서 말하는‘기본’ 이다.
그 기본 위에서 우리는 불국토를 이룰 수 있으며‘햇빛’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참으로 청정함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인다. 세상에는 스스로의 양심을 저버리고 온갖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거리낌이 없는 이들로 가득하다. 자신의 마음이란 이미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고 물질에만 연연해가고 있다. 나라살림이 기름지고 가정경제가 살찌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나의 마음이 윤택해지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듯 싶다. 먹고살기 위해 아웅다웅할 일에 앞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먼저 자각하는‘기본’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이왕 출발한 새로운 정부 아래 새로운 한해의 시작 아닌가.
우리는 이 새로운 한 해 동안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바탕부터 잘살펴야 할 것이다. 마음부터 거울처럼 반짝반짝 닦아 놓아 우리를 발견하고 공자가 말한 회사후소를 실천해 봄직은 어떠한가.
법구경에 이르기를“마음이 모든 법들에 앞 서가고 마음이 그들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서 모든 행위가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그에게는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라고 했다. 또“세상은 마음에 의해서 인도되고 마음에 의해서 끌려간다. 모든것들은 오직 마음이라는 하나의 법의 힘을 쫓아간다”고도 했다.
마음은 이처럼 세상을 바로 이끄는 나침반과 같다. 언제나 마음이 주인인 세상은 물질에 끄달리지 않을 것이며 바탕이 깨끗한 종이는 그림이라는 세상을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우리는 작금의 물질의 시대에서 마음이란 바탕을 어떻게 바로 세워야할까 고민해 봐야 하겠다.
이제 세상은 손 끝의 재주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에서 세상을 바로 보는 심미안을 무엇보다 요구할 것이며, 현란한 기교가 행세하는 세계보다 정신과 마음의 고매함이 배인 수묵화처럼 더욱 맑고 청정한 향기를 내뿜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의 바탕이 비로소 갖춰졌을 때 이 사회는 비로소‘달빛의 시대’를 지나‘햇빛의 역사’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지금의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천 년 전 한 성인이 말한‘회사후소’는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