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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공안

미국불교포교 현장에서


법일스님 / 미국 북가좌주 참선지도법사


지금 한국에서는 2,000여명의 수좌스님들이 전국 각처의 선원에서 참선수행 중이다. 수행승 모두가 동안거 동안 본마음자리 즉 본래면목을 깨닫고자 용맹정진중인 것이다.
결제하여 벌써 한 달이 더 지났다. 미국 북가주 타사하라 미국인 선원에서는 8개월(9월 1일 ~ 다음해 4월 30일)간 결제를 하고 있다. 그러면 찾고 있는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실로 백 가지 이름이 미칠 수 없는 곳이다. 백 가지 이름이 미칠 수 없는 곳, 이것이 무엇인가? 혀뿌리를 댈 수 없는 실질적 자아(the true face of mine)로서 영원성인 참나다. 시공(time and space)이란 단지 인식일 뿐이라고 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생각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있게 된다는 말이다.
덕산스님이 풍주에 이르러 떡을 사 먹으려 하자 노파가 물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 마음도 얻지 못하고, 현재 마음도 얻지 못하고, 미래 마음도 얻지 못한다고 했으니 스님은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먹자고 합니까?
금강경에 달통한 덕산스님이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될까?
필자에게 묻는다면, 묻고 있는 노파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 버리겠다. 세간의 모든 학문이나 지식은, 모르는데서 시작하여 아는 곳에서 그치고 있다. 그러나 선불교의 참선법은 오히려 아는데서 출발하여 모르는 곳에, 즉 빈 곳(Emptiness)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또한 텅 비어져 있는(Emptiness) 곳이야 말로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일체 만법이 공적(완전히 죽어진 곳)한 이곳으로부터 생하고 있는 것이다.
옛 선사들이 이르되 “공하여 있지 않으나 또한 묘하여 없지 않으니 끝없는 작용이 구족하다.” 고 했다. 또한 죽음 가운데 삶이 있고, 삶 가운데 죽음이 있다고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모두가 오늘의 시대를 평상심을 잃은 혼돈의 시대라고 우려하고 있다. 수많은 사상과 종교들,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서도 사회는 갈수록 혼돈과 모순 속에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동양의 선사상이야 말로 혼탁한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이 시대 최상의 처방이며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오늘의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 등 지구촌 방방곳곳에서 선수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다. 미국은 요즘 들어서는 천 여 개(화두선, 묵조선, 위빠사나수행법, 티베트수행법 등)의 수행처가 있다고 본다.
참선수행의 뿌리는 동양에 있으나 꽃은 오히려 서양에서 피어나고 있다. 그들에게는 어느덧 실생활화 되어가고 있다.
왜 그럴까?
인간의 삶의 목적이 행복추구에 있다고 볼 때, 결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밖에 있지 않다고 본다. 미국을 봐도 절실히 느껴진다. 오늘의 미국인들은 말하고 있다.
“미국이 지상 최고 최상의 부강한 곳이지만, 동양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라고.
그들의 정서적인 분위기를 살펴볼 때 동양의 선사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요즘의 한국은 불교학자는 많으나 눈 밝은 수행자들은 만나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1960년대 필자가 젊었을 때만 해도 선지식들 여러분이 생존하셨던 시대다. 결제가 끝나 해제 때가 되어도, 정진하는 마음으로 전국의 선지식들을 찾아가 점검을 받았다. 따라서 해제 내내 긴장되고 즐거웠다.
북통같은 걸망을 등에 지고 뻘뻘 땀을 흘리며 걸어서 선지식들을 찾아 뵙다보면 어느새 해제철이 모두 갔었다. 그 때 그 도반들이 그립다. 모두가 알듯이 화두공안선은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따질수록 더욱 멀어지고 망상만 쌓일 뿐이다.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를 택하여 일구월심으로 수행할 때, 분별심이 다하고 생멸심이 끊어진 온갖 법이 다한 곳에서 소소영영한 주인공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참으로 없는 곳에서 영원성을 보게 되며 무아일 때 진정한 나를 보게 된다.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실참수행을 하고 있다.
정신이 아득하고 목숨이 다해 분해될 그 때를 당하여도, 알음알이로 분석하여 따져볼 수 있겠는가?
설령 남을 속였다 해도 이 때를 당하여 어찌 자기 자신마저 속일 수 있겠는가?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어 주체적이 되면,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경계가 일제히 일어나더라도 신령한 당처가 부동불매하여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을 당하여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아이고, 아이고.”
혹자는 공안선이 우리 것이 아닌 중국에서 들어온 수행법이라고 하여 토를 다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문도, 영어도, 모두가 우리 것이 아닌 외래 것이니 사용하지 말아야 된다. 무릇 화두공안선법이 이 땅에 들어온 지도 천년이 넘었다. 이젠 우리 것이 된 것이다. 특히 한국이 본래의 전통을 이어가는 나라일진댄 화두공안선의 종주국인 것이다.
화두공안선이야말로 국제무대에서 한국불교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모두가 서양화 되고 있는 시대에 화두공안선법이야말로 서양을 동양화 시키고, 한국화 시키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