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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또 다른 이름, 긍정의 마음을 발견하세요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인도 다람살라 = 가연숙


“존중은 신뢰에서 비롯되며, 신뢰는 투명성에서 옵니다.”
12월 10일,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한 14대 달라이라마(텐진갸초, 76) 연설의 핵심이다. 매년 12월 10일은 달라이라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한 티베트인들의 공휴일이다. 이 날이 오면 티베트중앙행정부가 수립된 인도 다람살라의 쫄라캉에서도 축제가 열린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 당시 달라이라마는 비폭력 항쟁과 인권 수호를 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달라이라마는 12월 19일부터 다람살라서 열리는 러시아법회를 앞두고 사전 공지 없이 체코를 방문했다. 체코 외교부장관(Karel Schwarzen berg)의 초청으로 성립된 뜻 깊은 순방이다. 지난 일본 법회 이후에도 달라이라마의 일정은 느닷없이 몽골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한국을 경유하지 않으면 몽골 입국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다행히 일본에서 항로편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법회 일정을 관리하던 측근은 “중국정부의 불필요한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비공식으로 추진했다.”고 전했다.
체코에서 열린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포럼’에 참석한 달라이라마는, 아랍권에 불었던 봄의 항쟁이 머지않아 중국에도 일어날 것이라며 그 필요성을 확신했다. “행복의 원천은 바로 나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샘솟는다.”고 연설한 달라이라마는 ‘타인과 사회를 향한 복지에 대해 관심이 동정이 아닌 존중으로 펼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오랜 달라이라마의 친구이자 체코공화국 전 대통령이면서 시인인 하벨(Vaclav Havel)과의 1시간여 만남에서 달라이라마는 하벨에게, “부디 10년 이상 건강을 잘 유지해서 우리의 만남이 지속되도록 하자.”고 덕담했다. 두 노장은 “1년 전 오늘 노르웨이 오슬로의 빈 의자(리우자보우(Liu Xiaobo)는 중국의 억류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의 가족 또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아 2010년 노벨평화상은 빈 의자 위에 수여됐다.)가 보인 슬픈 현실을 기억해야 한다. 티베트의 현실과 민주주의는 기필코 승리한다.” 대화를 나눈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했다.
달라이라마의 일정을 보면 여느 젊은 패기 넘치는 모험가를 능가한다. 한 두 시간의 기조연설을 위해 수일간 소비해야 하는 길 위의 시간을 인내하고 감수한다. 역대 달라이라마 가운데 가장 파란만장한 인생의 질곡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이라마의 수행원은 바뀌지만 그의 소박한 적색 승복과 가죽 신발 그리고 바랑은 변함없이 한결 같다.
이는 달라이라마께서 북인도 지역,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 마을 ‘누브라밸리(Nubra Valley)’에 방문했을 당시를 회상케 한다. 불교왕국의 유적을 간직한 레(leh)에서 지프를 타고 6시간 동안 굽이진 산맥을 달리고 또 달린다. 바람이 시간의 흐름을 기억한다면 분명 이런 흔적일 것이라 느껴지는 계곡과 초원이 펼쳐진다. 끝을 가늠키 어려운 길 위에 세워진 돌 위에 그려진 화살표가 우리의 방향이 옳다고 안도감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목으로 불리는 해발 고도 5천 6백 6미터의 까르둥라(Kardungla)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다. 불과 2시간 전 땡볕의 레와 극명한 날씨다. 사람 키보다 높은 눈을 헤치고 끝을 알 수 없는 내리막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누브라밸리. 중국 그리고 파키스탄 국경과 마주해 1990년도에서야 비로소 외국인에게 개방된 미지의 땅이다.
외국인은 레에서 여행사를 통해 고작 1주일간의 방문 허가증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미지의 공간에서 7월 21~27일 일주일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열렸다.
이번 법회는 삼스텐링사원(Samstanling Gompa)과 야르마곰보사원(YarmaGonbo Gompa) 그리고 디스켓사원(Disket Gompa) 3곳을 중심으로 한 일정으로 진행됐다. 1841년 세워진 삼스텐링사원은 인더스 강으로 이어지는 계곡 안에 자리한 작은 마을 수무르(Summor)에 위치한다. 야르마곰보사원에는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법회 당일인 23일에서야 인도정부의 승인을 받아 가까스로 법회가 열릴 수 있었다. 때문에 달라이라마 조차도 야르마곰보사원의 여정을 헬리곱터가 아닌 지프를 이용한 육로를 이용해야 했고 소수의 핵심 관계자만이 당일 법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어서 디스켓사원에서 25일 거행된 105피트(32m) 규모의 마이뜨레야(미륵붓다) 점안식은 이번 달라이라마 법문 일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법문은 대승불교의 정수가 담긴 <금강경>과 쫑까파대사의 <삼종요도(三種要道)>를 주제로 했다. 40도의 고온을 웃도는 평균 기온 속에서도 이만여명의 청중이 이번 법회에 동참했다. 그 가운데 사백여명의 외국인이 법회 일정 마지막까지 달라이라마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달라이라마는 법회 마지막 날, 외국인들과 특별한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다음은 법문의 요지>


11세기 인도의 위대한 스승 ‘실로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정한 마음은 색도 형태도 없네. 이는 즉 어둡지도 밝지도 않음이며,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도 아니라네.”
제가 모든 법회에서 변함없이 강조해온 중도의 한 대목입니다. 마음은 독립적이거나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지금까지 극단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뇌는 이 대목을 이해하기 힘들어 잠시 주춤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마음의 평화가 주는 혜택이 무엇인지 경험합니다. ‘달라이라마’라고 하는 지고지순하게 인간적이고 유한한 존재인 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무게의 서원 행은 사명이자 고요한 진실 그 자체입니다. 
티베트 본토에서 많은 동족들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을 때, 저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살며, 살아가며 부딪히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마음 깊이 상처를 남긴 아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법회에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중국정부와 중국인을 혐오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집착 없는 자비심과 용서를 내보이라고 항시 권고하고 당부합니다.
중국의 2억 불자들이 진심으로 불교의 참뜻을 바로 깨우치는 날, 티베트인의 자유는 순리이거니와 인류사의 불교는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할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 티베트인들이 자비심의 씨앗을 피우고 성장시키는데 좋은 자양분입니다.
나는 강조합니다. 국적과 인종 그리고 종교 등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존엄한 인류임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있어서 그들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관찰한다면, 나 자신과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 잠시 잊고 있던 내 안의 바른 마음, 긍정의 마음을 발견하십시오. 그 마음이 바로 자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쁨의 길을 걸어가고 싶어 합니다. 향기롭고 건강한 것만을 취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을 행복이라고 하지요. 쫑까파 대사는 ‘중생이 이타심의 용기를 내어 청정한 염리심으로 발현되는 길’을 <삼종요도>를 통해 설하셨습니다. 순수한 마음과 바른 노력으로 정진해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깨달음을 농축하셨지요.
풍요로운 마음이란 결국 건강한 신체로 드러납니다. 그 기반은 방편과 결합된 지혜입니다. 우리는 고귀한 인간의 몸을 받은 것과 무상을 기억해야 합니다. 윤회의 고통을 알아차려 다음 생의 번뇌 인연을 끊을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해탈로 인도하는 공성의 길을 지혜로써 일깨우십시오. 완전한 길로 가고자 하는 출리심이 바로 붓다의 길입니다. 보리심의 공성을 이해할 때 무수한 겁이 지어놓은 무지의 감옥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공성은 연기법에서 생합니다. 또한 연기법은 공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래 성품인 공성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는 마치 강물이 흐르는 바와 같이 얽매임 없는 바른 사유를 필요로 합니다. 흐름은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연기를 속이지 못한다는 실상을 보고, 믿고 있던 지식의 사슬을 풀을 때 실상의 참된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만큼이 이생에서 누리는 당신의 그릇입니다. 지식에 의존하려 들지 마십시오. 불법에는 절대 강요가 없습니다. 지식이 아닌 지혜의 거울로 바른 불자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우리는 모두 그 길 위에서 만난 반가운 인연입니다.
불교 전통에서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라고 하는 것도 깨어있음을 통해 보다 맛깔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나’라고 하는 붓다의 씨앗이 정진의 힘을 발휘해 상서로운 해탈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를 서원합시다.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임진년 새해를 맞아 구룡사 회주 정우스님께 보내온 신년 축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