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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13릉(明十三陵)

김지상
화광전통미술연구소, 중국국가박물관수복연구원

명13릉(明十三陵)은 중국 명대의 황제와 황 후의 능묘군으로, 성조 영락제 이후의 황제 13대의 능묘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유네스코에 의해 2003년에 세계문화유산으 로 지정되었는데, 13릉 중에서 장릉(長陵)과 정릉(定陵)이 대표적이다.

연산(燕山)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금빛찬란 한 황제릉은 산세를 따라 건설되었는데 능침 (陵寢)건물이 자연경관과 하나로 접목되어 있 어서 중국 황제릉 건축의 대표로 꼽힌다. 베 이징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동 쪽과 서쪽, 북쪽 세면이 산에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트여 있는데, 이곳으로 난 길이 베이 징까지 이어진다.

총 면적은 40㎢에 이르는데, 이 거대한 공 동묘지에는 명나라 17명의 황제 중 가장 뛰어 난 업적을 남긴 제3대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를 필두로 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 1 명의 황귀비가 묻혀 있으며, 함께 매장된 비 빈과 궁녀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또한 이 거대한 묘역 안에는 황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태자와 공주들의 묘도 함께 포함 되어 있어 그야말로 명나라의 황실 전용 묘역 인 셈이다.

장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헌릉, 경릉, 유 릉, 무릉, 진릉, 강릉, 정릉, 소릉, 사릉이 차 례로 있고 오른쪽으로는 경릉, 영릉, 덕릉이 자리하고 있다.
장릉의 주인은 주태인데, 이 황제가 바로 처 음으로 이곳에 자신의 능을 판 사람이다. 주 태황제는 큰 꿈을 가진 황제로, 베이징으로 천도한 목적은 베이징의 지정학적 우위를 이 용해 북쪽 침략자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기 도 했다. 그래서 베이징에 베이징성과 자금 성, 만리장성을 함께 건설했다. 주태가 판 장 릉은 명13릉 최초의 능이고 이 능원에서 규모 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축조했으며 지상 건물이 가장 잘 보전된 원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장릉의 건축물은 자금성의 구조를 모방해 붉은 담에 노란 기와를 사용했고 건물과 누각 이 어울려 황제로서의 지고무상한 지위를 잘 보여준다. 능의 중심건물은 능은전(陵恩殿)인 데 과거 황실의 제사를 모두 이 건물에서 지 냈다고 한다.
장릉의 대표적인 목조건물인 능은전은 높이 12m, 지름 1m의 녹나무 기둥 60개가 받들고 있다. 녹나무는 아주 진귀한 수종으로 이런 목재는 쉽게 부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이한 향까지 난다. 이런 녹나무는 중국 서남부의 운남과 사천의 깊은 산속에서만 자란다. 그래 서 베이징까지의 수송이 엄청난 일이었는데 먼저 높이 10여 미터, 지름 1미터 이상의 나무 를 벤 다음 여름철 큰물이 질 때를 기다렸다

가 목재로 뗏목을 만들어 강물을 통해 베이징 까지 수송했다.
중국의 남방으로부터 베이징까지 인공으로 판 운하(運河)가 있어서 물에 의한 수송이 가 능했고, 베이징에서 명13릉까지는 수로가 없 기 때문에 겨울을 기다렸다가 몇 미터에 하나 씩 우물을 파서 그 물을 길에 뿌려 두꺼운 얼 음을 만든 다음 그 얼음위로 목재를 밀면서 수송했다. 이렇게 녹나무 기둥 1개를 운남으 로부터 베이징까지 수송하는데 소요된 시간 은 3-4년이 걸렸고 동원된 인력은 2만 명 이 상이었다는 통계가 있다. 따라서 명13릉을 만 들기 위해 소모된 인력과 재력, 시간은 상상 이 안 될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능은전의 뒤에는 네모난 높은 건물이 있는 데 이것이 바로 명루(明樓)이다. 명루는 명조 황릉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이 건물에는 능 주인의 묘비가 있다. 그리고 명루의 왼쪽과 오른쪽 양옆으로 담이 원형을 이루며 흙더미 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 흙더미가 보정(寶頂)이 고, 보정 아래는 황제와 황후의 관이 모져진 지하궁전이 있다. 명루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능 전체가 한 눈에 안겨오고, 앞 쪽은 네모나고 뒤 쪽은 둥근 형태이
다. 고대 중국인들 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여겼다. 따라서 이러한 건축구도는 황제가 사후 천 국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고고학자들이 장릉의 지하궁전을 발 굴하려 시도했지만 아무리 해도 지하궁전의 입구 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먼저 다른 능을 선택해 지하궁전을 발굴해 최대의 능인 장릉에 대한 파괴를 최소화하려 했다. 그렇게 선택 된 능이 13릉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정릉이다.

정릉에는 명 만력(萬歷)황제와 두 황후가 묻혀 있 는데, 건축구조가 장릉과 아주 유사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능 역시 발굴과정에서 지 하궁전 입구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하게 신비한 작 은 돌 비석을 발견했는데, 그 돌비석이 지하궁전을 여는 키였고 돌비석에는 정릉 지하궁전 입구의 위 치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작은 돌비석의 인도를 따라 순조롭게 지하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능을 판 사람들이 왜 작은 돌비석을 남겨 후세의 사람들이 지하궁전을 찾도록 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만력황제는 22살부터 이 능을 파기 시작 했고 6년 뒤인 28살 때 능을 완공했다. 하지만 만 력황제는 58세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능이 완 공된 뒤로도 30년 동안은 빈 공간에 문만 잠겨 있 다가 황제가 세상을 뜬 다음 다시 문을 열어 황제 를 안치했다. 이 과정에서 입구를 찾지 못할까를 우려해서 이런 돌비석을 만들었던 것이다.

정릉의 지하궁전은 지하 27m에 있다. 이 높이 는 9층 건물과 맞먹는다. 지하궁전은 앞(前), 중앙 (中), 뒤(後), 왼쪽(左), 오른쪽(右)에 위치한 다섯 개의 천정이 높고 탁 트이게 넓은, 서로 연결된 형 태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궁전은 모두 돌로 된 석 실이다. 중앙의 건물에는 3개의 한백옥 보좌가 있 고 그 앞에는 큰 독이 있는데, 그 독은 참기름이 담 겨진, 장명등(長明燈)이다. 뒤쪽의 건물은 지하궁 전의 핵심 건물로, 이곳에는 만력황제와 두 황후의 관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