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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화합에 대한 단상

소통과 화합에 대한 단상


 


권진영(대일) / 동국대부속여고 교법사


 


지금부터 약 10여 년 전의 일이다.


서울에 있는 불교종립학교인 동대부중․고, 명성여중․고(현재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고등학교로 개명 됨), 은석초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이 서울 구룡사 만불보전에서 합동수계식을 봉행한 적이 있다.


당시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이셨던 녹원 큰스님을 전계화상으로 모시고 봉행된 그날의 수계식은 그야말로 여법하고 장엄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호괘합장에 익숙하지 않는 아이들은 힘들어하는 내색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보시고 큰 스님은 더욱 자상하게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법문하시는 통에 법회시간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 털썩 주저앉는 아이, 화장실이 급해 몸을 비비 꼬는 여학생들이 여기저기에서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아이들에게는 다소 긴 법회시간이 흐르고 구룡사 주지이신 정우스님의 인사말씀 차례가 되었다. 정우스님은 아이들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고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1 더하기 1은 몇이지요?”


아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2요.”


그러자 정우스님이 또 질문을 던지셨다.


“3 빼기 1은 몇이지요?”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과 목소리로 건성 대담을 했다.


“2요.”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요. 1 더하기 1도 2고, 3 빼기 1도 2입니다. 다들 잘 알겠지요?”


그러자 그 넓은 만불보전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와!”하는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지기 시작했다.


거의 1시간 동안 법문들은 수계의 의미 중 개차법(開遮法)을 아이들이 몇 마디 문답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소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요즘 학교 법당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대견하다. 조금 쿵쿵하는 소리는 날지언정 천상의 목소리로 맑은 예불을 드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설법을 경청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법사로서의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가끔씩 아이들에게 외계인 취급을 당할 때가 종종 있다. 아이들의 관심사항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때부터 인지는 잘 모르지만 TV에 나오는 가수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고 감동이나 재미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말 안 통하는 답답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인터넷도 뒤져보고, 문자대화도 해보는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만큼 진정으로 재미있거나 가슴이 설레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이 단지 흉내 내기에 그친다면 결국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차라리 가수 이름을 모르거나 패션 감각이 떨어지더라도 법당을 찾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크고 작은 고민들에 대해 교법사인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없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같이하는 것도 소통이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지만 그들만의 힘으로는 하기 힘든 일을 내가 도와주면 서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대학진학’에 관한 것이다. 법회활동이나 각종 불교행사에 참여해서 자신의 몫을 할 때는 아이들은 활기차고 밝은 얼굴이다. 그런데 공부를 위해 교실로 돌아갈 때는 한숨을 쉬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매번 보며 설법을 잘해서 환희심을 심어주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힘들어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단 아이들은 목표의식 없는 무조건적인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는 채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법회시간에 ‘진로적성 탐구를 위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제일 잘하는 것을 밑천으로 글을 써보자.’라는 제안을 했더니 의외로 적극적인 반응이 있었다. ‘포트폴리오 작성을 위해 논문을 써도 좋나요?’, ‘다른 학교 애들도 해도 되나요?’ … 당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좋다. 그렇게 하자’라고 대답했고, 결국 지난 2009년 12월 30일 ‘청소년 글모음집 『선연』’이 창간되었다.


전국의 18개 고등학교가 회원학교가 되었고, 50여 명의 학생들이 뛰어난 글을 제출하여 약 300여 쪽의 글모음집이 탄생하였다. 특히, 이 책은 표지그림을 비롯하여 기획이나 편집 등을 학생 자치활동으로 진행하였는데, 이는 요즘 대학입시의 화두인 ‘입학사정관제도’가 원하는 대목이다. 아마도 이 ‘청소년 글모음집 『선연』’은 앞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 이유는 지도자 중심의 기획출판이 아닌 서툴고 느리지만 순수한 학생의 힘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대차이든, 신념의 차이든 갈등과 무관심을 극복하려면 ‘소통’의 노력을 함께 경주해야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서로 단순하게 흉내를 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모양새가 되어야 한다고 보며 그래야 비로소 ‘화합’이라는 생산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정우스님께서 오줌 마려운 아이의 마음을 읽고 짧은 법문을 하셨고, 아이들도 법문의 정수를 알아차리고 큰 박수를 쳐서 행복한 마음으로 모두 화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