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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과 법도를 따를 때 신심도 솟아납니다

대현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참배(Ⅲ)


대현스님
부안 내소사 봉래선원 한주


●●●《 지난호에이어서 》


또 부처님 전에 꽃을 올립니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꽃은 실상묘법화(實像妙法花)입니다. 실상(實像)은 진리의 본성, 진리의 참모습이며, 묘법(妙法)은 심원미묘(深遠微妙)한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실상묘법을 보이자, 가섭존자만 그 소식을 알고 미소를 지었으며, 나머지 대중은 업식(業識)에 가리어져 알지 못했습니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은 비록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 같은 연못의 진흙 속에서 솟아나지만 진흙이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허공에 핍니다. 연꽃처럼 우리의 자성자리는 비록 오욕에 찌든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지만 조금도 물들지 않고 항상 청정합니다. 무명번뇌가 다해 본래 청정한 본인의 자성(自性)을 깨닫게 되면,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들어 보이신 실상묘법의 도리를 체득하게 됩니다


부처님 전에 꽃을 올려놓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합니다.


“일심정례 예경하옵고 지극한 정성으로 실상묘법화를 올립니다.”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실상묘법을 보이셨지만, 저희 중생들은 무명업식에 가리어 그 진리를 체득치 못하고 오욕진도에 찌들어 생사고해를 헤매고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가 올리는 이 꽃이 실상 묘법화가 되어 보는 이마다 지혜의 눈이 열려, 부처님께서 꽃을 든 도리를 깨닫고 실상묘법을 체득하여 생사 윤회를 벗어나게 하옵소서.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또 부처님 전에 과일을 공양합니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과일은 원증불지과(圓證不地果) 입니다. 원증불지(圓證不地)란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 복덕과 지혜를 쌍으로 닦아 원만히 구족하여 깨달아 증득해 불지(佛地)에 오른 것을 말합니다. 엄동설한의 매서운 추위와 여름삼복의 불볕더위를 이겨낸 나무일수록 가을에 향기롭고 맛있는 과일을 맺듯이, 어려운 수행의 고난을 이겨낸 수행자만이 큰 깨달음의 기쁨을 얻습니다.


부처님 전에 과일을 올려놓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합니다.


“일심정례 예경하옵고, 지극한 정성으로 원증불지과를 올립니다. 이차 인연공덕으로 원증불과를 증득케 하옵고, 법계에 널리 베풀어 이 과일을 먹는 자는 모두 무상정등각을 이루어 부처님 혜명(慧命)을 이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부처님의 은혜를 갚도록 하옵소서!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위 여섯 가지 초·향·차·쌀·꽃·과일 공양을 육법공양(六法供養)이라고 합니다. 육법공양을 육바라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보시는 쌀, 지계는 향, 인욕은 꽃, 정진은 과일, 선정은 차, 지혜는 초입니다.


공양물을 불전에 올려놓고 합장하고 서서 반배를 한 뒤 오체투지 예배(禮拜)를 올립니다.


합장(合掌)은 일심귀의(一心歸依)를 의미합니다. 합장은 두 손바닥을 마주대서 합하는 것을 일컫는데, 마주 닿은 손바닥 사이에 틈이 있거나, 손가락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 손을 모아 마주하는 것은 마음을 일심(一心)으로 모은다는 뜻이며, 나와 부처가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로 합쳐진 귀의처(歸依處)를 뜻합니다.
부처님 전에 일심귀의로 오체투지 예배를 올립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양 팔과 양 무릎과 머리를 땅에 대고 예배드리는 의식으로, 온 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하면서 공경하는 이를 마음속 깊이 받드는 최상의 예경(禮敬)입니다. 예배의 예(禮)는 진성공경(眞性恭敬)이요, 배(拜)는 무명굴복(無明屈伏)입니다. 진선공경은 모든 중생의 본성인 본래 청정하여 물듦이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을 깨달아 자성을 여읜바 없이 항상 지혜 속
에서 수용하는 일상을 말합니다. 무명굴복은 무명으로 일어나는 번뇌를 굴복하여 본래 청정한 진여자성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 전에 예경이 끝나면 다음은 신중(神衆)전에 예경합니다. 신중단(神衆壇)은 호법신장님들을 모신 단 으로 중단(中壇)이라고 말합니다. 신중단에는 삼주호법 동집보살을 중심으로 대범천왕, 제석천왕, 사방천왕 등의 성중과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긴나라· 가루라·마후라가 등 팔부신장과 북두대성 칠원성군· 산신·조왕신 등 104위 호법신장을 모신 단입니다. 이 신중님들은 부처님 전에 서원하기를 불·법·승 삼보를 옹호하되 삼보님께 절을 받지 않을 것이며 부처님전에서 퇴공한 공양물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 예불 시에는 스님들은 오체투지 절을 하지 않고 반야심경만 독송합니다. 사시불공 때는 부처님 전에 올린 공양물을 퇴공하여 올립니다. 스님들이 신중단에 오체투지 큰절을 하지 않는다고 신도들도 오체투지 큰절을 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또 법당 안에는 영가(靈歌)를 모시는 영단(靈壇)이 있습니다. 아미타여래영도 또는 감로탱화가 모셔져 있는 영단은 49재, 천도재 또는 기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하단(下壇)이라고 말합니다. 영가전에 절을 할 때는 유교 체득하게 됩니다.   식 절을 하지 말고 불교식 오체투지로 3배를 합니다.


이렇게 대웅전 안 각단 참배를 하고난 뒤 참배하는 참배하고 또 탑을 참배합니다. 탑을 돌 때는 시계 바늘 사람이 없을 때는 촛불을 끄고 나와야 합니다. 촛불을 이 도는 오른쪽 방향으로 합장하고 돕니다. 오른쪽으로 끌 때는 손이나 촛불을 끄는 도구를 사용하고 입으로 도는 것은 존경의 뜻이지만, 뒷짐지고 돌거나 왼쪽으로 불어 끄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촛불이나 청정수를 도는 것은 멸시하는 뜻이 있으니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올릴 때는 상단인 부처님 전부터 시작하여 중단인 신중 다만 선방에서 좌선하다가 중간 보행 때는 왼쪽으로 돕단, 하단인 영단 이런 순서로 하고, 반대로 촛불을 끄거 니다. 그 뜻은 깨닫기 이전은 망(妄)이기 때문에 모두 나 청정수를 걷을 때는 하단부터 시작하여 중단, 상단 다 뭉개버리고 철저히 다 비운 뒤에야 참이 있기 때문 순으로 합니다. 이것은 종체기용(從體起用), 섭용귀체 입니다.
(攝用歸體)를 뜻하는 것입니다. 종체기용은 근본을 좇 부처님 전에 초·향·차·쌀·꽃·과일 등 공양물을 아서 모든 작용이 일어나고, 섭용귀체는 모든 작용이 올릴 때는 오른손을 써야합니다. 오른손은 존경의 뜻이 거두어져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주 있고, 왼손은 멸시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법계의 질서요, 삼라만상의 생(生)하고 멸(滅)하는 연기 주를 돌릴 때는 왼손으로 돌립니다. 108염주의 108이 (緣起)의 법칙입니다. 이 원리(原理)는 절집생활 법칙에 라는 숫자는 중생의 번뇌를 상징합니다. 백팔번뇌의 여러모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새벽예불은 108이라는 수는 중생의 번뇌가 6근으로 6진(色, 聲, 체(體)인 대웅전에서부터 시작하여 관음전, 명부전, 삼 香, 味 , 觸, 法)을 대할 때 저마다 호(好), 오(惡), 평등
성각 등 하단으로 끝을 맺고[從體起用] 저녁 예불 때는 (平等)의 세 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번뇌를 일으키 하단인 삼성각부터 시작하여 명부전, 관음전, 대웅전에 고, 또 락(樂), 고(苦), 사(捨)의 3 수(受)가 있어 1 8번뇌
서 끝맺습니다.[攝用歸體] 를 내니, 모두 합하여 36종, 여기에 3세(과거, 현재, 미 또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 제일 먼저 천수(千手) 래)를 곱하면 108번뇌가 됩니다.
물 돌릴 때 , 체(體)인 어간 큰스님부터 시작하여 하판인 번뇌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탁자 밑 사미승에서 끝나고[從體起用] 공양을 마치고 정화해야하기 때문에 왼손으로 돌립니다.
발우를 씻은 천숫물을 거두어 드릴 때는 맨 끝 하판인 탁자 밑 사미승에서 시작하여 어간의 큰스님에서 끝납 예절과 법도 그리고 사찰의 건물 및 조형물의 의미를 니다.[攝用歸體]] 알고 참배를 하면 신심이 더욱 돈독할 것입니다. 이외 대웅전 참배가 끝나고 촛불을 끈 다음 나올 때도 들 에도 불자들이 알아야 할 부처님 상호 및 수인, 법구(法具) 및 벽화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또 내가 참배하고자 하는 그 사찰의 창건설화 및 전설 그리고 그 사찰이 가지고 있는 국보나 보물을 알고 가면 더욱 알찬 참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