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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대지진을 보며 우리자신을 돌아본다

공종원
언론인


아이티가 대지진으로 크나큰 환란에 쌓였다. 새해 들어서 세계의 뉴스는 온통 아이티 사태로 매일 범벅을 하다시피 한다. 20만 명 가까운 인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부상하고 또 수백만 아이티인이 집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며 유리걸식하게 되었으니, 세계인이 무관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해 경인년은 백호의 해라고 해서 만만치 않은 재난과 역사의 격동이 예고되고 있던 참이었다. 60년 전 1950년 경인년 범의 해에는 6·25전란이 발발하여 수백만 인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만 인명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방황해야하는 대참화도 있었으니, 우리네 국민들의 마음이 뒤숭숭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음력으로는 아직 경인년이 아니고 기축년이니 그건 기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경인년을 바로 코앞에 둔 시점의 아이티 대지진은 온 국민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우리 국민가운데도 6·25 전쟁을 겪은 나이 든 이들은 아이티 지진 현장의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화면을 통해 보면서 특별한 느낌을 가졌을 것 같다. 산산이 부서져 내린 건물들과 난민들로 넘쳐나는 거리에서 가족을 잃고, 쉴 곳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티 인들의 참담한 모습은 결코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을 호소하며 하늘만 쳐다보는 아이티 어린이들의 퀭한 눈에서 자신의 어린 날을 기억해내는 이들도 적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우리 인류에게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같은 인류로서 아이티인의 고통을 동정하는 세계인의 마음은 거의 일치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선지 세계 각국에선 적지 않은 인원과 물자를 투입하고 지원하여 아이티를 돕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십 명의 인명 구조대를 파견한데 이어 다시 상당한 인원을 파견하고
적지 않은 지원금도 보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외국의 구조대가 건물의 잔해를 들추고 거기에 깔려 생명을 부지하고 있던 이들을 구출하는 모
습은 정말 감동적이다. 어떤 아이티 어머니는 구조대원들이 자식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의 노력을 했으나 끝내 생명은 구해내지 못하고 시체를 꺼내자, ‘그래도 당신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으며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노력처럼 숭고한 것은 없으며 그것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을 때라도 그것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가슴을 친다.


이런 사태에서 더욱 참담한 것은 구호물자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뛰고 달리며 혹은 남의 것을 빼앗는 아이티 인들의 모습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먹을 것을 확보하고 지원물자를 남보다 먼저 얻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란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몫으로 삼으려는 탐욕적인 인간상은 그대로 아비규환이고 지옥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아귀지옥의 모습에서 질서를 잡고 무도한 폭력을 규제하는 공권력의 존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먹고 살기위해 거리의 가게를 털고 남의 집 재산을 빼앗는 무법행태가 버젓이 횡행하는 사태는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지만,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엄연히 정부가 있고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 등 공무원들이 있는 나라가 지진 한 번에 사회질서가 파괴되고 공권력이 와해되어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질서를 유지하고 공권력의 회복을 도와준 것은 유엔과 미국 등 외국군의 힘이었다. 공황을 통제하는 것은 아이티 군이 아니라 미군들이고 항구의 기능을 회복하게 만든 것 또한 미국등 외국군의 힘이 있어 가능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질서가 잡히고 며칠간의 혼란을 거쳐 관공서와 은행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회사와 가게의 기능이 회복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떤 이는 우리나라가 저런 재난을 입을 경우 과연 제대로 공권력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나라의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 지를 걱정한다. 힘이 없었고 대비가 없었던 60년 전 우리나라가 탱크와 미그기를 앞세운 북한군의 남침에 속수무책으로 패퇴일로를 걸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다시 아이티와 같은 참상을 되풀이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재난과 6?25와 같은 전쟁의 공포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그리고 이념적 갈등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소통과 화합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아이티 지진이 몰고 온 아이티의 대혼란을 보며 우리는 그들이 무슨 업보로 그같은 고난을 겪어야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재해마저도 인과응보로 겪는 것이라면 그들의 책임을 질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 고통을 호소할 때 우리는 당연히 자비의 손길을 뻗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고통에서 헤쳐 나와 새로 활기찬 삶을 구가할 수 있도록 당연히 도와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우리 국민들의 무지와 악업의 보상 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악인악과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지혜와 자비의 대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혼탁상이 탐욕과 분노와 무지에서 나온 업보라면 이제야말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성을 회복하여 무지를 극복하는 참 용기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