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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이진영
시인 


모든 길에는 삼투성이 있다. 인간의 삶을 삶속으로 끓어 당기는 힘이다. 태초부터 인간들이 길로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슬퍼도 길로 나서고, 기뻐도 길로 나서고, 아파도 길로 나서고, 힘들어도 길로 나서고, 괴로워도 길로 나서고, 즐거워도 길로 나섰다.


사람들이 그렇게 길을 찾아 길로 나선 것은 길속에 길이 있기 때문이었다. 길 위에 도(道)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을 도(道)라 함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이 바른 길이었을 때를 정도(正道)라 하고, 삿된 길이었을 때를 사도(邪道)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빈부와 귀천에 관계없이 길을 크게 취한 사람은 큰 사람이 되고, 작게 취한 사람은 작은 사람이 되었다. 예수와 석가와 공자처럼 자신의 길을 제대로 취한 사람은 성자가 되고, 히틀러와 뭇솔리니와 스탈린처럼 그르게 취한 사람은 인류의 적이 됐다.


인간의 삶 또한 길에서 명멸한다. 때로는 반딧불이로 명멸하기도 하고, 때로는 호롱불로 명멸하기도 하고, 더러는 전깃불로 명멸하기도 한다. 명멸하는 그 불빛이 맑고 밝을수록 인간의 삶은 길 안쪽으로 흐르고, 희미하고 어두울수록 길 바깥으로 흐른다. 그리하여 길 바깥으로 흐른 삶은 무겁고 힘겹게 가라앉는다. 회색빛으로 퇴락한다.


길은 또 땅 위로만 흐르지 않는다. 길은 강 속으로도 흐르고, 바다 속으로도 흐르고, 하늘 속으로도 흐른다. 그리하여 강으로 흐른 길은 강길이 되고, 바다 속으로 흐른 길은 바다길이 되고, 하늘로 흐른 길은 하늘길이 된다. 길은 또 사람의 마음속으로도 흐른다. 사람들은 이름 하여 그 길을 깨달음이라 했다. 그리하여 그 마음길을 그냥 마음길이라 하지 않고 도(道)라 한 것은 인간의 마음길이 길 가운데 가장 으뜸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길은 흐름의 속성을 갖고 있다. 인간의 몸속에 피가 돌지 않으면 죽게 되듯, 세상의 모든 길도 흐름이 멈추면 동맥경화에 걸려 죽는다. 인간들이 끊임없이 마음길을 닦고, 물길을 닦고, 도로를 닦고, 하늘길을 닦는 것은 길의 생명이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길의 피톨들이 정상적으로 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그 길을 억지로 틀어막기 시작했다. 마음길을 틀어막고, 물길을 틀어막고, 하늘길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흐르지 못한 물길이 썩게 만들고, 맑고 티 없는 창공의 하늘길을 핵폭탄으로 막아놓았다.


막힌 그 길들 때문에 우리나라도 전반적으로 야단이다. 남과 북의 하늘길이 숨통 막히듯 꽉 막혀 있는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고, 이즈음 들어서는 세종시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 4대강 살리기 사업 역시 길이 꽉 막혀 동맥경화에 걸리기 직전이다.


우리나라에 길의 동맥이 끊기고 피의 흐름이 멈춘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의 동맥이 막혀 빈사상태에 빠질 때마다 우리 민족은 슬기롭게 그 길의 숨통을 터 주었다. 생명을 불어넣고 젖을 먹여 평화롭게 흘러가도록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금세기 들어 그 길들이 자주 막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사람들의 길을 꽉꽉 틀어막으려 한다. 억누르려 한다. 경화의 보를 더 높고 견고하게 쌓으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한강에는 한강만의 길이 있고, 낙동강에는 낙동강만의 길이 있고, 영산강에는 영산강만의 길이 있고, 금강에는 금강만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의 고유성과 생명성을 시멘트로 파묻어버리고 새로운 물길을 만들려고 한다.


허나 길이 길이 된 것은 억지로 된 것이 아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도 아니다.


길이 길이 된 것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대 요소는 물론, 이름 없는 풀벌레와 잡초와 물고기와 뭇 생명들의 마음자리가 합쳐져 길이 된 것이다. 마음길이 합쳐져 세상 안쪽의 길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만든 뭇 생명들의 허락도 없이 세상 바깥쪽의 힘들이 모든 힘을 동원해 인공적으로 길을 뜯어고치고 길의 흐름을 바꾼다고 하니, 4대강 유역의 백사장과 버드나무와 노루와 고라니와 붕어와 피라미와 쏘가리들이 불자(佛子)들과 힘을 합쳐 시위에 나선 것이다.


“제발 우리를 이렇게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두세요.”


“우리 낙동강에는 500년 넘게 큰 사고 없이 흘러온 낙동강만의 강길이 있습니다. 강과 강의 자손들이 생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제발 좀 가만히 놓아주세요.”


“우리의 물길을 막으려 하지 말고 하구언에 있는 시멘트 둑이나 툭 터주세요. 그 순간 우리 영산강의 물길은 깨끗이 되살아나니까요. 제발 우리 몸뚱어리만은 건들지 말아주세요.”


이런 비통과 탄식은 영산강과 낙동강뿐만 아니라 한강과 금강에서도 튀어나온다. 길을 길로 놓아두지 않고 길에 치장을 가하고 시멘트를 부어넣으려는 사람들에게 가엾은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강들의 울분을 달래주기 위해 지난 1월 불자(佛子)들이 그 길 위로 나섰다. 불교환경연대(상임대표 수경스님)를 중심으로 지율스님, 우희중 서울대 교수 등 수많은 불자들이 낙동강 강길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 순례의 길을 떠났다.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를 4대강의 강길과 순결을 지켜내기 위해 이들은 눈보라와 칼바람이 몰아치는 북풍을 뚫고 용감하게 길 위의 길에 선 것이다.


강의 숨길을 막는 4대강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이들의 첫 길 떠남은 지난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4대강 사업을 끝내 막아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낙동강과 한강과 영산강과 금강은 영원히 기억하리라. 2010년 경인년 새해 벽두에 자신들의 길을 지켜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의 안쪽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뎌주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 발길을 새로 만들어진 길이 화석으로 기억할지라도 자연사 박물관처럼 언젠가는 생명을 얻어 예전의 그 강길로 흐르리라는 것을.


강의 추운 쪽으로 부는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나도 다음 달에는 모포 한 점 들쳐 메고 4대강 순례길에 올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