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보다 더 불자 같은 푸른 눈의 신부 서명원
유철주
조계종 기획실 홍보팀 주임 
서명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뭔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가 성철스님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알게 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절이 가까운 마을에서 자랐고 종립대학을 졸업했지만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불교를 거의(사실 ‘전혀’에 가깝다) 몰랐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선배로부터 받은 책 <성철스님 시봉일기>를 통해서 성철스님을 알고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기 때문에, 서명원 신부를 만날 때마다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지난해 말 서명원 신부를 다시 만났다. 서 신부가 불교인재원과 조계종 종무원조합 원우회가 공동 주최한 ‘나의 화두참선 입문기’ 특강을 하러 왔기 때문이다. 역시 구면인 듯 친근했다. 서명원 신부는 조금 어색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듣기는 편안한지를 계속 확인하는 것에서 본인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서 신부의 모습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국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불교
캐나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의대를 나왔던 서 신부는 1979년 예수회에 입회하면서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4년 예수회 한국지회에 파견되면서 처음 한국에 왔다. 7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여러 곳을 둘러봤다. 한국이 맘에 들어 이듬해 다시 한국에 왔고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불교와의 범상치 않은 인연을 직감했다.
“1985년 한국에 다시 왔을 때 가톨릭만 알고 있었고, 가톨릭을 한국에 알리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문화와 종교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특히 불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낯선 세계의 낯선 종교를 접하고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먼저 인도로 향했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인도의 부처님 성지를 둘러봐야 한다는 지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불교 수행을 경험하고 싶은 서 신부의 의지도 물론 작용했다. 부처님 성지를 돌아보며 체험한 위빠사나는 가톨릭에서 맛본 적 없는 완전 ‘신세계’였다.
 
성철스님을 만나다
프랑스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공부하던 중 서 신부는 성철스님을 알게 됐다.
“90년대 초반에는 한국 불교를 알 수 있는 영어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어 능력도 많이 부족해 영어로 된 불교책을 보다가 로버트 버스웰 교수의 <눈 푸른 납자>(The Zen Monastic Experience)를 읽고 성철스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철스님을 통해 한국불교를 공부하게 된 것이 잘못된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서 신부는 2004년 파리7대학에서 ‘성철스님의 전서 및 생애’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서 신부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성철스님을 만났고 많은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간화선, 끝까지 같이 가야하는 것”
1995년부터 서강대 박영재 교수가 이끄는 선도회에 입문하면서 “한국불교 고유의 수행법이 간화선이라는 것을 알고 화두 참구를 시작했다”는 서 신부는 10여 년 만에 종달 이희익 법사를 이어 지도법사로 활동 중인 박교수로부터 ‘천달(天達)’이라는 법호를 받고 2007년부터는 학생들과 재가자들에게 간화선을 지도하고 있다. 천달은 하느님을 의미하는 천(天)과 종달 이희익 법사의 호에 있는 달(達)을 합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을 호흡법에서부터 시작했다. 호흡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화두에 집중한다. 화두참구가 잘 안되면 다시 호흡법으로 돌아와 수행을 이어갔고, 무자화두를 들고 수행을 거듭했다. 물론 화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낯설고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서 신부는 “간화선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사람에 따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잘 맞는다. 맑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끝까지 가야하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한다.
서 신부는 특히 “간화선을 통해 나의 뿌리인 영성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며, 또 뿌리가 깊어질수록 불교와 더 친해지는 것 같다”며 “언어화 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간화선 수행은 한국 사람들의 특징인 ‘빨리빨리’ 식이 아니라 꾸준히 오래, 긴 안목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 서 신부는 나름의 간화선 수행 방법을 일러줬다. 간화선 수행이 나의 길이라는 확고한 신심이 있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도반들과 함께 정진을 해야 하며, 특히 스승을 찾아 입실을 함으로써 반드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점검이 없는 수행은 ‘엉뚱한 곳으로 직행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빠른 깨달음이라도 ‘생활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깨달은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깨달음의 생활화를 강조한 서명원 신부는 “무조건적으로 남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 깨달음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루 5분이라도 앉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 서명원 신부는 선어록인 <무문관>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프랑스인들에게도 간화선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간화선 수행을 하면서 “출가를 고민한 적도 있다”고 밝힌 서명원 신부를 보면서, <금강경> 한 구절에 마음이 열려 오조홍인을 찾아가 “출신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성(佛性)에는 남북이 없다”고 ‘맞짱’을 뜬 육조혜능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