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연
시인
새로움의 기준이 있을까. 섣달 그믐달 지던 날 정월 초하루 해가 뜨고, 겨울의 끝자락에 늘 봄향기가 달려 있건만 어디에서 새로움의 기준을 찾아 맞추어 갈 것은 아니다 싶다. 그럼에도 마음은 새로운 햇살을 받고 싶고, 이왕이면 더 지혜롭게 삶을 빚고 싶을 때가 있다. 칠일 용맹정진까진 아니어도 단 몇 분이라도 호흡과 호흡사이에 정갈한 기운 하나 스미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찾아간 곳이 합천 가야산 해인사이다.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중생들이 가슴 닳도록 찾는 법도량이며, 대가야의 왕족 출신 순응 화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라 왕실의 후원으로 창건된 대사찰이다.
가야산은 봄을 오려 가진 듯 언제나 넉넉한 품새로 포근함을 준다. 이상기온 현상으로 춥지 않은 겨울이건만 긴 겨울이 좀 지루할 때 그 품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어 본다. 가야산이 품고 있는 해인사 소리길 곳곳에는 사철 소소한 듯 소소하지 않은 단정함을 주는 산죽이 눈높이에서 가슴으로 푸름을 준다. 그 기운으로 일주문으로 향하면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6.25 전쟁 때 가야산 공비 토벌소탕 작전으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어긴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가 비장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그 거룩한 뜻에 마음 다듬으며 다시 발걸음을 이으면 애장왕이 해인사 창건 기념으로 심은 나무가 세월의 눈맞춤을 끝내고 법어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눈 뜨고 왔는가
가슴 열고 왔는가
그렇다면 그냥 돌아가도 되네
이미 그대의 맘결은 접수되었으니
입 닫고 왔는가
귀 닫고 왔는가
그렇다면 꿈처럼 잠시만 쉬어가게
풀어야 할 그대의 인연은 알겠으니
사랑을 들고 왔는가
물음을 들고 왔는가
그렇다면 그만큼만 놓아두고 버려두게
나라도 그대 되어 회향하면 안되겠나
                        -‘고사목의 묵언법문 중에서’-
 
햇살을 쭈욱 빨아들인 새들이 지저귀며 길을 여는데 법문 아닌 소리가 있겠는가마는 유독 고사목의 그 묵묵함이 법문처럼 깊게 들린다. ‘해인海印’은 ‘진실한 세계’란 의미로 그곳에는 국보 제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팔만대장경이라는 불교의 오롯한 진리의 심장이 있다. 그 심장을 뒤져보는 것이 죄가 되겠는가, 복이 되겠는가, 그런 경계의 구별도 없는 마음 하나로 의심 없이 들어갔다. 어리석음에 굳어진 습관처럼 한참 짊어지고 온 세속의 번다함- 이제라도 그 두꺼운 미련의 껍질 하나 벗어 볼 지혜 하나 얻는데 무엇을 계산하고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구별하고 무엇을 속일 것인가. 그럴듯한 변명에 가려 진실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길이 안개에 휘감긴 채 그 방향마저 모호한 시대에서 오로지 마음속 깊이 숨겨 둔 화두를 진리의 심장에 담가 보는 용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진리의 심장에 담갔던 화두로 봄결 산빛처럼 스며드는 사랑을 담아 인생 걸림걸림에 절망과 좌절이 돋을 때마다 빛 푸르게 살아보겠다 고백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더러는 비켜갈 수 없는 한계와 마주할 때 진리의 심장을 의지하는 삶의 의미일 것이라 여겨 본다.
대웅전이 있는 도량 중심부에 구광루九光樓가 있다. 장경각전 연화문을 형상화하여 만든 창가에 햇살들이 조각품처럼 들어선다. 북 카페 겸 갤러리로 대중들의 마음 쉼터가 된 ‘다로경권실’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나 표정에서 여여함이 보인다. 혹시 이 자리가 단순히 차를 마시며 쉬는 자리가 아니라 ‘진리의 심장부’를 찾는 이들에게 진심의 심장을 찾는 방법, 혹은 진심으로 들어가는 지혜의 심장을 던져주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하며 차를 주문해 본다.
멋진 인연과 도량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삶의 가장 깊은 곳을 온전히 집중해 보려는 마음 때문인지 해인사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셔 보라는 지인의 말을 잊고 귀한 침향차를 주문했다. ‘침향’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차다. 마음에 잔잔함을 주고, 머리에 고요함을 주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나를 위로하게 하는 효험이 있다는 차다. 차로 마시는 대중적인 약재로 알려지진 않았기에 더 귀한 차라는 생각이 든다. 따뜻함이 부드럽게 들어가는 순간 청량감이 속을 다스려 준다.    
봄에만 창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도 창을 열고 새로운 공기를 맞이해야 한다. 새해에만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끄달리는 수동적 행동에 체면을 생각해서 하는 다짐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된 불심佛心이 현재 어떤 무늬를 찍어나가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것을 향해 나가야할 것인지도 살피며 우담바라를 피울 수 있는 다짐이 중요하다.
그윽한 침향차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육감을 자극하는 순간, 문자반야의 선지식이라 불리는 『해인』지가 테이블에 놓인 것이 보였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이 있는 선림禪林이자 법보도량인만큼 『해인』지는 그 어느 사찰 사보보다 훨씬 포교사 역할을 뛰어나게 한다. 『해인』지에서 소탈하면서도 환하게 웃으시며 소통하며 화합하는 한 해가 되어 보자고 말씀하시는 방장 큰스님에게서 낮추어 높아지는 마음자세를 배운다.
시간에 굴림을 당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굴려야겠다는 해인총림 원각대종사의 말씀에 봄이 이미 우주의 심장에서 활동을 시작한 듯하다. 더불어 새로운 봄기운이 회색빛 속에 누워 있던 당우들을 깨우는 듯하다.
겨울 가야산은 경을 읊는다
마음 눈 녹이고 가슴에 연화를 피우며
사는 뜻이 부처고 부처가 사는 길이라
경을 읊으며 법열에 잠든다
법보를 품은 해인사는 봄을 세운다
경을 읽는 가야산이 기지개를 펼 때마다
봉황문 들어서는 이들 가슴에 봄결이 스미니
구름조차 봄을 품고 떠돈다
-‘가야산 해인사 도량을 돌아보다’ 중에서-
역시, 산사는 분주함을 접게 하는 묘법이 있다. 도량을 두어 바퀴 도는 동안 이제는 고립감에 갇힌 듯한 한계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사랑과 가치 있는 시간을 갖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묘법 덕에 불자들은 물론 비 불자들까지도 그 산사의 묘법을 음미할 수 있는 장소로 산사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