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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을 위한 포교 활동하며 진행했던 법문 모음집

텐진 빠모의 서양인을 위한 불교 강의


‘서양인’을 위한 포교 활동하며 진행했던 법문 모음집


박경희
중도기획 디자인실장


『서양인을 위한 불교 강의』
텐진 빠모 지음 / 김윤종 번역
148×225 / 472쪽
25,000원
불광출판사 펴냄


 


티베트불교의 ‘역사’가 된 영국 출신 비구니 텐진 빠모


매년 연말이면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여성 100인’을 선정한다. 지난해(2023년)에는 전 미국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를 비롯해 성별 임금 격차 연구로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등이 꼽혔다. 그런데 100인 중 유일하게 종교인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텐진 빠모다.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영국에서 태어난 다이안 패리(Diane Perry, 텐진 빠모의 출가 전 이름)는 열여덟 살에 처음 불교를 접하고 스무 살이 되던 1963년 인도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스승을 만난 그녀는 1964년 사미니계를 받고 텐진 빠모라는 법명을 받았다. 마침내 1973년에는 비구니계를 받으며 ‘서양인 여성 최초 티베트불교 비구니’라는 호칭을 얻었다. 불교국가 대부분에서 그렇듯이 비구(남성) 중심의 불교 교단에서 텐진 빠모는 ‘여성’과 ‘서양인’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특이한 이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76년 그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 라훌의 외떨어진 작은 동굴에서 ‘집중 수행’에 들어간다. 집중 수행은 1988년까지 12년간 이어졌고, 마지막 3년은 아예 외출조차 삼가고 폐문 수행을 했다. 히말라야의 추위와 눈보라는 물론, 한 사람이 눕기에도 좁은 동굴에서 고독과 싸워야 했으며, 수행의 진전이 느릴 때는 낙담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걸음 발을 내딛게 된다. ‘여성’과 ‘서양인’이라는 경계는 물론 ‘수행’의 경계까지 넘어 마침내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티베트불교에서 여성의 지위는 물론 서구에 불교의 씨앗을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BBC에서의 선정 의도대로 ‘영향력’과 ‘영감’ 모두를 갖췄던 것이다. 2008년에는 제12대 걀왕 드룩빠(Gyalwang Drukpa)로부터 ‘깨달음’을 인정받으며 제쭌마(Jetsunma, 위대한 스승)라는 호칭도 얻었다.
이 책은 그녀가 1988년 동굴에서 나와 2000년 인도의 히말라야에 비구니 수행처인 동규가찰링(Dongyu Gatsal Ling) 사원을 만들어 주석하기 전까지 유럽과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 등 ‘서양인’을 위한 포교 활동하며 진행했던 법문 중 1996년과 1997년 미국, 그리고 1998년 호주에서 진행되었던 강의들을 편집한 것이다.


어떻게 명상을 ‘일상’과 접목할 것인가


‘강의’는 인도 히말라야에서 12년의 수행을 포함해 30년 넘는 텐진 빠모의 수행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딜 가나 법상 밑에 앉은 서양인 청중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녀가 강연의 대강으로 삼은 것은 △왜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일상’과 접목할 것인가였다.
현대인, 특히 서구인들은 왜 명상에 열광을 할까? 거개는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불안과 초조를 진정시키려는 이유다. 물론 이게 명상을 배우는 동기로서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조금만 명상에 취미를 붙여도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텐진 빠모는 한 걸음 더 나가, 아니 궁극적으로 명상의 목적은 자기 내면을 바라보고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 그리고 마음이 진정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라고 명토박아 말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그 기능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내어, 세속을 뛰어넘는 의식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잠시 돌로 풀을 눌러 놓기보다는 김매는 것처럼 풀을 뽑아버려야 불안이나 초조 같은 싹을 없앨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제 불교를 막 배운 일반인들에게 출가한 수행자처럼 종일 좌복을 깔고 앉아 있으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업에 20~30분, 그리고 내면을 관찰하는 30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명상의 방법에 대해서도 텐진 빠모는 ‘불교 백화점’이라는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수행자답게 다양한 길을 제시한다. 사마타나 위빠사나 같은, 테라와다불교의 전유물로 알려진 수행법에 대해서도 총 열네 장의 분량 중에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하고, 티베트불교 수행 중에 일반인도 충분히 해볼 만한 통렌(Tonglen)이나 시각화 명상에도 각각 한 장씩 할애해 소개하고 있다. 중간중간에는 선(禪)불교 수행이나 선사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왜 명상을 하고, 어떻게 명상하는지 잘 알고 체화했다고 해도 이것을 일상과 접목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꽤 많은 사람이 명상하는 동안에는 행복과 평화, 때때로는 불이(不二)의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명상에서 깨어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텐진 빠모가 수행과 일상의 조화에서 열쇳말로 꼽는 것은 바로 ‘화’다. 욕망이나 집착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수행이지만 현대인들, 특히 서양인들에게는 거부감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강의 분량만큼 많은 문답들로 구성되어 있다. 청중은 솔직한 질문을 하고 텐진 빠모는 답변을 한다. 실은 독자가 궁금했던 내용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는 단지 학문적인 호기심에만 머물거나 우리 일상의 상황에 적용하기에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 아닌, 실제 유용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최대한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대부분 일상적인 용어를 쓰고, 평균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자가 하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애썼다.


20년 만에 완역판으로 만나는 텐진 빠모의 대표작


이 책은 텐진 빠모의 대표작으로, 2002년 미국에서 발매돼 여전히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2004년 『마음 공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한 차례 출간된 적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총 14장 중 두 개의 장(13장과 14장)은 아예 번역되지 않았으며, 번역된 장 중에서도 본문과 묻고 답하기 부분이 대거 삭제된 채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번역 출간은 2023년 미국에서 재발간된 판본을 기준으로 누락된 장과 문장이 없이 모두 번역됐으며 첫 출간 당시 정착되지 않았던 티베트불교 용어와 발음도 모두 바로 잡았다.
여전히 이 책의 재출간을 학수고대하던 기존의 독자는 물론 불교 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독서의 기회 그리고 발심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