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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로 변질된 로스쿨


동국대 결국 탈락...   불교계 허탈
정원확대 등 추후일정도 산 너머 산

1995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제도 도입을 논의한지 13년 만에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선정이 우여곡절 속에 지난 2월 4일 발표됐다.
교육부에서는 서울 권역 15개 대학, 지방권역 10개 대학 등 총 25개 대학을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으로 선정했다. 총 정원은 2,000명으로 서울 권역에 1,140명, 지방 권역 860명을 배분했다.
예비인가 선정을 받은 대학들은 3월부터 입학전형 세부계획을 발표하고 교육과정, 교과목 개발, 교원임용 및 시설완비 등 로스쿨 개원준비에 나서게 된다. 이들 대학들은 법학전문도서관, 모의법정, 세미나실, 정보통신시설 등의 교육시설을 구비하고 법조윤리 및 법률정보 조사, 법문서 작성, 모의재판, 실습과정을 포함한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각 대학은 법학과(부) 및 관련 특수대학원 폐지, 교원확보 등 예비인가 시 제출한 이행계획을 오는 9월 발표될 최종인가 때까지 이행해야 된다.

로스쿨이 예정대로 시행되어도 2013년까지는 현행 사법시험은 유지된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으로 인해 사법시험을 통한 판·검사 임용 시스템은 사라지므로 정부에서는 새로운 판·검사 임용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법무부에서는 새로운 판·검사 임용방법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는데 지금까지는 미국처럼 변호사 자격증 소유자 중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선발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순암기 시험으로 전락한 사법고시 제도를 철폐하고 급변하는 사회와 시대에 맞는 경쟁력 있는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한 로스쿨 제도 도입이 이번 예비인가 대학 선정으로 우리 앞에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009년 개원을 목표로 한 로스쿨 일정이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이번 예비인가 선정 대학 발표는 로스쿨 제도 도입의 근본취지에 어긋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국대, 단국대, 조선대 등 예비인가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대학들은 이번 예비인가 대학 선정에 대해 △입학정원 한정 △불필요한 수도권과 지방 인원 배정 △정원배정 편차 등의 문제점을 들어 참여정부 스스로 자찬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희생양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예비인가 대학 선정과정에서 교육부와 청와대의 갈등도 경상대의 로스쿨 선정문제였다. 예비인가 대학 선정을 놓고 청와대와 교육부과 첨예한 대립을 빚자 한 법학교육위원은“청와대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1광역시·도, 1로스쿨 원칙을 주장해 혼선이 빚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주무부서인 교육부와 최종 결재자인 청와대의 입장도 통일되지 않은 채 로스쿨 일정에 급급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학들을 우선적으 로 선정한 꼴이 된 것이다.

현재 로스쿨 도입과 관련해 가장 큰 쟁점은 총 정원 확대다. 탈락 대학들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 로스쿨 문제를 총 정원 확대를 통해 해결할 것으로 믿고 있다. 로스쿨 총 정원 확대가 없는 한 탈락 대학들은 9월에 있을 최종인가를 위해 전력투구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락 대학들의 기대와 달리 총 정원 확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 정원 확대는 예비인가 대학 선정 때와 같이 법조계, 변협과의 합의, 국회 사전보고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총 정원 확대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국회의원 대다수도 기성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에 총 정원 확대는 현실상 새 정부의 강력한 추진의사가 없는 한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남 이야기 같던 로스쿨 문제가 불교계를 강타한 것은 불교계 유일 종립대학인 동국대의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 선정 탈락이다. 서울권역에서 선정된 15개 대학에 포함되지 않은 동국대는 선정과정에서 16위를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선정 결과 발표 한 달 전만 해도 동국대는 선정이 확실한 8위권에 있었다고 동국대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 달 만에 8계단을 하락해 선정에서 탈락한 것이다. 어떤 이유였을까?

동국대의 예비인가 대학 선정 탈락은 무엇보다도 참여정부가 로스쿨 인가와 관련이 없는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이번 결정에 주된 잣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불교계 단체들이 동국대 탈락을 종교적 역 차별을 가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이번 로스쿨 예비인가 선정대학에는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경희대, 성균관대, 원광대 등 타 종교 소유 대학들은 무난히 선정됐지만 유독 불교계의 유일 종립대학인 동국대를 탈락시켰다. 동국대 관계자는“객관적 기준으로 볼 때 동국대가 타 종교 소유 대학 들과 뒤질 것이 없다”며“동국대 탈락은 누가 봐도 종교적 차별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로스쿨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법학교육위원회 구성을 봐도 불교계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원회 위원장은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이고, 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들도 남인순 한국여성단체 연합회 공동대표, 신종원 서울 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등 타 종교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들 위원들은‘재수’가 허용되지 않는 로스쿨 인가를 위해 학교의 명운을 걸고 로비를 펼친 각 대학들의 치열한 로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 선정은 객관적 기준보다 정치적, 주관적 기준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동국대는 로스쿨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봐야하나? 불행하게도 동국대의 로스쿨 준비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음이 이번 예비인가 선정 시 들어났다.
동국대가 로스쿨 준비에 박차를 가한 것은 지난해 7월 로스쿨 법안이 국회를 통과되고 난 후 였다. 하지만 타 대학들은 국회통과를 기정사실로 판단하고 그전부터 법조계와 전국 대학교수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통해 우수 인력을 확보한 뒤 가세했기 때문에 동국대의 교수인력 확보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0월까지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인력은 18명. 이는 로스쿨 개설 조건인 최소 20명의 교원확보에도 미치지 못한 숫자였다. 당시 로스쿨을 준비하던 서울 지역 대학들의 교수인력은 이미 20명을 넘어섰고, 동국대와 함께 예비인가에서 탈락한 국민대. 숭실대, 명지대도 25명의 교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동국대 법대 관계자는“당시 동국대는 신정아 사건으로 인해 학교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면서“타 대학들이 교수 면접 후 3일 이내 교수 임명을 한 것과 달리 우리 학교는 교수면접 후 한 달이 넘도록 채용확정이 되지 않아 동국대에 오려했던 많은 인재들이 타 대학으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동국대의 로스쿨 탈락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력의 한계라고 봐야할 것 같다. 동국대에서는 로스쿨 선정을 위해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를 총장 으로 초빙했다. 물론 총장 혼자만의 힘으로 로스쿨 선
정이 될 순 없다. 하지만 동국대는 타 대학들이 국회, 행정부, 관련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치열한 로비활
동을 펼치고 있을 때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23살 먹은 판사가 이혼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균관대 손동현 철학과 교수의 말처럼 단순 암기식 시험인 사법고시를 없애고 교양과 상식이 풍부한 법조인을 배출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는 법조인 양성을 위해 도입한 로스쿨 제도. 조선시대로 비유하자면 과거제도의 철폐와 같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 시험폐지로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통한 우수 법조인 배출이라는 취지와 달리 예비인가 대학 선정부터 논란과 마찰이 끝이지 않고 있어 로스쿨 도입이 제대로 될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시대적, 사회적 흐름은 대학들에게 전문 인력을 양성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로스쿨 도입은 이러한 흐름에 대학들이 동참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전시행정만을 일삼는 정부가 깨어나지 않는 이상 로스쿨은 기본 취지와 달리 변질될 위험성이 아주 높습니다.”

내년 3월에 정식 개원을 앞둔 로스쿨 제도. 대학사회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 이 제도가 연착륙을 하기 위해선 대학 살리기, 지역 살리기가 아닌 100년을 내다보는 혜안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