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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싹은 서로의 아픔과 상처 공감하는 데서 피어나

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1.
간밤의 서설(瑞雪)에 길은 미끄럽고, 지각 출근길에 마음은 다급했던 지난 18일 아침의 일이다. 건널목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내게 누가 말을 걸었다. “저어~기,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돌아봤더니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가쁜 입김을 토해내며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되돌아본 내게 그가 덧붙인 말. “부탁을 드릴 게 있는데,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출근 시각에 꽤 늦은 터여서 경황이 없던 나로서는 그의 깍듯한 예의와 조심스러운 말투가 되레 불쾌해지려는 참이었다. 이어진 그의 말. “팔이 너무 아파서요. 택시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선뜻 지갑을 꺼내 들자 자신의 사정과 행선지를 부연할 태세를 갖추던 남자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천원 권 한 장과 만원 권 서너 장 들어있는 지갑 안을 들여다보고는 난감해졌다. 택시비를 구하는 이에게 천원만 달랑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머뭇거리면 서로 난처해질 테고, 신호등은 파란 불 막대 기가 서너 칸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만원 권 한 장을 건넸고, 돈을 받는 그의 표정도 살 피지 못한 채 길을 건너야 했다. 그리고 지하철 역사를 향해 걸어가는 내내 나는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렀고, 불편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내게 만원은‘맥락 없이’사라져도 좋을 만큼 작은 돈이 아니다.



#2.
2월 14일 설 아침 나는 서울 도심의 야트막한 산을 찾았다. 등산은 핑계였고, 절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를 여쭈자는 게 목적이었다. 40년 남짓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가 준 것보다 늘 더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았고, 나를 고마워할 사람보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과 훨씬 많은 인연을 맺어왔다. 나에게 베푼 이들 중에는 인사를 챙기려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내 기억력이 미치지 않는 인연 속에는 그런 고마운 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나들이 길에 마음이 끌리는 절 집을 만나면 으레 법당에 들러 삼배 올리고 불전함에 다가서려고 나름 마음 써온 것도, 그러니까 내게 베푼 그이들에 대한 포괄적 감사의 인사를 차리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이 알면 많이 섭섭해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면서 내심 부처님을 내 작은 마음의 메신저로 부려온 셈이다.


불전함에 시주를할때내형편을 따져 마음으로 정해둔금액은 5,000원이다. 1,000원짜리 를 넣자니 너무 던적스럽고, 몇 장 포개려니 그것도 구차해 보이고, 그렇다고 1만원은 얕은 신 심과 헐거운 지갑에 견줘 다소 주제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살림이 넉넉한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5,000원도 알량해 보일지 모르지만,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도 하셨으니 부처님이 시줏돈의 부피로 신심과 정성의 부피를 재지는 않으시리라는 믿음의 배짱도 없지는 않았을 것 이다. 하지만 그 날 아침에도 내 지갑에는 5,000원권 지폐가 한 장도 없었다. 부득이 만원을 넣고 뒷걸음질로 법당을 물러나오며 속으로 나는“부처님 선불 냈으니 다음엔 빈 손으로 오겠
습니다. 단골 신용거래, 아시죠?”라며 다짐을 드렸고, 부처님은 처음처럼 빙긋이 웃어주셨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지는 않다.


#3.
지하철 안에서도 휠체 어 남자와의‘사건’은 뇌리를 떠나지 않 고 나를 상념으로 괴롭혔다. 그 까닭이 지 출한 돈의 과다(寡多)나 나의‘쪼잔함’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전부도 아니 었다. 정작 나를 심란하게 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휠체어 남자는 장애인이 아니 었을 수도 있다. 여느 하반신 장애인과 달 리 휠체어 위에 얹힌 그의 허벅지는 실했 다. 또 곧 나을 부상을 당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요컨대 그의 진실은 장애 인도, 부상자도 아닌 지능적인 상습‘앵벌 이꾼’일지 모른다는 것이고, 그 경우 세상 은 나를 어수룩한 촌놈쯤으로 분류하기 십상일 것이다. 나는 그 상념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진실은 다양한 층위를 지닌다. 휠체어 남자는 작은 돈을 위해 자신의 처지 를 호도했지만,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마도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그 순간에 그 같 은 연기(演技)를 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알지 못했고 내내 알아낼 수 없을 삶의 뿌리깊은 이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 이력은 하반신 장애보다 더 딱하고 절절한 사연에 뿌리를 대고 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인간 존재가 지닌 가장 깊은 층위의 진실을 꿰뚫어본 이는, 내가 설날 뵈었던 부처님일 것 이다.


#4.
경찰청장의 공식 사과로 사안 자체의 잡음은 다소 누그러진 듯하지만 경찰관의 경기 김포시 용화사 주지 지관스님의 폭행 사건이 남긴 앙금은 여전하다. 그 일이 경찰 해명처럼 술 취한 자의 우발적인 도발인지, 더 깊은 층위의 진실이 있는지는 당사자와 부처님만 아실 일이다. 하 지만 그 사건은 우발적인 일이었더라도, 현 정부 경향각처에서 요직을 차고 앉은 관료들이 저질러온 종교편향은 결코 우발적이지도, 취중의 실수도 아님은 자명하다. 지관 스님 피습사건의 파 장이 컸던 것도, 앙금이 여전한 것도 그 때문이고 스님이 정부의 4대강 사업 반대운동 진영에 서 중요한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 경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모든 차별은, 그 대상이 종교든 인종이든, 빈부든, 신분이든 바로잡아야 할 해 악이다. 모든 생명의 존엄을 하나의 무게로 치며 그 가치를 설파하셨던 대자대비의 부처님도 낯빛을 바꾸실 일이다. 지금이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도 아니고….


#5.
하지만 여론은 생각처럼 정부와 경찰 성토 일색만은 아니다. 이는 잠깐 인 터넷만 훑어봐도 금세 확인된다. 불교와 스님들에 대한 냉소, 속세 못지않은 탐리의 염증, 나 아가 종교 일반에 대한 걸러지지 않은 혐오의 표현들이 난무한다. 나는 그 글 모두 타 종교의 그릇된 맹신자들이 썼다고는 보지 않는다. 명분에 공감하는 나 역시도 현 정부의 종교편향과 이번 지관스님 사태에 대한 불교계의 성토 대열에 동참하라면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의심스럽 기때문이다.


현 정부가 불교를 편파적으로 냉대하고 괄시한 것은, 누구나 알듯, 대통령과 그의 권속들이 달리 추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한 이 종교 자유의 국가에서 가장 많은 신도수 를 자랑하는 불교마저 권력에 의해‘네 편’으로 떠밀리는 형국이라면, 달리 냉대받고 업신여 김 당하는 소수와 약자들은 오죽 많을까. 없어서 차별당하고, 약해서 외면당하면서도 항변이 나 사과는커녕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비통하고 서러울까. 근년의 한국 불교가, 또 조계종단이 그들이 겪는 차별에 이번처럼 결연하고도 기민하게 나서 권력에 맞선 예를 나는 듣지 못했다. 혹시 차별을 성토하는 불교와 불교도조차 내면에 내 편 네 편의 차별을 둔 것은 아니었을까. 종교 편향의 성토가 종교집단의 밥그릇 다툼일 뿐이라는 일부 네 티즌들의 비아냥을 우리는 과연‘부처님을 우러러한점부끄러움없이’논박할수있을까. 대 한불교 조계종은 불기 255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표어로‘소통과 화합으로 함께하는 세상’으 로 정했다. 소통의 싹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깊이 공감하는 데서 피어나는 것이다.


며칠 뒤면 정월 대보름이고, 나는 달맞이 핑계 삼아 또 어디 가까운 곳 부처님을 찾아가 인사 를 드릴 참이다. 그 자리에서 여쭤보려 한다. 차별의 진실 폭력의 진실은 더 깊은 곳에 있고 그 음험한 파장은 세상천지 샅샅이 집요하게 미치고 있는데, 종교 편향만 성토하고 스님 폭행만 시비 삼는 것이 과연 부처님 마음에는 흡족하신지…. 물론 이번에는 빈손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