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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자무명야業者無明也

현재호
연세대학교 의료공학 박사과정|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blog.daum.net/hyun-jaeho


수행의 요점은 무엇인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떨어지는 것일 뿐, 성인의 알음알이는 없느니라.… 《선가귀감 . 29》
내 몸에 모든 병이 없어지고, 약도 필요 없게 된다면, 앓기 전의 그 상태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약이 필요한 것은 몸에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에 병이 없다면 왜 약이 필요 하겠습니까? 몸에 병이 없으니 태초의 맑은 몸이겠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고자 함은 오염된
마음을 닦아 보자는 것입니다. 마음에 병이 있는 것은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마음의 병은 내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왜 습관이 우리를 오염시키는지, 그리고 그 습관이 ‘마魔’를 만들어 우리의 삶을 괴롭히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마魔’!
‘마’를 즐거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를 즐거이 받아들일 때, 행운이 찾아온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수행에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입행불구무마立行不求無魔)
수행에 ‘마’가 없으면 서원이 견고하지 못하다.
마군(마구니)을 법의 도반으로 삼으라 하였느니라.
수행뿐만 아니라 뜻을 세우고 추진하는 모든 일에 늘 ‘마’가 끼어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를 싫어합니다. 그러한 ‘마’를 받아들이고 도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묘협스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마’를 받아들이려면 ‘마’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2. ‘마魔’란?
‘마’란 생生과 멸滅을 즐기는 귀신의 이름입니다. 태어남과 죽음, 사건의 생김과 소멸 등을 즐겁게 생각하는 귀신을 ‘마’라고 하니, 아마도 ‘마’라는 귀신은 엉뚱한 일을 만들어내고(생), 엉뚱한 이유로 일을 못하게(멸) 하는 재주가 출중한 귀신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천마天魔 : 우리는 ‘깨친다’ 또는 ‘깨침’이라는 말을 합니다. 깨침이란 ‘돈頓’이라고 하며 깨침이 시작되고 만발함을 ‘돈발頓發’이라고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깨침의 일반적인 내용은 ‘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갖가지 생각, 말 그리고 행동 모두를 표현합니다만, 예컨대 부정적인 방향으로 어떤 방법을 찾았다면 그 또한 깨침입니다. ‘깨침’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긍정과 부정을 정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정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깨침인 것입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무슨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순간 만발합니다. 그래서 ‘돈발頓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만 하고 싶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념思念이 업業을 만든다’라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사념은 이타심利他心이 없는 이기심利己心입니다. 남을 위하는 이타심이 어찌 업을 만들겠습니까? 이기심이므로 업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한 사념이 바로 ‘천마天魔’인 것입니다.
‘마’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이 순간 ‘마’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음마陰魔 : 음마는 다른 말로 오음마五陰魔 또는 오온마五蘊魔 라고 합니다. 오감五感으로 체득된 모든 것, 그로 인하여 즉각적으로 느끼는 감정, 생각 그리고 행동을 ‘음마’라고 합니다.
예컨대, 식당에서 첫 술을 떠보니 좀 싱겁습니다. 이럴 때는 조용히 ‘소금’을 찾으면 됩니다.
소금은 테이블 위 어디엔가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입을 가만히 두지 못합니다. “아니 여기는 간도 못 맞춰?” 이 순간 ‘음마’를 만드셨습니다.
어떤 식당은 조금 짭니다. 우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짜다고 합니다.(찡그린다고 음식이 정상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죠.)
이러한 모든 행위가 왜 ‘마’가 되겠습니까? 앞에 누군가 있었다면 당신을 가벼운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과의 거래에 그 감정을 적용시킬 것입니다. 또한 혼자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행동패턴은 온 세포에 ‘습習’이 될 것이며 버릇으로 남겠지요. 그러한 버릇이 인생에 긍정으로 작용할 만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무심코 행동한 작은 행위, 생각으로 누군가를 흉보는 행위 등 작은 심술과 보이지 않는 골부림이 결국 ‘마’를 만들고 ‘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와 ‘업’이 쌓이면, 추진하는 모든 일은 그르치게 마련이지요. 이것이 ‘무명’의 삶 아니겠습니까?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고, 논리적으로 생각 하는 것 같아도 평소의 그릇된 신구의身口意가 어둠 속을 헤매는 삶을 만들어 줍니다.
마군魔軍 : ‘마구니’로 부르기도 하는 마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살면서 셀 수 없는 많은 경우를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갖가지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2차적(생각, 말, 행동) 행위를 하게 하고, 그것은 곧 ‘마’ 또는 ‘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착안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나 상징적으로 12방위를 정하고 각각 7,500개의 번뇌(또는 지을 수 있는 ‘죄’)를 망라하여 8만 4천 번뇌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이 바로 ‘마군’입니다. 그래서 마군을
‘번뇌마煩惱魔’라고도 합니다.
‘마’는 외부로부터 내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생각으로(천마), 감각의 반응으로(음마), 그리고 살면서 행하는 모든 행동으로(번뇌마) ‘마’를 만듭니다. 일을 그르치는 것이 ‘마’ 때문이라면 그것은 모두 내 잘못인 것입니다. 나의 잘못된 행동들이(마) 쌓이고 쌓여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업’으로 자리를 잡고 다음 생의 삶까지 영향을 끼칠지도 모릅니다.


3. 오음五陰을 존중하여 음마를 줄여야겠습니다.
자신의 오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갖가지 느낌을 존중하고 그에 따른 반사적 행동에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이 제일 똘똘한 듯 표현합니다. 내 말 한마디에 앞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오음을 사랑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오음을 사랑하는 것은 오감의 정보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보에 따른 적법한(진리에 맞는) 2차 행위로 연속되어야 합니다. 삶에서는 오감을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보기 흉한 것을 보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악취를 맡고, 좋지 않은 맛을 보기도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맞게(적법하게, 진리에 맞게) 다음 단계로 이어져야 합니다. 국왕이 나라를 통치하듯 우리는 오감을 통치 및 통제하여 ‘마’의 생성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팔과 다리를 뇌가 통제 하듯, 오감은 누가 통제할까요? 학술적으로 아주 어려운 난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 안에는, 오감을 통제하는 이렇다 할 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오음을 통제 못하므로 대다수가 오음에 있어서는 비슷할 것 같습니다만,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유난히 오음을 제어 못하여 주변에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이들도 있습니다. 학벌? 종교?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내용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음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뜻은 지속적으로 ‘업’을 만들며 살아간다는 뜻으로 해석 될 수도 있으니까요.


4. 오음은 어떻게 통제되는가?
지금 우리는 ‘마’에 대하여 분석하고 ‘사념思念’으로 만들어지는 ‘천마’와 오감으로 만들어지는 ‘음마’를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음의 결과를 가져오는 오감의 흐름을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오감은 어떤 과정으로 우리가 인지하게 되는가, 그리고 인지된 결과에 따라 ‘2차적인 반응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통하여 오음의 통제 가능성을 가늠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는 동일한 구조의 ‘뇌’를 가지고 있는데 왜 사람에 따라 오음의 결과가 다르고 그에 따른 근기가 구분되어 삶이 다양하게 펼쳐지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밝은 빛 앞에서도 제 물건을 못 찾는 어리석은 생활을 하고 있는가?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오감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음을 만드는 오감은 시상(視床, Thalamus)을 거쳐 대뇌로 전달됩니다. 이때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는 전두엽과 정보교류를 한 후, 2차 행동의 지시를 시상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그림에서 편의상 시상을 두 개로 나누어 표현하였습니다. 사실은 같은 시상입니다.) 시상은 전달 역할만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시상은 반복되는 유사(또는 동일) 정보에 적응하여, 유사 정보의 경우 다른 정보보다 빠르게 전달하는 기능을 구사하게 된다고 합니다. 동일 조건으로 신규 정보와 자주 접하는 정보가 동시에 있을 때 시상은 자주 접하는 정보를 선별하여 빠르게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러한 조건에서는 신규 정보는 대뇌로 전달조차 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건널목 건너편의 엄마를 보고 반가워서 달려드는 차는 모두 무시하고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경우입니다.
또한 대뇌에서 행동(身)으로 말(口)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자주 사용하는 행동패턴 또는 자주 사용하는 언어가 시상에서 빠르게 전달되거나, 대뇌에서 채 정보전달이 되기 이전에 이미 그 패턴 정보를 말초신경에 정보를 내리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신체조직을 원활하게 하고 민첩한 행동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습習’이라 표현될 수 있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입에 배인 말버릇(욕, 말하자면, 쉽게 말하면, 아니 할 말로, 막말로 등)들이 이야기 중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옵니다. 이런 현상은 모두 시상의 ‘습’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상에서 전달되는 과정에(습에 의하여) 오류가 발생한 후 대뇌로 전달됩니다. 대뇌는
전두엽과 정보교류를 통하여 사리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때, 만일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면, 사리분별이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경우 행동(身)으로 말(口)로 전달되는 명령은 이치에 맞지 않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전두엽이 무슨 일을 하는지 두 가지 실 예를 통하여 이해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매우 포악한 행동을 자주하는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가 뒤늦게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 아이를 검사하던 의사는 그 아이의 특이한 버릇을 발견하고 전두엽 검사를 하였는데, 전두엽이 거의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특이한 버릇은 습관적으로 이마를 벽 또는 책상에 부딪치는 행위였습니다.(그로 인하여 전두엽은 손상되고 행동이 포악했던 것입니다.)
노인성 치매 중에 ‘전두엽치매’가 있습니다. 보통 치매라는 것은 산발적으로 기억에 혼선을 빚거나 일부 기억이 손상되는 현상입니다. 이는 뇌활동 이후 부산물(쓰레기)로 생기는 아밀로이드(단백질형태)가 뇌를 파먹는 과정에서 뇌세포가 파괴되고 그 결과가 치매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밀로이드가 문제를 일으키는 장소가 전두엽 부분인 경우 ‘전두엽치매’라고 합니다. 전두엽 치매 환자는 다른 일반적인 치매 환자와 달리 기억에 관한 일상생활에 전혀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이한 행동 패턴을 보입니다. 이를테면 버스에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울 때, 보통의 경우는 소변을 참지만, 이 환자의 경우 바로 버스에서 소변을 보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전두엽의 손상으로 인하여 옳고 그름의 판단이 모호해진 경우입니다.
따라서 오감의 정보를 받은 대뇌가 전두엽과 정보교류를 하는 이유는 사리판단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오감으로 인한 ‘오음마’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는…
①‘시상’이 온전하게 ‘습’되어 있어야 하며
②전두엽에 긍정의 정보가 가득하여야 합니다.
‘시상’이 온전한 정보로 ‘습’에 젖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갖은 예비 엄마가 행동하듯,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듣고, 좋은 말만 하는 행동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두엽을 긍정의 정보로 가득 채우려면, 채근담, 명심보감, 경전 등을 자주 접하고 사경을 통하여 몸과 마음에 배이게 함으로써 전두엽을 다독거릴 수 있습니다. 전두엽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경전 공부입니다. 경전을 무수히, 무한히 공부하다 보면 특이한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특이하다고 표현하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쉼 없는 경전 공부와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실천이 겸해지면 전두엽은 뇌 세포를 늘려 나갑니다. 그리고 머리 윗부분이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오음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상을 오염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미 오염 되었다면 좋은 것과 접하고 명상을 통하여 시상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경전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실천하여 전두엽을 긍정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오음으로 인한 ‘마’를 충분히 잠재워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 수행의 요점은 무엇인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떨어지는 것일 뿐, 성인의 알음알이는 없느니라. 《선가귀감 - 29》
범부의 생각이란 ‘천마’와 음마’ 그리고 ‘번뇌마’를 유발하는 생각들입니다. 여러 가지 불경을 공부하기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반야심경 혹은 천수경의 의미를 깊이 있게 공부하고 지속적인 사경을 통하여 언급한 ‘시상’을 정화하고 ‘전두엽’을 긍정으로 채워 넣었을 때, 범부의 생각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그 방식이 나를 범부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여러분은 범부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