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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우울, 화려한 성공신화를 둘러싼 명암

김 재 권
동국대 불교대학 전문연구원


요즈음 우리사회가 일구어 낸 경제적인 성공신화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면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춰진 건전한 공동체적 합의와 상생문화의 결핍에 기인하는 매우 슬픈 시대적 자화상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OECD국 가운데 자살율과 저출산율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얻게 됐고, 높은 경제력이나 생활수준에 비해 행복지수는 네팔 등의 후진국들보다도 상대적으로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한다.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과 욕심 때문에, 대다수의 중고생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학벌주의와 과도한 서열경쟁의 대열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조한 학업성적을 비관하여 꽃봉오리를 아름답게 피워보지도 못한 채, 어린 목숨을 내던지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잦은 사업 실패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가족 전체가 집단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는 병든 노인들이 경제적 빈곤과 외로움 등의 문제로 조용히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단순히 소외된 계층의 개인적인 불행으로 쉽사리 치부해버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풍요의 이면에, 저출산, 자살, 그리고 고령화 문제 등 앞으로 지혜롭게 대처해하고 원만하게 해결해야만 될 사회적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모두 무엇을 위해, 어느 곳을 향해, 이렇게 무한히 계속 내달리고 있는 것인가.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문화적으로나 총체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건강한지 진단해볼 때이다.
사실 해방 이후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격동의 반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생활도 윤택해졌고, 최첨단 의학과 유전공학 등 의·과학의 눈부신 발전도 한몫하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흔히 얘기하듯이 머지않아 100세를 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고이래로 병 없이 천수를 누리는 것은, 인간이 갈구하는 행복 중 으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병 없이 오래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지만, 냉혹하고 각박한 현실을 고려할 때, 인간의 수명이 단지 정량적으로만 늘어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아직 문제시 되지 않고 있는 반면에, 심심치 않게 경제적 빈곤이나 노부부 중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나면 극도의 상실감이나 외로움 등을 못 이겨내 불행한 선택을 하는 노인들의 자살문제나 독거노인의 문제가 더 한층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강풀의 원작 만화를 영화로 제작한 추창민 감독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면,노인의 자살이나 독거노인의 문제 등,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영화 속 장군봉(송재호)과 치매에 걸린 그의 아내 순이(김수미)의 애틋한 사랑과 그들이 선택한 최후의 결말은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슬픈 자화상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간략히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김수미)가 설상가상으로 암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장군봉(송재호)은 동반자살을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자식들을 모두 부르는데, 결혼하면서 소원해진 아들과 며느리, 형편이 어려운 막내 딸, 그리고 손자·손녀가 모처럼 한 집에 모인다. 그는 “다 당신이 낳은 자식이다. 참 많이도 낳았데이… 수고했다”고 말하며 자식들과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나눈다. 자식들이 돌아간 후, 아내를 혼자 떠나보낼 수 없었던 그는, 연탄에 불을 피우고 창틈과 문틈을 청테이프로 봉한 채 동반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그리고 친구 김만석(이순재)에게는 자식들을 위한 부모의 마지막 배려로 아침에 찾아와 청테이프를 뜯어달라는 편지를 남긴다.
이 영화를 보면, 산업사회 이후 전통적인 가족사회에서 핵가족사회로 이행된 도시적 삶의 한 단면을 담담히 그리고 있는 일본영화계의 거장 오즈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1953)의 애잔한 서사가 문득 떠오른다. 두 영화가 내용상 서로 매치되는 것은 산업화를 통한 급속한 경제 성장 이후 가족이 해체되면서 사회가 겪게 되는 시대적인 군상들의 빛과 그림자를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물질적으로 윤택해졌지만,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지난 6·70년대 이래 우리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절대적 빈곤타파나 국가적 경제성장을 빌미로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몇십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전후 부모 세대는, 자신은 못 배우고 제대로 못 입고 못 먹어도 자식들을 위해 온전히 희생하였다. 그 결과,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크게 출세는 못하더라도 대학문턱이라도 쉬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는 모두 전후 부모세대들의 뼈아픈 희생의 대가代價일 것이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살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가? 다시 말해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가끔은 조용히 되짚어 보고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 7·80대의 대다수의 부모세대는 여지껏 시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통사회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식들을위해 희생을 감수한 측면이 강하다. 굳이 보상을 바란 희생은 아니었더라도,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부모가 병들고 힘이 없을 때는 당연히 자식이 부모를 봉양해야 된다는 문화적 합의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노후대비의 여력이 없었던 부모세대에게는 자식들을 온전히 키우는 것이 그들의 연금이고 보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7080세대라 불리는 4·50대의 자식세대들은 상당수가 부모의 희생 속에서 물심양면으로 보살핌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받았으면서, 의식적으로는 서구의 개인주의적이고 자기편의 위주의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부모세대에게 갚아야 한다는 의식도 매우 희박해졌다.
결국 우리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 두 세대 간의 갈등양상은 우리의 전통사회문화와 서구적 개인주의의 문화충돌이자 신구 두 세대 간의 과도기적 충돌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당연히 피해자나 희생자는 부모세대인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문화적 얌체족들이 문화보험사기를 통해 부모들을 울리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나 보살핌이 거래관계로 성립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문화전통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합리적이고 적절한 선에서 어느 정도 계승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요컨대 오늘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들의 자살, 무의탁 독거노인, 고부간의 갈등양상, 많은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 등 가족해체로까지 확산되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세대 간 갈등양상의 저변에는 여전히 이러한 문화충돌의 갭gap이 뿌리 깊게 깔려있다고 본다.
흔히 인생은 ‘공수레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 단순한 진리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구세대와 신세대 모두 법정스님이 평생토록 설파하신 ‘필요 이상의 욕심을 버리는 무소유의 근본정신’을 시대적 화두로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물질적인 풍요와 안락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 그리고 배려와 나눔을 통해 진정으로 서로 위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인과 사회 모두, 건강하게 살아 숨 쉬고 다함께 큰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공생적 혜안과 자비의 실천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