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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듯 그대를 사랑하라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로사르 라 따시델렉(Losar la Tashi Delek).”
티베트 음력 불의 기운 원숭이 해가 밝았다. 한국의 설과 하루 차이 나는 2월 9일이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는 미국 미네소타주 마요클리닉에서 건강 검진을 마치고 휴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3월 초까지 미국에 머무는 일정인 달라이라마는 대표부를 통해 신년 인사를 담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주된 말씀은 티베트인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신년 행태를 꾸짖는 당부의 회초리였다.


“우리는 새해 인사로 ‘따시(Tashi)’를 나눕니다. 보리 가루를 하늘에 뿌리고 곡주를 마시며 도박과 다름이 없는 판을 벌이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다짐을 세우고 나눔을 계획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설에 나누는 진정한 ‘따시 델렉’입니다.”


새해가 오기 전 집안 대청소를 하고 가족과 둘러 앉아 ‘구뚝’을 끓여 먹는다. 음력 29일에 먹는 수제비라고 하여 숫자 아홉의 구(9)를 붙였다. 동글동글한 경단 안에는 한 해를 반성하는 점괘가 들어 있다. 각자의 그릇에 담긴 새알을 깨물어 그 안의 글을 공개한다. 4살의 손녀 딸 ‘구뚝’에서
‘샘까르뽀(깨끗한 마음)’가 나오자, 어르신들은 “아이의 마음이야 말로 본래 스승이자 천진불”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달라이라마가 자리를 비운 다람살라는 한적하다. 각자의 긴 설 휴가를 보내느라 대다수 티베트인들의 상점도 문을 닫았다. 펄럭이는 오색의 기도 깃발 타르초 너머 뾰족 바위산 위에는 눈이 앉았다. 4월 붉은 로렌드럼이 만발할 즈음이면 이곳 다람살라도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정월 열 하룻날. 티베트 불교도들은 초빼마로 향한다. 올 해는 매년 보름마다 열리던 달라이라마의 본생담 법문도 취소되어 다수의 불자들이 초빼마 혹은 보드가야에서 정월 보름맞이 기도를 올린다. 연꽃 호수가 자리한 초빼마는 티베트인들의 구루 린포체 파드마샴바바의 수행처였다고 전해진다. 올 해는 원숭이의 해로 파드마샴바바의 탄생 년도를 상징한다.


티베트 8세기 티송데첸 왕 집권 당시 파드마샴바바는 토착 종교 붼교와 불교의 반대 세력을 제압하였다. 나란다 승원의 대학장 샨트락시타를 보좌하며 삼예 승원의 건립을 이끌어간 파드마샴바바는 후기밀교를 대표하는 수행자이자 주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매년 4월이면 파드마샴바바를 기리는 참 댄스 축제가 다람살라 인근 닝마빠 사원 따시종에서 열린다.
달라이라마의 마지막 람림 보리도차제론 법회가 열린 따시룬뽀 사원. 열악한 법회장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56개국에서 3천 300여 명의 외국인이 참석했다. 그 가운데 45%가 처음 람림 법회에 참여한 이들로 사무국은 집계했다. 감히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인도의 법문 여행이기도 해 마치 수행자의 성지 순례를 방불케 했다. 인도의 티베트 난민 지구라는 지역적 특성상 보호구역 방문 허가증을 3개월 전부터 신청해야 했으며 법회가 열리기 수일 전부터 인근 마이소르의 경찰이 투입되어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법회가 오전 그리고 오후로 연일 지속되던 와중에 달라이라마는 29일 오후 법문을 쉬고 외국인들과의 단체 친견을 갖겠다고 공지했다. 아시아와 서양 국가로 분류되어 각각 법당과 마당에서 두 차례 만남을 한 달라이라마는 높은 법상에서 내려와 단체 사진도 함께 촬영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 날의 특별한 만남을 위해 각국의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중국 본토에서 온 이들 가운데는 단체 사진을 찍는 무리에 섞이지 않고 참관만 하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아시아 국가의 대부분은 불교를 신앙해 왔습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 생존 당시 걸식을 하시고 대중에게 법을 설하심에 무자성의 공성을 설하신 바는 오늘날 우리가 독송하는 반야심경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한 순간에 문득 공성을 깨우칠 수는 없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삶의 경험이 무르익을수록 공성의 체득 역시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냅니다.
일체 중생을 헤아리는 마음이 일어나는 근간을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70억 인류 가운데 한 명인 나 달라이라마 역시 더불어 공존하는 연기적 존재임에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라고 하는 기준으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연민심을 일으켜 나를 위하듯 타인을 위하는 것이 행복의 기술입니다.
모두가 달라이라마라고 부르는 80세의 노장인 저는 불교를 수행하는 비구 승려입니다. 이에 준하여 타 종교의 믿음 행태를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공존을 항시 염두 하고자 합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종교에서는 이러한 불교를 두고 단변에 빠진 종교라고 평가합니다.
티베트불교는 인도의 나란다 승원의 학제를 근거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한 불교 환경에서 달라이라마인 저는 성장하였고 교육을 받았으며 격동의 시대 평화와 자비의 가치를 사유하는 절박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정치적 지도자의 직무를 은퇴한 2011년도를 기해 과거 5대 달라이라마 이래로 370년간 티베트에서 이어져 온 법왕의 정치적 관행은 청산을 하였습니다. 이를 기해 저는 보다 보편적인 윤리에 부합한 대화로 시대의 화합을 도모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대만의 많은 불자들이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청하고 있습니다만 지난 수년간 정치적인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올해 출범하는 대만의 새 정부가 비자를 발급한다면 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기대에 응하려 합니다. 이렇듯 달라이라마의 입국 여부에 관한 하나의 상황에도 크고 작은 이해관계와 다방면의 조율이 요구됩니다.
심지어 자연 재앙 역시 인과의 연기법에 의한 것임에는 한 치의 의심이 없습니다. 인도 남부 첸나이에서 발생한 홍수 사태를 보십시오. 네팔에 발생한 지진은 인명 피해는 물론 문화유산을 허망한 돌무더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시리아 난민의 사태들이 국제 사회에 일으키는 인권의 파장 역시 그러합니다. 한 명의 개인과 하나의 국가가 그리고 같은 혈통의 민족이 겪는 시대의 수난은 다른 방식으로 반세기 이전과 다름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한다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심각히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이 아프도록 보리심을 말해도 마음을 울리지 않고 튕겨나가 버린다면 세상 그 어디에 희망을 구현할 수 있을까요. 말하고 듣고 사유하는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진심으로 일체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겠노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한 부분에 치우친 수행과 해탈의 방식을 구한다 할지라도 기본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보리심입니다. 저는 일체 중생을 위한 최선으로 가장 먼저 보리심을 일으키고 더불어 할 수 있는 실천에 동참해 주기를 강조합니다. 지구상의 다양한 재해로 피해를 받고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 어서 회복할 수 있도록 구호하는데 협력하기를 촉구합니다.
한 때 인도 라다크에 폭우가 와서 큰 산사태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복구에 최선의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구촌 어디서든 인류가 겪는 아픔이 곧 나의 아픔으로 여길 때 슬픔과 고난은 그 말의 필요를 잃게 될 것입니다. 자비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는 마음을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갈등은 분별과 망상에 의한 것임을 깨우칠 때 종식됩니다.
여러분은 평소 장애를 물리치는 기도를 하시는지요. 간절함에 대적할 장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스스로 몸가짐은 물론 마음 쓰임 역시 청정함을 항시 엄격히 하십시오. 선한 계율로서 생활의 번잡한 이해관계들을 정갈히 하십시오. 이러한 진실한 믿음으로 생하고 머무르며 사라지는 현상의 본질이 공함을 사유할 때 근본 스승과 마주한 간절한 제자는 만다라 공양을 올립니다. 대지의 향수와 해와 달을 아우르는 마음으로 헤아려 관함을 스승께 올리오니 일체 중생이 환희롭도록 하소서.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보림화)
omflower@gmail.com 
가교.
www.gagy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