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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27) 체험의 길(5/6) 10지 법문을 배우는 선재동자-전편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올해는 그 느낌이 다르다. 코로나19로 그동안 대면 수업에 제한을 받았다. 그간의 3년이란 특별한 경험이 세상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바뀐 내용을 일일이 모두 거론할 수는 없지만, 학교에 근무하는 필자에게는 화면 영상을 통한 강의가 우선 떠오른다. 이전에는 드물던 현상이었다. 동영상을 몸소 제작하고 그것을 인터넷 플랫 홈에 올리는 기술 등이 익숙해졌다. 새롭게 배우게 된 일이다.
이렇게 새롭게 배워 얻은 경험들도 있지만 잃어버린 것도 있을 것이다. 새 학기에는 잃어버린 것이나 낯설어진 것들이 걱정된다. 같은 학과라도 거의 3년간 얼굴을 못 보던 학생들이 서로 만나게 된다. 설혹 그건 학생끼리의 문제라고 하겠지만, 학생과 교수 간의 만남은 어떨까? 3년이 지난 올해는 중간적 단계로 ‘브랜딩 수업’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 방법으로 수업을 신청하기는 했다. 1주일에 3시간 하는 수업을, 2시간은 동영상을 녹화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1시간은 교실에서 하는 방식이다. 섞어서 하니 ‘브랜딩’이다. 이렇게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전달 ‘방식’이 달라진 만큼, ‘내용’도 고려해야 했다. 실제 필자의 경험도 그랬다.


2.
이렇게 전달 ‘방식’의 변화에 따른 ‘내용’의 변화는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불교 경전에서도 그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를 상상해보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오전 9시와 11시 사이에 걸식을 위해 마을로 내려오신다. 마을 사람들과 부처님께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 제자들은 그것을 기억해 두었다. 또 초하루 보름이면 제자들과 법담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수시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이런 대화들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기억되어 쌓여갔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 제자들은 기억한 것을 말로 쏟아내고, 그것이 정말인지 함께 들었던 제자들이 각자의 기억을 대조하여 확인하고, 확인된 것을 모여서 암송한다. 세월이 흘러 세상도 변하여 문자로 기록하는 풍조가 퍼졌다. ‘대화와 암송’을 ‘문자’의 옷을 입혀 경전이라는 건축물에 차곡차곡 쌓았다. 이 지방 저 지역으로 퍼져서 그곳의 문자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불경을 읽어야 한다. 암송과 대화. 이것 말이다. 실제 현장에서의 대화 또는 암송의 과정이 없이, 곧장 문자로 기록된 요즈음의 책과는 다르다.


3.
그동안 연재해 온 「입법계품 제39」를 돌아보자. 형식이 모두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선재 동자와의 대화 상대는 총 53명이다. 당연히 주고받는 내용도 다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일정한 경향성 내지는 형식이 있다. 훗날 경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그것을 정리했다.
우선 형식을 보면, ①앞전에 만난 선지식이 다음은 누구를 만나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 그 말씀에 따라 선재 동자는 구법의 여행을 떠난다. ②그러면 소개받은 선지식을 알현하고 찾아온 이유를 여쭌다. ③이에 선지식께서는 수행을 위해 노력하는 선재 동자를 칭찬하고 한마디 가르쳐 준다. ④헤어지면서 선재 동자는 자신을 낮추어 더 배울 게 많으니 선지식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한다. 이런 내용이 담긴 경전의 문장과 의미를 분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경학經學이라 하고, 경학에 종사하는 학승을 논사論師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사講師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사들은 「입법계품」에 반복하는 형식을 과목으로 정리했다. 과목을 외워두면 경전 읽기에 도움이 되기에 소개한다. ①의교취구依敎趣求, ②현경자문見敬諮問, ③칭찬수법稱讚授法, ④겸기추승謙己推勝. 동그라미 숫자끼리 맞추어보면 의미를 알 수 있다.


4.
이렇게 선재 동자가 만난 한 분 한 분의 선지식과 서로 간 ‘대화의 형식’에도 일정한 경향성이 있듯이, 선지식을 만나 배운 ‘교리의 내용’에도 일정한 경향성이 있다. 위에서 말한 경학을 다루던 논사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화엄경󰡕을 연구하던 대표적 논사의 한 분으로 청량 징관 국사가 있다.
청량 국사는 「입법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53명의 선지식과 만나 나눈 대화 속에 담긴 ‘교리의 내용’에 일정한 경향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해내었다.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외워두면, 경전 읽기에 도움이 된다.
위의 <2>에서 말했듯이, 불경은 원래 ‘대화와 암송’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세월 속에서 문서로 기록되었다. 대화에는 반복, 내지는 중첩, 내지는 각도를 달리하여 말하기, 이렇게 방법을 달리하면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눈을 맞추어가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다. 일방적이다. 마치 코로나19 시절 인터넷 강의가 그렇듯이 말이다. 양방향으로 하는 화면 영상 강의라고 해도, 선생이 학생들의 몸짓이며 눈빛을 알 수 없다. 상황을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아직 말을 하기 전의 갓난아이에게 엄마가 젖을 물릴 때, 만져주고, 말 걸고, 눈빛을 마주한다. 안·이·비·설·신 등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는 뇌와 직결되어 엄마와 아기가 소통한다. 입 모양, 눈빛, 뇌의 작용, 지식의 생성과 저장, 이것이 총체적으로 중중무진 연기한다.
성인들이 하신 말씀이 문서로 기록되어 경전으로 지금에 전하는 현실, 이런 현실에서는 옛날 같은 그런 생생함을 맛볼 수 없다. 마치 아기가 엄마와 서로 눈 맞추며 젖을 먹듯이 말이다. 그래서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바로 논사論師들이 개발한 경학經學이다.
󰡔화엄경󰡕의 대표적 논사의 한 분인 청량 국사는 「입법계품」 전체에 등장하는 인물과 선재 동자가 한 대화 ‘내용’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누는데, 먼저 수행의 단계로 나눈 것을 소개한다. 선재 동자에게 ①신信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문수보살과의 대화, ②10주住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덕운 비구 이하 자행 동녀에 이르는 열 명과의 대화, ③10행行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선견 비구 이하 변행 외도에 이르는 열 명과의 대화, ④10회향回向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육향 장자 이하 안주신에 이르는 열 명과의 대화, ⑤10지地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바산바연저 주야신 이하 구바녀에 이르는 열 명과의 대화, ⑥등각等覺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마야 부인 이하 다시 만난 문수보살에 이르는 열두 명과의 대화, ⑦묘각妙覺에 관한 내용을 지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보현보살과의 대화, 이렇게 ‘내용’을 분석한다.


5.
선재 동자는 총 53명의 선지식을 만나 수행을 배운다. 문수보살의 경우는 두 번 만났으니, 배움의 내용으로 계산하면 총 54회가 된다. 이렇게 선지식과의 만남과 배움을 ‘형식’으로 분석하면 위의 <3>에서 말한 대로이고, ‘내용’으로 분석하면 <4>와 같다. 그런데 <4>에서 필자는 “먼저 수행의 단계로 나눈 것을 소개한다”고 했다. 지면 관계상 다음의 나눔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만 소개한다. <4>에서 일곱 단계로 나눈 것은 ‘수행의 단계’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라면, ‘수행이 드러나는 양상[現相]’으로 나눌 수도 있다.
모두가 다섯이니, ⑴단계에 따른 수행의 양상[寄位修行相]으로, 10신信에서 10지地까지에 이르도록 만나 배운 가르침 , ⑵이상에서 닦은 갖가지 수행의 인연을 모아 진리의 실상 체험으로 들어가는 양상[會緣入實相]으로, 마야 부인에서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를 만나 배운 가르침, ⑶수행에서 얻은 공덕을 종합하여 깨침의 원인을 완성하는 양상[攝德成因相]으로, 미륵보살을 만나 배운 가르침, ⑷지혜와 관조가 둘이 아닌 양상[智照無二相]으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 배운 가르침, ⑸닦아야 할 수행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내는 양상[顯因廣大相]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배운 가르침, 이렇게 다섯 종류의 양상으로 나눌 수도 있다.


6.
이상에서 수행의 지위에 따른 일곱이든, 가르침의 양상에 따른 다섯이든 이상은 모두 ‘내용’으로 나눈 것이다. 원래는 현장에서 서로 눈을 마주하며 나누었던 대화였는데, 세월이 지나 이것을 문자로 기록하여 책으로 만들었고, 현재 우리는 그 책을 읽고 있다. 현장감도 떨어지고, 번역이라는 언어적 굴절도 있다. 이런 것을 넘어 당시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경학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안한 방법이 오히려 복잡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필자로서는 전통적인 이 방법을 여러분에게 권한다. 서로 만나서 대화하면 쉽게 전달할 내용이지만, 이렇게 책으로 보니 답답하다. 코로나19 동안 눈을 마주하고 서로 소통하지 못했으니, 새봄이 되어 이제는 현장에서 눈을 마주하며 서로 말하게 되니 설레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 말로만 하다 보면, 기록된 물증이 없어 서로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기억해서, 세월이 지나면 서로 달라질 수도 있다. 반면 기록된 경전은 현장감은 떨어져도 세월이 흘러도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