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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짓는 입춘立春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 ‘춘하추동’ 찬불가를 음성공양으로 올린, 우리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어 말합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듯, 한 해 또한 보름 간격으로 24절기가 있습니다. 소설과 대설이 지나면 동지가, 소한과 대한이 지나면 입춘이 오는데,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춘분이 됩니다. 이것을 하루에 비유하면 24시간과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하루를 낮과 밤으로 나누어 말하듯이, 하지는 한낮 12시에 해당하고 동지는 한밤중인 24시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 삼재三災는 9년을 주기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辛酉戌亥 열두 띠가 반복되면서 세 띠가 삼재에 든다고 하니, 작년은 ‘들삼재’, 올해는 ‘눌삼재’, 내년은 ‘날삼재’라고 삼재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삼재의 뜻입니다. 삼재란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입니다. 이를 우리 자신에게 비추어 보면 늙고 병들고 죽는 이치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남을 보고 그것을 죽음으로 여기지 말라. 열반은 죽음이 아니니라. 그러나 부모에게서 받은 이 몸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느니라.”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생명의 존재는 노병사老病死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선조들은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습니다.
그러니 아홉 해를 주기로 삼재를 말한 것은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경계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입니다.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새 희망을 세우는 날입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수행의 시작입니다. 복은 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짓는 작복作福의 날입니다.


법회가 끝난 뒤 불자들에게 “성불하세요.” 하는 인사를 건네면 불자들은 “성불하십시오.”라 인사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 무게가 참으로 무겁습니다.
그래서 “성불하십시오.”보다는 “성불하세요.”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성불하세요.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이런 자비의 언어를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돈 들이지 않으면서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삼재를 노병사로 본다면 늙는 것은 물(水)의 이치요, 병드는 것은 불(火)의 이치이며, 세상을 떠나는 것은 바람(風)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평생 몇 번씩이나 숨을 쉬는지 헤아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생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어떤 이는 며칠이라 하고, 어떤 이는 몇 달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몇 년이라 했습니다.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인생이란 세월 속에서 늙어가는 것이요,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병이라 하며, 마지막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을 죽음이라 할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 삼재가 든 사람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삼재를 말하며 조심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새롭게 다짐하라는 경책입니다. 삼재는 두려움이 아니라 성찰의 기회인 것입니다.


얼마 전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여러 포교당 주지 스님 12명과 불자님들이 함께한 여정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뉴욕 원각사 주지 스님이 동참했는데, 인도에서 찍은 사진을 AI에 입력해 곧바로 노래를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하고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의 길은 다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이겠습니까.
‘서비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서비스를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불보살님의 이타행利他行입니다. 우리 또한 주변의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관심과 배려, 친절함으로 다가가는 것이 곧 수행이며 서비스입니다. 거기에 하심下心과 인욕忍辱, 겸손謙遜이 우리 안에 함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젊은 시절, 하루에 네 번 법당에서 『경전』을 독송하며 세 시간씩 기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석주 노스님께 “수행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어보니, “하심하고 인욕하는 게 수행이다.” 하셨습니다. 삼재를 이길 보물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하심하자. 인욕하자. 겸손하자. 친절하자.”
삼재는 재앙의 시간이 아니라, 겸손하게 나를 농사짓는 시간입니다. 자신을 살피며, 잘못은 반성하되 후회에 묶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지금 법문하고 있는 『화엄경華嚴經』 80권 가운데 「정행품淨行品」은 마치고, 「현수품품賢首品」을 설시說示하는 중입니다. 「현수품」은 지혜제일 문수보살이 현수보살에게 묻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묻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혼탁하고 어지러움이 없는 청정심, 청정한 행의 큰 공덕에 대한 것입니다.
「정행품」에서 이미 부처님께서 옛적에 닦으신 청정한 행을 설하고 나서, 이제 그 보리심菩提心의 공덕功德,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공덕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게송으로 현수보살에게 청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참으로 겸손합니다. 문수보살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현수보살에게 존칭으로 묻습니다. “제가 이미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부처님의 청정한 행을 설하였으니, 어지신 이여, 이 법회에서 수행의 수승한 공덕을 설해 주십시오.”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 수행의 열매가 바로 공덕입니다.
공덕이란 복과 덕과 지혜가 합해진 자리입니다. 유루복有漏福은 다하면 소멸되지만, 무루복無漏福은 다함이 없습니다. 배터리를 갈아 끼우듯 다시 채워야 하는 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쌓여 가는 복과 덕과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인연 속에서 끊임없이 공덕을 닦아가야 합니다.
현수보살이 대답합니다. “선재여, 착한이여, 어지신 이여, 자세히 들으소서. 저 모든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나, 이제 제 마음의 힘을 따라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마치 큰 바다에 한 방울 물과 같을 뿐입니다.”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원효대사의 『기신론起信論』 서문을 떠올립니다. 소년 시절 『기신론』을 공부하며 그 서문을 마음에 새겨 두었던 가르침이 있습니다.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 같은 목숨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다. 대허공과 같이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이 지극히 공평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라 하며 그것을 일컬어 긍정 아닌 대긍정 이라 하는 것이다. 입을 굳게 다물고 그것을 목격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언설을 넘어선 대승을 논하고 사례가 끊긴 대승에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랴.”
문수보살도 존칭으로 묻고 현수보살도 “어지신 이여, 자세히 들으소서.” 하며 공경으로 답합니다. 문수보살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을 위하여 묻고, 중생을 위하여 답하는 것입니다.
현수보살은 문수보살의 청을 받들어 초발심初發心의 공덕, 곧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을 357가지 게송으로 설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이 “믿음은 도의 근본(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 공덕의 어머니는 어떤 이치입니까? 일체 선법을 다 길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법이란 단지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착함에 더하여 올바르게 사는 일입니다. 의심의 그물을 끊고, 애착의 물결을 벗어나, 번뇌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열반의 길을 여는 것이 선법입니다. 그 출발이 바로 믿음이며, 초발심입니다. 입춘은 새봄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입춘기도 발원문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오늘 새봄의 시작인 입춘을 맞아 저희 불자들은 묵은해의 어두운 허물을 참회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발원문을 올립니다.
겨울에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순들처럼 저희들 불성佛性도 자비의 빛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삼재와 팔난이라는 인생의 고비마다 하심과 인욕의 지혜를 내어, 늙고 병들고 죽는 육신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정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처음 배우는 가르침 가운데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습니다. 거기에 “파거불행破車不行이요, 노인불수老人不修라.” 부서진 수레는 굴러가지 못하고, 나이 들면 닦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젊어서 수행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합니다. “젊어서도 안 하던 것을 지금 해서 뭐가 되겠느냐.”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정신 차리면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수행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파거불행이요, 노인불수”라는 가르침을 깊이 새겨, 이 몸이라는 수레가 부서지기 전에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하심으로 아만과 독선을 내려놓고, 이웃을 보듬어야 합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부처님 법을 전하며, 복덕과 지혜를 증장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 “허공을 날아가는 새의 발자국”이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새가 허공을 날아가며 발자국을 남긴다고 해서 그것이 보이겠습니까?
허공은 한량없이 넓고, 새의 자취는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지만, 그것은 광활하여 대허공과 같이 사私가 없습니다. 큰 바다와 같이 지극히 공평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입니다.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국을 말할 수도 없고 보일 수도 없듯이, 깊고 깊은 부처님의 가르침도 그러합니다. 마음과 뜻으로 다 알 수 없고, 알았다 해도 말로 다 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모든 부처님을 항상 믿고 받들면 능히 큰 공양을 일으키는 것이요, 능히 그 큰 공양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힘을 얻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가피력과 위신력은 불가사의한 힘입니다.
믿음이 점점 수승해지면 그 덕목이 공덕으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는 가르침이 바로 이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든 들지 않았든,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무너지는 소리는 누구에게나 납니다.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선조들이 9년 주기로 삼재를 말한 것은 잘 나갈 때 더 조심하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라는 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반추하며 살얼음판을 걷듯 전후좌우를 살피며 살라는 뜻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9년 주기로 그런 경계를 알게 함으로써 더욱 겸손하고 하심하고 인욕하며 친절하게 어울려 살도록 한 것입니다. 지혜롭게 사는 불자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입춘은 봄의 문이 열리는 날이자, 마음의 초발심을 다시 세우는 날입니다.
믿음에서 시작해 공덕으로 자라고 지혜로 꽃피우는 한 해가 되기 바랍니다.
삼재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하심과 인욕으로 삶을 다듬어 가는 참된 봄맞이가 되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