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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경과 고기 몸의 비극

 


정성운
텃밭농부


자애경 독송을 시작했다. 일을 열고 마칠 때 한 번씩 읽는다. 대개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켤 때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자애경을 열어 읽는다. 옆에 사람이 있기에 소리 내어 읽지는 않는다. 눈으로 읽으며 마음으로 새긴다.
읽을 때마다 걸리는 대목이 있다.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농사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이지만


텃밭을 일구다 보면 해충으로 분류된 벌레들을 죽이거나 쫓아내게 된다. 노린재, 달팽이, 뿌리파리들이 그것들인데, 이것들을 그냥 놔두게 되면 수확량이 확 떨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은 작물의 잎이 시드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존재 자체도 모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떤 때는 작물의 뿌리를 갉아먹거나 병들게 해 아예 수확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난감한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일러 방제防除라고 한다. 농사에서는 방제가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다. 농사에서 사람의 할 일은 밭 일구고, 씨 뿌리고, 풀 베고, 해충을 쫓는 방제, 수확과 후처리, 보관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했다가는 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러나 자애경의 위 구절처럼 해충도 생명인 까닭에 그것들만의 생애가 있다. 농사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람 외의 생명을 해치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다짐이 무색해지는 현장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나?
몇 해 전 작고한 김성철 전 동국대 교수는 이를 ‘고기 몸의 비극’이라고 했다.


“남을 잡아서 그 고기를 먹는 이유는 내 몸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남이 나를 잡아먹는 이유는 내 몸이 고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공통점이다. 먹고 먹히는 비정한 생명의 세계다. … 고기 몸의 비극!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생명에 대한 통찰이다.”[불교하는 사람은, 2021, 오타쿠]


고기 몸이라는 지칭은 인간이 생태적 존재임을 나타낸다. 일찍이 인간의 길을 밝힌 석학들은 인간이기에 지닌 특성을 밝혔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놀이하는, 노동하는 존재라고 했다. 이런 규정들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이기 이전에 생물적·생태적 존재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메커니즘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몸 밖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먹어야 한다. 먹이는 몸 밖에 있으며, 이를 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모든 목숨붙이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인간의 수렵과 채집은 몸 밖의 먹이를 몸으로 끌어들이는 활동이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이후 한시도 끊이지 않았다. 1만 년 전쯤부터 시작한 농사는 인간이 먹이활동을 안정적으로 행할 수 있게 된 사건이다. 농사는 곡물과 고기를 효율적으로 얻을 방법이다. 효율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먹을 것의 생장을 북돋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을 방해하는 요소, 즉 해충과 병을 억제 또는 제거하는 것이다. 농업의 발전은 북돋고 제거하는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굶주림의 고통과 공포, 먹거리를 두고 벌이는 전쟁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모기를 살게 해야 하는 이유


북돋고 제거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몸 가진 존재인 사람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자고 다른 목숨을 해하는 일에도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한때 모기를 전부 없애자는 논의가 있었다. 실제 모기 박멸의 계획도 세워졌다.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인해 1년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솔깃한 제안이었다. 모기는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등을 옮긴다. 개와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인 심장사상충을 옮기는 등 수많은 전염병의 매개체로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계획은 진행되지 않았다. 모기를 완전히 없애면 수십만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과 수백만의 동물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모기가 없어짐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생태계 교란이 가져올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장 모기 유충과 성충을 먹이로 삼아 살아가는 잠자리가 뜻하지 않게 사라질 것이며, 이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 여파는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인간을 생태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과 닿아 있다. 연기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존재와 현상을 독자적으로 발생·생장·소멸하지 않는다. 원인과 조건, 즉 인연因緣에 의지할 뿐이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중중무진 중첩되어 찰나와 세세생생 이어지는 인연들의 요소들이다. 인간 목숨은 무수한 원인들과 조건들에 의해 유지되고 소멸한다. 원인들을 알고,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일이 인간의 바른 삶이며, 수행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수행으로써 십력十力을 지니셨다. 여래십력이라고 한다.


① 도리에 맞는 것과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변별하는 힘
② 업의 원인과 그 과보의 관계를 올바로 아는 힘
③ 사선·팔해탈 등의 선정을 아는 힘
④ 중생의 근기의 높고 낮음을 제대로 아는 힘
⑤ 중생이 원하는 것을 아는 힘
⑥ 중생이나 모든 현상의 본성을 아는 힘
⑦ 중생이 여러 곳(지옥이나 열반 등)으로 향하여 가는 것을 아는 힘
⑧ 나와 남의 과거세의 일을 기억하는 힘
⑨ 중생이 나고 죽는 것을 아는 힘
⑩ 번뇌를 끊은 경지와 그 경지에 도달하는 법을 아는 힘이다.[달라이 라마, 수행을 말하다, 담앤북스, 2021]


중생인 나로서는 얻기 힘든 힘들이지만, 포기해서는 안 될 경지이다. 잘 알아야 잘 살 수 있으며, 누구든 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기 박멸을 두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여래십력 중 두 번째 힘이다. 그 과보를 알지 못하거든 멈춰야 한다. 수행으로 돌아와야 한다.


생명에 대한 연민의 마음


다시 김성철 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염리심厭離心과 연민심憐愍心을 갖출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 불교 수행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선을 닦을 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두 가지 감성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신의 ‘고기 몸’에 대한 염리심이고, 다른 하나는 ‘고기 몸’을 갖는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대한 애틋한 연민심이다. 염리심과 연민심이 함께 해야 수행자의 마음은 진정으로 욕계를 벗어나 색계에 오를 수 있다.”


염리심은 나를 조절하는 것이다. 몸을 가졌으되 몸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은 먹어야 몸을 유지하는 존재이므로 먹되 적절히 먹어야 한다. 오관게는 탁월한 가르침이다.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연민심은 뭇생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다. 뭇생명이 몸을 유지케 해주는 존재임을 알며, 그들의 존재도 유지되기를 바라며, 그러기에 고마움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봄이다. 밭을 일구어 씨앗을 뿌리는 시절이다. 몸 가진 존재의 비극을 알면서도 또 다른 몸을 해치지 않을 수 없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묻는다. 방제의 손길을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그 손길 안에 연민을 함께 둘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