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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서 웰다잉까지

김용완
물리학 박사, 인제대 겸임교수


생자필멸(生者必滅)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최근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비교적 여
유 있는 노년층을 즐기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품위 있는 죽음을 추구하는‘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웰빙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지향하는 삶의 유
형 또는 문화 현상, 혹은 사전적 의미로는‘복지·안녕·행복’을 뜻하며, 우리말로는‘참살이’라
고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반면에 웰 다잉은‘잘 죽음’‘평안한 죽음’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상‘잘 먹고 잘 사는’웰빙보다는‘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웰다
잉이 보다 중요하다. 우리 고단한 삶의 지뢰밭이라고 일컫는 불치의 병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 특히 아직 인간 의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암이라는 적을 만났
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법구경, 도행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부처님의 이 근원적인 논설로는 대부분 중생의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 분명 부처님이 말씀
하신 죽음의 의미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는 하지만 육체적 고통으로 지옥을 헤매는 중생들에게는 자
칫 허망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웰빙보다 웰다잉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 고통 받는 환자가 그의 인
생을 총 결산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갈수록 늘고 있는 병원,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배려는 너무나 적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 더구나 죽음보
다 더한 아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해야만 한다. 다행히 근래 들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병원 내에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먹고 살기에만 바
빴던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의미다.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루빨리 전문 간호사, 호스피스 봉사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독립 호스피스 병동과 임종 직전가족들끼리 모여 환자와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는 임종실
등의 핵심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웰다잉의 차선책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식
물인간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호흡기를 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인정되
기 시작하면서 환자나 주변 사람의 의견이 실제 죽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통계적
으로 우리나라 병원의 말기암 환자 병동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죽는 순간까지 항암 치료를 놓지 못하
고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들도 환자가 의식이 있건 없건, 소생 가능성이 있건 없건 간에‘끝까지 최선을
다하는’것이 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럽든, 부모를 세상에 붙들
어두려고만 한다.
이는 우리가 삶에 대한 집착이 특별히 강해서라기보다 평소 죽음에 대해 구체적이고 진지한 밑그림
을 그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웰다잉의 문제를 오롯이 개인 문제만으로 삼
기 때문이다. 이제 웰다잉의 문제는 어느 한 사람 국한된 문제도 아니고, 더구나 개인적인 문제는 더
더욱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또한 노인이나 말기암 환자가 아니라도 과연 나는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간단한 죽음 예
행연습을 해본다면, 우리 대부분이 원하는 웰다잉에 조금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막상 자신에게
죽음이 닥친다면 아무런 다른 대안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죽음은 급작스
러운 것이다. 삶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만큼이나 삶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도 빛나고 존엄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이제 죽음이라는 단어를 무조건 외면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아름다운 나
만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때다.
그리고 그 다음.
아래의 부처님 이야기를 찬찬히 새겨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베사리성의 큰 숲에 계실 때 열반을 예고하시자 아난존자가 슬퍼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은 빠짐없이 덧없음으로 귀착되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
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으레 그런 것이거늘 어찌 근심하고
슬퍼하랴.
그러나 아난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씀드렸다.
하늘에서나 인간에서 가장 높으시고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머지않아 열반에 드신다니 제가 어찌 근
심하고 슬퍼하지 않으리까. 이 세상의 눈을 잃게 되고 중생은 자비하신 어버이를 잃나이다.
아난아,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비록 내가 한 겁 동안이나 머문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없어
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의 바탕은 그런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