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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중생 어떻게 할 것인가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올들어 우리는 경기 서남부 지역 등에서 부녀자 9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연쇄 살인범 강아무개씨 사건으로 인해 충격에 빠졌다. 국내에서 ‘살인범’에 대한 분노로 다시 사형제도를 부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최근, 나는 인도로 떠났다. 붓다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서였다. 성지 중 가장 먼저 간 곳은 붓다가 대도를 얻은 이후 전법한 45년 가운데 24안거를 난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였다.


기원정사에서 차로 10여분만 북쪽으로 가면 사위성 내 앙굴리말라 스투파(탑)가 나온다. 앙굴리말라가 누구던가. 우리 국민이 치를 떠는 강아무개씨보다 열배도 더 많은 99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마였다. 그 스투파는 그 살인마 앙굴리 말라를 기리기 위해 만든 거대한 탑이다.


애초 앙굴리말라는 성실히 정진하던 젊은 수행자였다. 그런데 평소 남편에게 실증을 느낀 스승의 아내가 스승이 멀리 출타한 틈을 타 젊고 잘생긴 앙굴리말라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이에 앙굴리말라가 응하지 않자 자신의 행동이 남편에게 들킬 것을 두려워한 그녀는 선수를 치기로 하고, 남편이 돌아오자 앙굴리말라가 자신을 강제로 욕보였다고 거짓으로 고해바쳤다. 그러자 질투심에 불타오른 스승은 앙굴리말라를 파멸시키기 위해 앙굴리말라에게 100명의 사람을 죽여 천 개의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면 승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철저히 따르던 스승의 말씀에 대해 한 치의 의심할 여지없이 믿은 앙굴리말라는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여 손가락으로 염주를 만들어 걸었다. 그가 99명을 죽이고 마지막 한 명을 찾아 헤맬 즈음 앙굴리말라의 어머니가 눈에 뜨이자 어머니마저 죽일 심산으로 달려갔다. 그 때 붓다가 나타났다. 앙굴리말라는 대상을 바꿔 붓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앙굴리말라가 아무리 쫓아도 붓다는 잡히지 않았다. 앙굴리말라는 제발 걸음을 멈추라고 애원하자 붓다는 “앙굴리말라여, 나는 이미 멈춘 지가 오래되었다.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너다. 붓다는 번뇌와 고뇌와 경계에 끄달림을 멈춘 지가 오래 되었으나, 너는 멈추질 못하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이를 들은 앙굴리말라는 구름이 걷히듯 정신이 번쩍 들어 자신의 행위를 반조하고 참회했다. 그는 출가해 비폭력주의자라는 뜻의 ‘아힘사’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번 순례에 동행했던 조계사 부주지 토진 스님은 “요즘으로 보자면 경기 서남부 살인사건 혐의자를 능가하는 희대의 살인마를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요즘처럼 개명된 세상에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점”이라고 말했다. 살인마가 붓다의 승가에 귀의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붓다의 제자들만 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숨어버려 일주일 넘도록 승가는 탁발을 할 수 없어 굶어야했다. 그러나 붓다는 그를 받았다.


과연 우리가 그 시대 사위성에 살았던 사람들이었다면 살인마를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여 한 식구를 만든 붓다의 처사를 어떻게 보았을까. 십중팔구 어떻게 그토록 잔혹무도한 살인마를 심판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면서 붓다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지 않았을까.


하지만 붓다는 갈 곳 없이 고통 받는 중생을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였다. 쉬라바스티에 이은 두 번째 순례지는 붓다가 열반에 들었던 쿠시나가르였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떤 중생의 손도 놓지 않았던 붓다의 삶이 배인 곳이었다.


이 쿠시나가르에서 인간 붓다의 마지막 제자가 된 사람이 수바드라였다. 붓다가 몸을 엄습하는 고통 속에서 열반에 든 바로 그 날이었다. 수바드라가 붓다를 찾아오자 시종을 들던 아난존자는 “병든 부처님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며 “돌아가라”고 했다. 120살이나 먹은 늙은 수바드라가 세 번이나 청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붓다가 “그를 막지 말라”고 했다. ‘수바드라는 나를 귀찮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온 사람이니 그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바드라는 그 자리에서 붓다의 법문을 듣고 모든 의문점을 해결했다.


붓다는 가난한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받고 탈이 나 열반에 들었다.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하는 수많은 공양주들을 제쳐주고 가장 가난한 춘다의 공양받기를 자처한 것은 붓다였다. 그런데 춘다가 공양한 스카라 맛다바라는 음식을 든 붓다는 심한 설사병을 앓았다. 스카라 맛다바에 대해서는 독이 있는 야생 토란, 돼지버섯, 돼지고기라는 등의 여러 설이 있다. 춘다가 공양한 음식을 먹고 붓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자 모든 이들이 “춘다의 공양에 무슨 공덕이 있겠느냐”면서 춘다를 원망했다. 만약 붓다가 그대로 말없이 열반에 든다면 춘다야말로 붓다를 죽인 천고의 죄인이 될 처지였다. 그러나 붓다는 “붓다에게 깨닫기 직전과 열반 직전에 올리는 공양아야말로 최고의 공덕이 있다”고 못박았다. 이 말 한마디로 불교 역사에 남을 죄인이 될뻔한 춘다는 오히려 최고의 공덕주로 기사회생했다. 붓다는 어찌 보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마저 죄악에서 구원하고 열반에 든 것이다.


붓다는 왜 온 고을 사람들이 저주하는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숨이 끊어지는 고통스런 순간에 120살이 먹어 늙디늙은 이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변변한 음식을 대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가난뱅이 춘다의 공양을 자처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갖지 못한 인간에 대한 너무도 확고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과거에 어떤 죄악을 저질렀던 사람이건, 어떤 장애를 지닌 사람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든, 지위가 높은 사람이건, 천시받는 일을 하는 사람이건.


어떤 인간이나 ‘본래는 부처’라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대승사의 주지 철산스님 및 불자들과 함께 나선 고우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을 순례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고우 스님은 “중생이 성인이 되는 게 아니라, 본래 성인이라는 게 붓다의 가르침”이라면서 “성인과 중생을 나눠보는 한 결코 마음속의 시비심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앙굴리말라는 자신이 불성을 자각했고, 마을 사람들이 내려친 돌에 맞아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챙겨 평화로움을 잃지 않았다. 부처님의 믿음이 옳았음을 앙굴리말라는 최후의 순간까지 증명해보였다.


  <발문>


붓다는 왜 온 고을 사람들이 저주하는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숨이 끊어지는 고통스런 순간에 120살이 먹어 늙디늙은 이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변변한 음식을 대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가난뱅이 춘다의 공양을 자처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갖지 못한 인간에 대한 너무도 확고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