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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열반하시니

공종원
언론인
법정스님이 열반에 들었다. 세상에선‘무소유’를 실천한 요즘 보기 드문 수행자의 죽음이라고 안타까운 정을 토로한다. 스님을 평소 자주 접하고 친하게 지낸 사람이 아니라도 법정스님이 남긴 글들이나 그에 대해 소문으로만 아는 이들도 스님을 우러르고 존경하는 뜻을 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실제로 법정스님이 세상을 떠나자 온 나라의 신문과 방송이 그 사실을 전하면서 법정스님의 살아온 자취를 더듬는 특집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그러니 그의 영구가 머물던 서울 길상사에는 수많은 불자들과 시민들이 꼬리를 무는 조문행렬을 이루었다. 심지어 이명박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조문하고‘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사람들의 진실한 삶에 큰 영향을 미쳐주길 기대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법정스님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흔히 갖지 못한 그 무엇을 법정스님이 가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스님 자신은‘무소유’를 표방하여 글도 쓰고 책도 냈지만 역설적이게도 스님은 남이 갖지 못한 많은 귀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스님이 출가하여 선승으로서의 오랜 수련생활을 거쳐‘스님으로서’번듯하게 성공한 이라는 점은 그의 큰 자산일 것이다.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독신으로, 스님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해도 정말 훌륭한 수행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더욱이 세상에 추문이나 악담을 남기지 않고 심지어 승가의 선후배와 신도들로부터‘정말 훌륭한 스님’이라고 존경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예일 것이다. 그런데 법정스님은 불자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반 시민들까지 누구나 알아주고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으니 큰 부자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물론 법정스님이 스님노릇을 통해서 풍족한 재산을 모았다든가 큰 불사를 일으켜 엄청난 재정을 동원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는 정녕 아닐 것이다.


법정스님이 많이 가진 것은 바로 그의 풍부한 지성이며 섬세한 감성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는 남보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삶의 의미와 생명의 신비를 정감있게 느끼고 심도있게 그리면서 수많은 좋은 글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이름을 남겼고 그 명망으로 결코 적지 않은 재물까지 얻었다. 그가 음식점 대원각을 김영한 여사로부터 희사 받아 길상사로 만든 것도 그 일례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형성한 재산을 남김없이 희사할 줄 알만큼 마음이 부자였다는 점이다. 그가 받은 수백억 상당의 재산인 길상사를 절로 환원하여 도심 속의 아름다운 사찰 로영원히남긴것도 그하나일것이다. 그는물론그의글들을모은책들이잘팔려 적지 않은인세를받았다. 그러나스님은그것을자신의영화를위해쓰는대신어려운이들을 위한 장학금과 생계비로 모두 희사했다.
그의 이런‘무소유’생활은 1973년 1월 1일에 출간된 그의 첫 수상집‘영혼의 모음’에 실린‘무소유’라는 글에 분명히 나와 있다. 스님은‘간디어록’을 읽다가“내가 가진 것이라고 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과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라는 글을 읽고‘몹시 부끄러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리 고그는“이때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런 스님의 다짐이 정확하게 실천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의 인생 전반을 통해 보시하고 희사하는 삶을 실천하여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온 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는 있겠다.

그가 봉은사‘다래헌’에서 송광사 불일암으로 그리고 그곳 생활도 너무나 풍족하고 거추장스럽다고 강원도 산골 오지에 오두막을 짓고‘일월암’으로 이름하여 홀로 살았던 것은 결국 이런 그의 무소유의 삶을 관철하려는 피나는 결심의 표현이었다고 할 것이다.


스님은 불일암에서 살 때에는 시자를 두었으나 말년에 일월암에서 살 때에는 시자도 없이 혼자 빨래하고 밥을 해 드시면서 외롭고 고된 수행생활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들어 자신의 고적한 생활을 파괴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는 일월암의 위치를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삶을 너무도 깔끔하게 관리했고 철저하게 통제했다. 역설 적으로 그는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려는 유난한 집념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승가의 전통은 대중생활을 중시해서 스님들이 혼자수행한다고해도 독거하는것을 경계하였다. 스님다운 계율을 잘 지키면서 세간의 추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법정스님이홀로산것은물론감출만한추문이있어서는아닐것이다. 웬만한직위와권세를가 진스님이면숨겨놓은처가있느니자식이있느니소문도무성한요즘세태다. 그에비하면 법정스님은 혼자 산속에 숨어살았는데도 그런 소문이 나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만큼그이가자신을철저히다스리고관리했다는증거다.


물론 스님으로 산다는 것이 모두 법정스님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법정스님은 물질적 이욕으로혼탁한요즘세상에맑고향기로운향기를뿌리기위해무소유의삶을살았지만부처님의 정법을널리펴는데는다른여러가지방편이없지않고그런일을할스님들의선택과역할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법정스님이 그와 함께 산 동시대인들에 게 맑고 향기로운 정신의 안식을 선물로 남겨주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