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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같은 가르침 세상을 비추게…

월하대종사 탄신 100주년 특집 학술세미나


편집부


조계종 제9대 종정을 지낸 노천당 월하대종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노천문도회(문장 초우스님, 대표 성파스님) 주관으로 대종사를 재조명하고 사상을 선양하는 학술발표회가 대종사 탄신일인 3월 25일 통도사 해장보각(도서관)에서 열려 큰 주목을 받았다.
동국대 홍광표 교수가 좌장을 맡아 『계율을 통한 수행의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발표회는 조계종 원로의원 월탄스님이 기조강연을 한데 이어 소운스님(동명대 교수), 하춘생 동국대 경영대학원 주임교수, 이혜숙 금강대 겸임교수가 각각 주제발표를 하고 이희선 한양대 교수, 정성준 동국대 티벳장경연구소 연구원, 이용권 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서 월하대종사의 계율관을 재조명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통도사 방장 원명스님을 비롯해서 주지 원산스님, 노천문도회 대표 성파스님을 비롯한 문도와 불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시종일관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한국불교의 정화이념과 월하스님』을 주제로 한 월탄스님의 기조강연에 이어 곧바로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삼학겸수에 입각한 월하대종사의 수행정신』 … 소운스님
먼저 『삼학겸수에 입각한 월하대종사의 수행정신』을 주제로 제1 주제발표에 나선 동명대 교수 소운스님은 ‘월하스님은 1950년대 비구승 측 대표 5인 가운데 한분으로 참가한 불교정화운동을 시작으로 통도사 금강계단 전계대화상과 제9대 조계종 종정, 통도사 영축총림 방장을 역임했던 행적들은 일평생 청정비구라는 투철한 계율정신에 입각한 선·교·율禪·敎·律 삼학겸수의 수행정신에서 나온 교단정화, 교단정비, 가람수호의 실천수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월하대종사의 행장을 3단계로 나누어 수행정신을 조명했다.


1. 1931년부터 1936년까지 : 입산출가와 금강산 유점사 시절
월하스님은 1936년까지 유점사에서 주석하는 동안 강원에서 사미과는 물론이고 《도서》, 《절요》, 《선요》, 《서장》을 포함하는 사집과四集科를 수료했다. 이것은 월하스님이 1936년 6월 오대산 상원사의 승려수련소에 1기생으로 입방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정식 명칭이 강원삼본산연합수련소인 이 오대산 상원사의 승려수련소는 강원도에 속한 세 본사인 월정사, 유점사, 건봉사에서 강원을 마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승려들을 각 10명 내외로 선발하여 상원사에서 교육시키는 제도였다.


2. 1936년부터 1943년까지 : 오대산 상원사 승려수련소와 보개산 심원사 화산경원 시절
1936년 22세 때 월하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의 승려수련소에 입방했다. 상원사의 승려수련소의 설립목적은 선교율을 제대로 가르쳐서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될 삼학겸수에 입각한 청정비구승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이 승려수련소는 당대 선지식 한암스님이 지도하셨기 때문에 설립이 가능했다. 따라서 한암스님의 지도하에 1년간의 수련과정으로 진행된 이 승려수련소는 소수 젊은 승려들을 선발하여 교육하는 특수수련도량의 성격이었고, 일단 참여하면 일대사 인연을 깨우칠 것이라는 확고한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소였다.
일제강점기에 승려의 대처화가 확산되는 와중에서도 소수 비구승들은 선원을 중심으로 수행 정진하였다. 이 시기에 계율의 붕괴를 우려하고 이론과 실천에서 계율정신을 환기시킨 대표적인 선지식은 백용성白龍城스님 이외에도 박한영朴漢英스님과 한암스님이었다. 이들은 계율을 중시하고 수행의 청정성을 강조하였다. 한암스님의 계율정신과 선교사상은 《일발록一鉢錄》에 수록된 〈승가오칙僧家五則〉과 〈선원규례禪院規例〉 그리고 〈계잠戒箴〉 등에서 나타난다. 이 가운데 〈승가오칙〉은 ①선 ②염불 ③간경 ④의식 ⑤수호가람이다. 한암스님은 일생동안 이 준칙을 계행의 본분으로 여겼고, 이를 통해서 참선 중이나 교학 중에도 꾸준히 노력 실천하였고, 〈계잠〉은 지계持戒, 불방일不放逸, 제불경계諸佛境界라는 세 단락으로 외적으로는 몸가짐을 청정히 하고, 안으로는 마음가짐을 청정히 하고, 이어서 총체적으로 제불의 평등정각을 이루는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 승려수련소는 소수의 청정비구로 종단을 수호하고 종단 내면의 질적 향상과 자주력을 배양하고자 염원하는 당시 선지식인 한암스님의 수행풍토를 계승하는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38년 24세 때 월하스님은 오대산 상원사 금강계단에서 한암스님을 전계대화상으로 비구계를 받았다. 비구계 호계첩에 의하면, 월하스님은 1944년 2월에 통도사에 주석하고 있음을 직접 기록하고 있는데, 1944년 이전에는 주로 강원도를 포함한 중부지역 선원에서 만공스님과 한암스님의 지도하에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1944년 통도사에 주석한 이후, 월하스님은 주로 영남지역 선원들에서 정진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화산강원 졸업 후부터 통도사에 주석하기까지 만공스님과 한암스님을 의지하여 수행정진했음을 알 수 있다.


3. 1944년부터 1954년까지 : 통도사 선원과 제방선원수행시절
1944년 30세 때 월하스님은 2월부터 4월까지 통도사에서 구하스님으로부터 『범망경』과 『사분율』을 배웠고, 같은 해 4월 초파일에 구하스님에게서 비구계를 재차 수지하고 전법제자가 되었고, 월하라는 법호를 받았다. 구하스님은 선교율에 능통한 당대의 선지식으로 통도사에 선원과 강원 그리고 율원까지 신설하여 수행도량의 참모습을 지킨 수행자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월하스님은 상원사 한암스님의 수행정신을 계승한 이래, 통도사에서는 구하스님의 수행정신을 계승하고자 불철주야 정진한 것이다.   
소운스님은 월하대종사의 이러한 수행이력으로 보았을 때 “승려들의 파계와 문란한 계율정신이 난무하는 일제강점기의 한국불교 상황에서 오대산 상원사 한암스님의 철저한 계율정신에 입각한 삼학겸수의 수행정신과 선교율 삼학겸수는 물론이고, 이사무애한 원융살림을 실천한 구하스님의 수행정신을 계승하였으며 해방 이후 교단정비와 가람수호를 위해 탁월한 수행력을 의연하게 펼치신 이 시대의 진정한 선지식이었다”고 평가했다.


「월하스님의 포교인식과 실천이념」 … 하춘생 교수
이어 두 번째, 「월하스님의 포교인식과 실천이념」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하춘생 동국대 경영대학원 주임교수는 “대동아전쟁 말기 일제의 발악적인 수탈정책과 해방정국의 혼돈기에 야기된 농지개혁, 그리고 이른바 비구-대처승 간의 분규로 점철된 교단정화의 지난한 험로를 거치는 동안 쇠락일로에 접한 통도사를 일대 쇄신하고 총림살림의 기반을 구축했던 주인공이 바로 월하스님”이라고 평가하고 “차제에 월하스님의 포교인식과 실천이념을 학문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오늘날 위기의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대중포교의 지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월하스님의 행적과 기품
월하스님은 1957년 구하스님의 명을 받아 정화불사 이후 통도사 초대주지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통도사는 불지종찰 국지대찰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대중스님들이 하루하루 자기가 먹을 양식을 마련해 미감에게 하루 세 홉씩의 쌀을 내놓아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스러져가던 통도사의 위용을 바로 세운 주인공이 월하스님이다.


2. 월하스님의 포교인식과 실천이념
‘지계持戒를 생명보다 중히 여겼던 청정도인.’ 월하스님을 두고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말이다. 월하스님의 출가정신이 그랬다. 그것은 두려울 것도, 당당하지 못할 것도, 주저할 것도 없는 일상여의日常如意한 든든한 힘이었다. 스승과 후학들이 전하는 기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월하스님이 이理와 사事를 두루 겸비한 실천가요 행동가로서 그 면모를 보인 것도 그에 연유한다. 교단안팎의 긴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교단을 살리고 불교를 홍포하는 일이라면 오로지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마음과 몸을 움직여 지행知行을 합일하는 행보를 보여주었던 주인공, 그가 바로 월하스님인 것이다.
불지종가 통도사의 대중포교당을 대표하는 서울 강남의 구룡사가 설립될 당시의 감화는 월하스님의 포교원력과 군단포 같은 성정을 한마디로 웅변해준다. 구룡사는 1978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대중포교당으로 시작했는데, 그 일대가 한옥보존지구로 묶여있어 포교당을 더 이상 발전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강남 포이동에 소재한 7백여 평의 대지에 천막법당을 짓고 강남포교의 서막을 올린 때가 1985년이다. 2년 후인 1987년 8월 12일 현재건물의 기공식을 갖고 1989년 1만 불상을 봉안한 만불보전을 성만하면서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천막법당과 가건물법당을 거쳐 지하 2층 지상 7층의 웅장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던 당시의 노정路程은 실로 눈물겨운 장면을 연출하며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의 총화總和를 보여준 쾌거였다. 여기에는 월하스님의 옳다고 판단되는 거침없는 결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구룡사가 강남에서 천막법당으로 새롭게 출발할 당시 통도사 대중 대다수는 성공 가능성이 없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월하스님만큼은 달랐다. 구룡사 건립불사에 친히 발걸음 해 법문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다. 더욱 놀란 만한 일은 통도사가 소장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금란가사와 자장율사의 금란가사를 구룡사의 천막법당으로 이운해 친견법회를 갖도록 허락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예전에 없던 금기禁忌를 깨는 일이었다.
구룡사가 현재 구현하고 있는 대중포교의 영역은 ‘통도’의 역사적 의미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듯하다. 신도회 산하로 거사림회·청년회·학생회·어린이회·다라니합창단·상조회·불교대학이 조직되어 있으며, 기획실 산하로 월간 붓다·도서출판 일주문·부다TV·신시뮤지컬컴퍼니·신시씨어터·진리의전화·결혼상담소·수미산세계여행사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구룡유치원을 비롯해 장안유치원·무궁화유치원·강남선재어린이집·서초장미어린이집·서초연꽃어린이집·관악금강어린이집·관악선봉어린이집 등을 통해 새싹포교의 수범을 보이며 포교원력을 구현하고 있는 점은 현대 한국불교의 나아갈 지표를 일정하게 제시해준다는 평가다.
하춘생 교수는 이러한 월하대종사의 수행이력으로 비추어 볼 때 “인간을 삼독三毒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갓 저열한 중생으로 치부하지 않고 이를 한없이 가엾게 여겨 마지막 한 사람까지라도 전부 교화해 붓다Buddha의 경지로 끌어올리려 했던 석가모니부처님의 장엄한 서원”을 닮았다고 주장했다.
또 월하스님은 “나에게 공양하여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향·꽃·기악으로 공양할 필요가 없다.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경전을 독송하고, 모든 법의 깊고 미묘한 뜻을 사유하면 이것이 곧 나에게 공양하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삶을 살았다고 평가하고 월하스님의 이러한 성품과 행적은 “작금의 교단안팎에서 야기되고 있는 수행의 상실과 서구기독문명의 급속확산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불교의 바로미터barometer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하스님의 불교복지, 그 회고와 전망」  … 이혜숙 교수
세 번째, 「월하스님의 불교복지, 그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혜숙 금강대 겸임교수는 “월하스님의 수행이력을 보면 스님 생전의 제자들에게는 어렵고 두려운 경외敬畏의 대상이시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루 혈육보다 더 깊은 인간애를 보여주신 행적이 많은데, 스님의 그 마음이 사회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 설립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1. 통도사 자비원, 자부담 불교사회복지의 원형이 되다
현재 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이 산하에 여러 가지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거기에 필요한 자원이 상당부분 정부로부터 나올 것임을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출신성분이 본래 자부담 복지시설이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비교적 넓은 것이다. 만약 자비원이 위탁시설로 출발했다면, 언젠가 정부로부터 수탁하는 계약관계가 해지된다면 더 이상 복지사업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율성이나 주도성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신하는 바이다. 


2. 질적인 복지로 불자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모두 어려웠던 시기인 개화기나 일제 때에도 사찰과 불자들은 나름대로 지역사회를 위해서 성심껏 노력한 바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이 잘 살펴보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조상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조상들을 탓할 이유가 없다. 불교계의 사회적 역할이 부진해진 것은 오히려 근현대의 일이라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 통도사 자비원이 주력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관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타의 복지시설 수준을 넘어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일 만한 기여 방안을 궁리하는 것이다. 통도사 문도들은 누구보다도 통도사의 전통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가장 잘 알아야 할 일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마음을 맑게 하고 진실한 도리를 드러낸 이는 백세의 스승이요, 법성이 원융함을 감춘 자는 수대에 걸쳐 털어내야 할 마군이다. 모든 불자가 법유의 은혜를 베풀어 세상의 근심을 더는 데 앞장서자.’고 당부하셨던 월하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혜숙 교수는 “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이 모범적인 복지사업의 현장들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적으로 질적으로 엄정하게 자기평가를 하는 계기와 적절한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며 “월하스님의 사회복지에 대한 신념과도 같은 유훈인 ‘살리고 사는 법’을 따라가고 있는지, 그리하여 이 시대 불자로서의 자존감은 안녕하신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50년 60년 넘는 세월 동안 쉬임 없이 법문을 해주고, 글씨를 써주시고 끊임없이 베풀면서 살아오신 월하노스님이셨지만, 참으로 기이하게도 어디엔가 크게 베풀고 나면 다시 돈이 들어오고, 베풀고 나면 다시 또 돈이 모여지곤 하니, 이것은 아마도 통도사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고, 제자들이 보기에는 월하노스님께서 전생, 그 전생에 지어 놓으신 복이 많으셔서 그 복들이 차례 차례 줄지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통도사 부처님의 가피에다 전생에 지은 복까지 합해져서 들어오는 돈을 스님은 당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안 쓰시고 꼭꼭 필요한 곳에만 큰돈으로 내놓으셨으니, 아무래도 월하노스님은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 자비보살로 타고난 분이었다.
- 《영축산에 달 뜨거든》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