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봄이 한창이다. 여름이 멀지 않았다. 그 놈의 실체 없는 마음이 싱숭생숭 오르락내리락하기 쉬운 계절이다. 사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아직 자신이 이미 성불成佛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네 중생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병원이나 약의 신세를 지고 있느냐 아니면 그런대로 버틸만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조울증 증세를 가지고 있다. 도대체 우리 마음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도 아닐 터인데 그렇게 가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일까.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 지하로 가는 층수의 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올라가는 층수의 단추를 누르기도 하고 고층에서 내려가는 층수의 숫자를 누르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상태를 버튼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참 재미있을 것이다.
몇 번째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는 남자 친구의 술버릇을 고치고자 할 때 (내가 화난 마음의 상태 15층) 하고 버튼을 탁 누르고 화를 내면 남자 친구의 마음을 크게 상하지 않게 하고 대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상태조절이 잘 안돼서 지하층과 100층 높이의 화난 상태가 오락가락하면 그만 남자 친구가 크게 오해를 해서 몇 년간 핸드폰을 수신정지 상태로 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즐거움이나 기쁨도 지나치면 허탈해지고 슬픔이 밀려온다. 엘리베이터가 무심하게 멈추어 있다가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면 올라가고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면 내려가면서도 항상 중심을 잡는 것처럼 내 마음의 엘리베이터를 자유자재 조절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일단 《중용中庸》의 구절을 읽고 나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로 한다.
희로애락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무심하게 멈추어 있는 상태이다. 우리 몸의 호흡 에너지가 아랫배 중심자리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이다. 희로애락이 일어나는 것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중심이 잡힌 상태에서 어디까지 올라가고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를 정교하게 알아차리면서 오르내리는가 아니면 중심을 잃어버리고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도 모르고 허둥대면서 오르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파도로 비유를 바꾸어보자. 내가 중심이 정확하게 잡힌 큰 바닷물이 되어 해안가 바위를 수위를 조절해가면서 후려치는가, 아니면 그냥 되는대로 후려치는가 하는 차이가 있다.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몸속의 혈액은 동맥시스템을 따라가 심장으로부터 손끝발끝과 머리카락 끝까지, 모세혈관 끝까지 퍼져나갔다가 정맥시스템을 따라서 다시 심장으로 모여든다.
사실 희로애락은 혈액의 흐름 상태에 따라서 오락가락 한다. 모세혈관까지 조화롭게 혈액이 흘러주면 마음이 편안하고 온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중간에 혈액 전달 시스템이 고장이라도 나면 슬슬 짜증이 올라오면서 심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기도 한다.
중국의 옛날 사람들이 우리 마음은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心에는 ‘마음’이라는 뜻과 ‘신체장기인 심장’의 뜻이 함께 들어있다. 혈액 흐름의 에너지와 호흡에너지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으면 해안가의 바위를 후려치는 파도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달達은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다. 연못 가운데 한 지점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연못 중심에 돌이 떨어지는 것은 통通이고 그 지점을 중심으로 해서 파도가 입체적인 동심원을 그리면서 연못의 사방팔방 끝까지 퍼져나가 닿는 것은 달達이다.
혈액이 손끝발끝까지 무리 없이 잘 퍼지면서 흘러줄 때 우리 몸은 화和한 상태가 된다. 어릴 때 팔꿈치를 부딪치는 바람에 팔꿈치 근처의 뼈가 굳어있으면 좁아져 있는 고무호스 속을 물이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혈액이 조화롭게 흐르지 못하는 바람에 손끝까지 저릿저릿함을 느끼게 된다. 필자도 세 살 무렵에 오른쪽 어깨의 날개뼈와 팔꿈치가 가마솥 모서리에 부딪치는 바람에 50여 년을 온갖 고생을 했다. 전생에 어느 적장을 너무 세게 후려친 업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심이 잡히고 조화롭게 사방 끝까지 혈액이 흘러주면, 즉 중화가 이루어지면 하늘과 땅이 제 위치를 잡는다. 머리가 어지럽거나 발목이 뒤틀리고 손목이 저리는 것은 우리 몸의 하늘과 땅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서 볼 때 머리가 어지럽거나 아픈 것은 좌뇌와 우뇌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뇌간腦幹이라는 뇌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자리에서 약간 어디론가 소풍을 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뇌시스템의 좌우 균형이 허물어지면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까지 시스템 전체의 좌우균형이 멋대로 춤추게 된다.
누가 봐도 아닌 것을 벅벅 우겨대는 고집은 이 좌우 불균형에서 나온다. 그렇게 되면 그 중간에 있는 우리 몸의 세포가 온전할 수 없다. 어딘가 저리고 쑤시고, 하늘과 땅의 중심축이 흔들리면 그 중간에 있는 만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7개의 신체에너지 중심 차크라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이 알코올 기운에 점령을 당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알코올이 흐트러진 에너지 경로를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흘러버리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전을 온 몸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 가지 주워들은 지식과 사전에 있는 뜻으로 고전 읽기를 한다면 기계에 불과한 컴퓨터 인터넷을 따라갈 수 없다. 제아무리 노력하고 타고난 아이큐가 높다 해도 네이버 지식인을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는가.
컴퓨터 부품에서는 혈액이 흐르지 않는다. 허나 우리 몸에서는 손끝 한 지점만 바늘로 찔러도 붉은 피가 나온다. 알코올이 흘러나오는 사람도 어쩌다가 있긴 하다. 기계 부품처럼 생각을 조작해서 고전을 읽을 것인가 펄떡펄떡 뛰는 심장과 세밀한 호흡과 붉은 피로 생생하게 고전을 읽을 것인가. 선택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길 뿐이다.
손자의 배가 아파서 할머니가 손자의 배위에 정성스럽게 손을 얹었을 때 손자의 배앓이가 낫는 것은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심장에너지가 손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손끝과 발끝의 사랑 에너지를 있는 대로 끌어 모아서 선자에게 전달시키기 때문에 손자의 배앓이가 치유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즈음 고전을 알량한 머리로 읽어온 것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다. 이제는 아랫배의 온기로, 손끝발끝까지 퍼져있는 모세혈관으로,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심장으로 부처님의 경전과 동서양의 고전을 다시 읽어야겠구나, 몸과 마음을 다시금 추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