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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되지 못한 허망한 말의 과보

한애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의 외로운 이 돕는 절에 계시던 어느 때 그 나라에 사질이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집이 대단한 부자였지만 아들이 없었습니다. 사질은 그 나라에서 유명한 여섯 이교도들에게 가서 그 이유를 물으니 그들은 말했습니다.
“너의 상에는 아들이 없다.”
그러자 사질은 집에 돌아와서 근심과 걱정의 나날을 보내며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자식이 없다. 만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목숨을 마치면 우리 집 재산은 법에 따라 모두 나라에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하자 근심과 걱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질의 아내는 어떤 비구니와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마침 그 비구니가 그 집에 왔다가 집 주인이 근심하고 번민하는 것을 보고 그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바깥주인은 왜 저렇게 근심하며 번민하고 계십니까?”
“집에 자식이 없어서 여섯 이교도들에게 가서 물었더니 그들은 ‘아이가 없을 것’이라고 점쳤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는 것입니다.”
“저 여섯 이교도들은 일체를 아는 지혜가 없습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셔서 모든 법을 밝게 아시고 과거와 미래에 막힘이 없습니다. 거기 가서 여쭤보시면 반드시 다 아실 것입니다.”비구니가 떠난 뒤 그 아내는 사질에게 아까 들은 대로 다 이야기하였습니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곧 걱정을 털고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여쭈었습니다.
“저의 상에 아들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복덕을 두루 갖춘 아들이 있으나 자라면 집을 떠나 출가하려 할 것이다.”
바라문은 이 말씀을 듣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있기만 하다면 도를 배우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곧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하여 다음날 집에서 공양을 올리려하자 부처님께서 승낙하셨습니다.
이튿날 부처님께서는 스님들과 함께 그 집으로 가셨으며 바라문 부부는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올렸습니다.
대중이 공양하기를 마치자 부처님과 스님들은 절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느 늪을 지날 때 그 가운데 아주 맑고 시원한 샘물이 있어 부처님은 비구들과 함께 거기서 쉬시는데 비구들은 각각 바리를 씻고 있었습니다.
마침 어떤 원숭이 한 마리가 아난다에게 와서 바루를 달라고 했으나 아난다는 깨뜨릴까 염려하여 주기를 망설이니 부처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 말고 어서 주어라.”
아난다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바루를 주자 원숭이는 바루를 가지고 벌꿀이 달린 나무에 가서 벌꿀을 가득 담아다가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더러운 것은 골라 버려라.”
원숭이는 곧 거기 섞인 죽은 벌들을 집어내어 버리고 아주 깨끗하게 만들어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물을 타라.”
원숭이는 말씀대로 물을 타고 잘 저어서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받아 대중들에게 나누어 주어 모두 고루고루 마시게 하셨고 원숭이는 기뻐 날뛰며 일어나 춤을 추다가 큰 구덩이에 빠져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원숭이의 혼이 사질 바라문의 아내에게 들어왔으며 사질의 아내는 태기가 있어 열 달이 되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기는 얼굴이 단정하기가 세상에 드물었고 아기가 태어날 때에 온 집안의 그릇마다 저절로 꿀이 가득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사질 부부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관상가들을 초청하여 그 길흉을 점치게 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덕이 있고 매우 좋아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밀승蜜勝이라 하였습니다. 처음 나던 날 꿀의 상서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아이는 성장하여 출가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깊어 출가하기를 허락하지 않자 밀승은 다시 간절히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만일 기어코 제 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저는 죽고 말겠습니다.”
부모는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옛날 부처님께서 이미 집을 떠나리라고 예언하셨으니 만일 굳이 만류하면 혹 죽을는지도 모르니 들어줍시다.”
“네 마음대로 하여라.”
밀승은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습니다.
“잘 왔구나! 비구야.”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입혀져 이내 스님이 되었으며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네 가지 진리의 오묘한 법과 갖가지 이치를 자세히 설명하시니 그는 마음이 열리고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는 언제든 만일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플 때에는 그가 바루를 공중에 던지면 저절로 꿀이 가득 담겨 손으로 돌아 왔고 여러 사람들이 같이 마시고 모두 배를 채웠습니다.
그때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밀승 비구는 어떤 공덕을 쌓았기에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으며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모두 마음대로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옛날 사질의 공양을 받은 일을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아난다야 거기서 공양하고 돌아오다가 늪에 이르렀을 때 어떤 원숭이가 너에게 바루를 청하여 꿀을 담아다 나에게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았다. 원숭이는 기뻐서 일어나 춤을 추다가 구덩이에 떨어져 그만 죽었다. 너는 그것도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아난다야 그 원숭이가 바로 지금의 저 밀승이다. 그는 부처를 보자 기뻐하며 꿀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그 집에 태어나 얼굴이 단정하고 출가하여 빨리 아라한이 된 것이다.”
아난다는 꿇어 앉아 거듭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는 어떤 인연으로 원숭이로 태어났습니까?”
“아득한 옛날 카샤파 부처님 때에 어떤 젊은 비구가 있었다. 그는 다른 스님이 개울물을 뛰어 건너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저 스님의 날쌤이 마치 원숭이 같구나.’
그러자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 물었다.
‘너는 나를 아는가?’
‘알지요. 당신은 카샤파 부처님 제자인데 왜 내가 모르겠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은 다시 말하였다.
‘너는 나를 이름만 스님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스님의 모든 도를 다 갖추었다.’
젊은 비구는 이 말을 듣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선 채로 곧 땅에 엎드려 애걸하면서 참회하였다. 그렇게 참회함으로써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아라한을 원숭이에 비교하였기 때문에 오백 세상 동안 원숭이가 되었으며 일찍 집을 떠나 계율을 지켰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맑은 교화에 온갖 고통에서 벗어났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의 젊은 비구가 바로 지금의 저 밀승이니라.”
그때에 아난다와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모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몸과 말과 뜻의 업은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비구도 입단속을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갚음을 받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을 말씀하셔서 그들의 몸과 말과 뜻을 깨끗이 하셨으며 스로타판나, 크리다가민, 아라한 등 각기 도의 자취를 얻었으며 대중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정성껏 힘써 실천하였습니다.
말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잘 사용되어야지 그렇지 않고 잘못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사람과의 관계를 나쁘게 만들거나 남에게 상처를 입히며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입이 화근이다 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말의 분노를 지켜라, 말을 제어하라, 말의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닦아라.
부처님께서는 육체의 행위 그리고 말과 뜻으로 짓는 행위를 삼업이라고 해서 우리 인간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니 마음이 안정이 되어 있고 평화스러우면 말도 아름답고 평온하게 나옵니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성낸 마음으로 가득하면 말도 포악해집니다.
현대사회의 갈등은 모두 이 말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일체유심조라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드럽고 자비스런 말로 나 자신을 남보다 돋보이게 하고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말들로 가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원망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 버리듯 말을 삼가지 않으면 이것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말 것이다.
중생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부터 시작된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영원한 진리의 법속에 거짓은 없습니다.
정구업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