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
혼자 살고 계시는 어느 지인의 어머니께서 새해 인사차 방문한 우리들에게 “자식에게 모든 것 다 주어봤자 자식 아무 소용없소.”라며 길게 한숨을 내쉰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체념의 상처가 박힌 듯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르신 모습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게 한다. 흔히들 부모가 베푼 만큼 자식으로부터 무언가가 되돌아오지 않을 때 서운한 감정표현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다. 효도를 바라는 부모 마음엔 자식의 무뚝뚝함과 무관심이 때로는 부모를 푸대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가 보다!
이 표현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매우 씁쓸하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 표현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자식 입장에서는 듣기에 유쾌하지 않은 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르신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부모자식 관계에도 과연 서로 계산하는 이해타산이 성립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무조건적인 부모의 헌신으로 내리사랑을 퍼붓는 것이 부모자식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이 말이 듣기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재산을 물려주고 하는 것은 아닐진대, 왜 이런 말들이 부모 입에서 종종 나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으로부터 대가를 바라고 모든 것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식의 안위와 행복만을 바라는 보석 같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름다운 것인데, 그 순수한 사랑이 이기심으로 변질되어, 간혹 자식을 투자나 보험 상품으로 생각하는 젊은 부모도 있는 거 같아 안타깝다.
사회생활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타산적이고 삭막한 만남일 수도 있지만, 혈연만큼은 순수한 사랑과 희생으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져야 한다. 요즘은 경제적 이유로 자식을 걸림돌로 생각해 폭력을 쓰거나 내다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어버리게도 하는 아주 비 인륜적인 부모들을 뉴스를 통해 종종 만나기도 한다. 천륜을 어기는 이 행위에 옛날 부모님들의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이 더욱 그리워진다.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부모의 특권인 듯 마냥 베풀기만 하는 부모의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다. 과연 우리는 자식에겐 어떤 모습의 부모로 비춰지고, 부모에겐 어떤 색깔의 자식으로 남게 될까!
혈육과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소중하고 단단하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자식들이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 굴곡 없이 평탄하게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로 생각하자. 자연이 너그럽게 우리네 인간을 감싸 안아 주듯 그렇게 부모의 역할을 다하면 아쉬움은 없을 것이고,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풍수지탄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세월은 절대로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을 명심해 성심성의껏 봉양한다면 “자식 소용없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뜻인 ‘부자자효父慈子孝’라는 한자성어를 되새기며 살아간다면 부모와 자식 관계는 그 어떤 만남보다 보물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