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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중인 호랑이와 차담을 나누다

반야사 <반야다원>에서


이서연
시인


뚜렷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어느 날 숲에서 내 목소리를 만난 적이 있다. 마음이 겉돌 때 습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곤 한다. 그 순간인 듯 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어디서부터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삶이란 얽힘 설킴 그 무늬에 놓이는 것인만큼 그냥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혹독하게 대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산길을 찾을 때가 많다. 그때처럼 내 안의 언어를 얻기 위해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숲을 찾아갔다. 물줄기 따라 이름 모를 산들이 겹겹이 나타났다. 월류봉 가는 푯말이 보이는 부드러운 산길에서 이번에도 내 목소리를 만났다.


‘지금 넌 진심의 속살을 키우는 중이야. 절벽에 돋아난 문수도량을 찾아보렴. 그 지혜를 꺼내 쓰는 것도 사는 요령 중의 하나지. 너를 아끼렴.’


절벽에 돋은 문수의 지혜가 무엇일까 궁금해 들어선 산길에서 하이얀 꼬리를 치켜들고 하산 중인 호랑이를 만났다.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의 경계에서 바위가 꽃처럼 피어난 듯 보이는 산이 백화산이다. 그 산엔 눈으로 보이는 걸 다 믿을 수 없지만 보면서 믿게 되는 오묘한 풍경이 있다. 마치 백호랑이가 하산하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그곳에 반야사般若寺가 있다.


피부병을 앓고 있던 세조가 신미대사의 주청으로 반야사를 중건하고 회향법회에 참석했을 때 문수동자가 나타나 절 뒤쪽 망경대의 영천에서 목욕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이치를 널리 알린 분이라서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반야는 ‘지혜’라는 의미로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된다. 반야사는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이라서 문수전文殊殿이 따로 있다. 호랑이의 꼬리가 보이는 풍경을 따라 문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묘법의 길’이요, 문수전에서 영천을 바라보는 정경은 ‘묘법의 창’이다. 그곳을 다녀오는 사이 어느새 절벽에 돋은 문수 지혜가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오는 듯 가는 것이 사는 뜻 그 결이듯
마음 가는 그 길에서 나를 믿고 가거라
부처의 결을 따라 온 그 본성에 의지하여


가는 길 발길마다 사는 길 따로 없듯
오는 길 자욱마다 사는 뜻 따로 없다
부처로 살면 부처다 본성 따라 가거라
 - <절벽에서 얻은 말씀> -


물은 물빛으로 본성의 결을 보여 주고 바람은 움직임의 결로 흐름의 본성을 보여 주지만 이 또한 느끼는 이의 몫이다. 봄결이 그렇고, 사람의 품성이 그렇다. 따라서 불교에서 마음의 본성에 충실하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고 번뇌는 객진客塵에 지나지 않으므로 불교에서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 즉 불성佛性은 여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중생에게는 한결같이 갖추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망각하고 사는
동안 물이 흐려져 본성의 결을 보여 주지 못하듯, 사람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심정이란 나 아닌 다른 이유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이렇듯 반야사는 절벽에 돋아난 부처손이 약이 되는 것처럼 절벽 끝에 모신 문수보살을 만나면 은은한 미소가 고통에 빠진 중생들에게 감로가 된다. 존재하는 것이 문수인지, 문수를 만난 내가 존재하는 건지… 순수한 그 결에 일치되는 순간, 사소한 일상에 숨어 있던 번뇌가 스스로 사라진다.
문수전에서 내려오면서 호랑이를 보면 마치 내가 호랑이 꼬리를 붙들고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 느낌이다. 그 호랑이에게 <반야다원>에서 차 한잔하자고 권해 본다.
<반야다원>은 크지 않지만 매우 큰 풍경을 품고 있다. 안에서는 바깥풍경이 그림처럼 보이고, 바깥에서는 다원이 그림 속 풍경처럼 보인다. 사는 데 지친 이에게 마음 쉴 자리를 내어주는 찻집에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삶의 무늬에 ‘쉼’은 어딘가 숨어 있는 ‘순수’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마음 문의 밖도, 마음 문의 안도 그 경계가 없는 것이거늘 살다 보면 어느틈엔가 경계를 긋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경험이 많아도 늘 지금은 처음 맞는 시간일 따름이다. 수시로 마음을 살피지 않으면 불완전한 의식에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가끔 산사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본다는 것은 내려놓고도 내려놓는다는 의식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쉼’이요, 마음 살핌의 시간이자 스스로 순수를 끌어내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기도 하다.
<반야다원>에서 호랑이와 차 한잔하는 기분을 만든 이유는 호랑이는 산신의 또 다른 존재이자 의미라서 그렇다. 산신각 탱화를 보면 산신이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와 함께 여유롭게 있는 모습과 그 옆에서 차를 끓이는 동자, 혹은 차를 들고 있는 동자들의 모습이 있다. 그 풍경이 꼭 그림 속에만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 호랑이에게 이왕 하산하셨으니 차 한잔하자고 마음의 대화를 해 보는 것이다.


찻집 보살님께 마실 차를 권해 주십사 하니 직접 만든 대추차, 생강차, 자몽차를 권한다. 피로에 지친 내게 필요하고 다 약이 되는 차다. 법당 앞 붉은 배롱나무 꽃빛을 닮은 자몽차를 주문했다. 아늑한 실내에서 볕이 좋은 바깥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니 풍경이 한아름 따라 들어왔다. 징검다리를 건너 소원탑을 하나 쌓고 오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또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이의 모습이 보인다. 마음으로 차를 나누던 호랑이에게 돌 하나 쌓으며 마음을 꺼내놓는 그들의 소원이 이뤄지길 빌어 보았다.


업이 있거든 물에 씻어 주소서
복이 있거든 물로 흘려 주소서


모르는 업이 있거든 더욱 씻어 주소서
모르는 복이 있거든 더욱 흘려 주소서


업이 복이 되거든 쌓아 주시고
복이 업이 되지 않게 막아 주소서


늘어가는 업에 복이 깃들게 도와주시고
늘어가는 복에 업이 끼지 않게 도와 주소서
- <차를 마시는 동안이라도> -


무심코 내뱉은 말이 업이 되듯이 모르고 짓는 업이 무겁다. 청정심이란 사실 무심無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청정심의 무심無心이 소원을 이루리라 믿는다. 따라서 돌 하나하나 얹으며 탑을 쌓는 그 마음으로 차라리 ‘무심無心’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다. 반야사에는 세월에 아름다움이 깊어가는 배롱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는 세속적 마음의 껍질을 벗기고 용맹정진하라는 의미일까 부처꽃과의 낙엽관목에 속한다. 백일간 꽃을 피우기에 백일홍이라고도 불리우니 백일간 수행해 마음 하나 얻는 이치와도 상통하니 이 또한 묘하다. 사찰해설사의 친절한 설명과 차를 정성껏 내주는 보살님의 마음도 따뜻하고, 차를 마시는 동안 자기 자리로 돌아간 호랑이 풍경에서 다정함이 느껴졌다.